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시인(43·사진)이 세 번째 시집 ‘생년월일’(창비)을 냈다. 1994년 등단 이후 전위적인 시를 풀어냈던 그는 2000년대 들어 각광받기 시작한 미래파의 원조 격이다. 그의 시는 다소 난해하지만 그 어려움이 책장을 지레 닫을 만큼 부담스럽지는 않다. 생경한 언어조합이 주는 시어들을 더듬어 가다 보면 묘한 정서적 동감이 몸속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동사무소에 가자/왼발을 들고 정지한 고양이처럼/외로울 때는/동사무소에 가자/서류들은 언제나 낙천적이고/어제 죽은 사람들이 아직/떠나지 못한 곳’(‘동사무소에 가자’에서)
‘나는 어둠 자체를 발견하기 위해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코인로커 속에서 가장 슬픈 자세는 무엇인가./지금은 붉은 사과가 둥글게 웅크린 채/어둠에 몰두하고 있다./캄캄해지는 것은 사과인가./목적지인가.’(‘코인로커’에서)
사람이 서류 한 장에 죽고 사는 무감정한 동사무소에 한 마리 외로운 고양이처럼 찾아가고, 지하철 역 붐비는 코인로커의 암흑 속에서는 한 개의 사과처럼 웅크린다. 외롭고 우울한 현대인의 자화상은 때론 고양이로, 때론 사과로 치환된다.
시집은 전체적으로 전위시를 표방하지만 무척 감성적인 문구들도 곳곳에 눈에 띈다. 콕 떼어낸다면 감성적인 편지의 한 귀퉁이에 딱 어울릴 만한.
‘겨울이 가고 가을이 오면/당신이 거기 없겠구나./어디선가 말 없는 소녀가 자라고 있겠구나./모든 것을 이해할 것 같은 아침이 지나간 뒤에/아무것도 알 수 없는 밤이 오네.’(‘돌이킬 수 없는’에서)
‘네가 없는 토요일은 너무 거대해서/너를 빼고는 무엇이든 넣을 수 있다.’(‘다섯시에서 일곱시까지의 끌레오’에서)
‘근육질 눈송이들이 꿈틀거리는 소리로 허공은 가득하다’(‘겨울의 원근법’)든가, ‘강수량을 측정하기 위해 수많은 빗방울들에게 계급과 역할을 분배한다’(‘평균치’)는 상상력도 기발하다.
익숙한 사물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낯설게’ 세상을 바라본 시 60여 편을 묶었다. 조선대 교수, 소설가, 그리고 비평가로 활동 중인 시인은 “캄캄한 궤도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들. 고개를 든 나에게 가장 가까운 별자리가 있다. 오늘은 그것이 당신이었으면 한다”며 독자에게 손을 건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