“이번 산사태는 수년 전부터 예고됐던 겁니다. 일차적 책임은 복구만 할 뿐 예방을 하지 않는 정부에 있습니다.”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우면산(牛眠山) 산사태 현장을 둘러본 산사태 전문가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흙이 흘러내려온 양이나 형태 모두 지난해 이 일대에서 발생한 산사태와 유사하다”며 “지난해에는 사람이 희생되지 않았다는 점만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6일부터 3일째 내린 707.5mm(경기 가평군·28일 오후 10시 기준)가 넘는 폭우로 전국에서 59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실종됐다. 또 주택 1375동이 침수되는 재산 피해와 함께 이재민 5000여 명이 발생했다. 이 교수가 현장 점검에 나선 우면산 일대에서는 이번 산사태로 모두 18명이 사망했다.
동아일보는 이 교수와 산사태 피해를 입은 서초구 방배동 삼성래미안아트힐에서 남부순환도로를 건너 산사태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며 현장을 살폈다.
이 지역은 작년에도 올해와 유사한 산사태가 있었던 곳이다. 이쌍홍 서초구청 공원녹지과장은 “추석 직전인 9월 21일경 집중호우가 내렸을 때 방배3동 쪽으로 군부대부터 남부순환도로까지 산사태가 일어났다. 토사의 양이나 유형은 이번 산사태와 비슷했으나 주택가를 덮치지 않아 차 한 대가 매몰되는 정도의 피해로 그쳤다”며 “당시 산사태 피해는 현재까지 약 75% 정도 복구된 상태”라고 말했다. 방배119안전센터 관계자는 “작년 여름 장마철 경남아파트와 래미안아트힐 사이 방배로로 우면산에서 쓸려 내려온 토사와 물이 들이쳐 경남아파트 지하주차장이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당시 출동해 토사를 퍼내는 등 복구 작업을 펼쳤다”고 말했다.
이 일대는 산 중턱을 깎아 도로를 내거나 집을 지은 전형적인 절개지(切開地). 산사태가 지나간 자리에는 20∼30m 너비의 거대한 계곡이 형성돼 곳곳에 급류가 흐르고 있었다. 이런 식의 산사태가 근방에 서너 곳 이상 발생했다.
:: 이수곤 교수는 ::
전 세계 산사태 전문가들이 모여 결성한 국제학회 공동산사태기술위원회 한국대표. 현재 서울시립대 사면(斜面)재해기술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 “좁은 배수로 막혀 역류… 흙 아래로 쓸고 내려가” ▼
이 교수는 급류를 살펴보며 “산사태는 주로 물이 모이기 쉬운 지형인 계곡부에서 발생한다. 이번에 산사태로 재해를 당한 우면동 형촌마을과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 방배동 아파트 밀집지역 모두 계곡부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고 설명했다.
우면산 일대는 산사태로 흙이 대부분 떠밀려 내려가 거대한 암반과 나무뿌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산사태로 쏟아지는 흙을 막고 배수를 용이하게 할 사방댐 등 방재시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 교수는 처참하게 깎여나간 산사태 현장을 보며 “이런 산 아래에 아파트를 지으면서 방재시설을 전혀 만들지 않았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이건 후진국 수준”이라고 말했다.
약 500m를 올라 산사태 발생 지점에 접근하자 군부대에서 쓸려나온 녹슨 탄피가 눈에 띄었다. 군에서 친 펜스와 철조망은 완전히 쓸려나가 흙더미에 처박혀 있었다. 산 정상 인근에 위치한 공군부대 내 시멘트 도로는 약 100m에 걸쳐 산에서 쏟아져 내린 흙으로 덮여있었다. 이 교수는 도로 옆 배수로를 가리키며 “토사에 배수로가 막혀 물이 제대로 빠지지 못하고 역류하면서 산 아래로 흙을 쓸고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산사태에 대비하기에는 배수로 너비가 너무 좁다”고 설명했다. 배수로 너비는 50cm에 채 못 미쳤다. 이미 상당 구간 흙이 치워졌지만 여전히 배수로 바닥에는 토사와 나무뿌리 등이 남아 있었다.
한편 막대한 인명, 재산 피해가 발생한 만큼 산사태 발생 원인이 인재(人災)로 밝혀지면 피해주민의 집단소송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초구청 측은 우면산 산사태는 자연재해에 해당돼 따로 보상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