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야 멀리 간다/대기업-中企 동반성장]<7>2, 3차 협력업체 더 큰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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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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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못준다” 오리발… “설비 늘려라” 으름장… “물량 끊겠다” 뒤통수

이내근 대성시스템 사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18일 경기 화성시 발안산업단지에 있는 공장에서 이 회사가 생산하는 알루미늄 안테나 케이스 틀을 들고 직원들과 품질향상 방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오른쪽은 대성시스템의 품질관리 시스템 정비에 도움을 준 거래처 감마누의 차호병 품질담당 이사. 화성=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이내근 대성시스템 사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18일 경기 화성시 발안산업단지에 있는 공장에서 이 회사가 생산하는 알루미늄 안테나 케이스 틀을 들고 직원들과 품질향상 방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오른쪽은 대성시스템의 품질관리 시스템 정비에 도움을 준 거래처 감마누의 차호병 품질담당 이사. 화성=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 이런 현실

자동차 금속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 대표 C 씨는 최근 거래 중인 1차 협력업체로부터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는 대기업이 1차 협력업체에 현금 결제를 해주고 있으니 2, 3차 업체들에도 어음이 아닌 현금으로 결제해줄 것을 1차 협력업체에 요구했다. 1차 업체 관계자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다음 결제 일에 당초 주기로 한 것보다 물품 대금이 몇백만 원 적게 들어왔다. 사정을 따져 묻자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3개월 어음으로 줄 돈을 현금으로 주는 거니 어음 할인 이자율만큼 떼고 주겠다”는 것. C 씨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참는 수밖에 없었다. 강하게 반발했다가 기존 거래마저 끊길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C 씨는 “다른 곳은 아직도 어음 받는 곳이 많을 텐데 그래도 현금으로 주는 게 어디냐 생각하고 체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동반성장을 강조하고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대기업 상당수가 1차 협력업체에 현금 결제 등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가 2, 3차 업체로까지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2, 3차 업체의 중소기업 대표들은 “진정한 동반성장은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는 물론이고 2, 3차 협력업체도 소외되지 않아야 가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1차 협력업체의 횡포는 이뿐만이 아니다. 경기 안양에 있는 화학제품 생산업체 D사는 올 초 1차 협력업체로부터 제안을 하나 받았다. 거래하는 대기업이 조만간 주문을 크게 늘릴 것 같으니 설비를 추가로 갖추라는 것. 제때 설비를 안 늘렸다가 나중에 밉보일까 급히 설비를 갖췄다. 원래 5t 정도 물건을 공급하던 것을 10t 규모로 늘리기 위해 수천만 원을 들여 설비를 증설했다. 하지만 정작 주문이 들어온 것은 기존 5t뿐이었다. D사 대표는 “손실이 너무 크다”며 1차 업체에 항의했지만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해주지 않았다.

1차 업체가 2차 업체에 “기술을 다 보여줘야 대기업한테 받은 물량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곳도 많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옛날 대기업이 1차 업체한테 하던 행동을 이제는 1차 업체들이 2, 3차 업체들에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이런 대안
KT 2차협력사 대성시스템 “족집게 코칭받고 불량률 0”
SKT 2차협력사 명텔레콤 “깐깐 기준 따르니 매출 급증”


경기 화성시 향남읍 발안산업단지에 있는 알루미늄 절삭·가공업체 대성시스템은 요즘 기술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제품 품질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올해 초부터 주문량이 폭주하는 바람에 대기업들의 납품 요청을 고사해야 하는 일까지 종종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직원이 30명인 대성시스템은 이달 3명을 뽑았지만 그래도 인원이 부족해 추가 채용에 나섰다.

○ 1차 협력업체 도움으로 ‘백조’로 변신

대성시스템은 불과 1, 2년 전까지만 해도 품질문제에 관한 한 ‘천덕꾸러기’였다. 이 회사에서 부품을 납품받는 일부 업체는 생산부서가 구매 담당자에게 ‘대성시스템 제품을 받지 말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이내근 대성시스템 사장은 종종 거래업체에 불려가 “품질을 높이지 않으면 거래를 끊겠다”는 호통을 들어야 했다.

대성시스템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은 이 회사가 12년 전부터 부품을 납품해온 휴대전화 기지국 안테나 생산업체 감마누 덕분이다. 감마누는 지난해 4월 자사 거래처인 KT의 ‘벤더 코칭(Vendor Coaching)’에 대성시스템이 참여하도록 추천을 해주었다. 벤더 코칭은 KT가 1차 협력업체에 업무 노하우를 전수하면 이를 1차 협력업체(감마누)가 2차 협력업체(대성시스템)와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벤더 코칭 대상으로 선정된 지난해 4월부터 6개월간 KT는 매달 한 차례, 감마누는 매달 3, 4차례씩 대성시스템에 품질관리 담당자를 보내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실무를 가르쳤다. 공장 곳곳에 제멋대로 쌓여 있어 정작 필요할 때는 찾느라 애를 먹었던 각종 부품은 가지런히 선반 위에 정리해 언제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여러 업체에 다양한 제품을 납품하다 보니 엉뚱한 도면으로 제품을 만드는 일이 잦아 시간과 자재를 낭비했던 악습도 낡은 종이도면을 전산화해 관리하면서 사라졌다. 과거에는 출하 직전에 형식적으로 했던 품질관리는 원자재 검수, 공정관리, 출하관리로 단계를 세분하고 체계를 갖췄다.

감마누에 안테나 케이스 틀을 납품하는 대성시스템은 2009년 5만282개의 납품수량 가운데 470개가 불량품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6만3082개의 납품수량 가운데 불량품이 60개로 줄더니 올해 1월부터 7월까지는 2만701개의 납품수량 가운데 불량품은 제로(0)다.

불량률이 떨어지면서 거래처의 시선은 빠르게 바뀌었다. 대기업 E사 구매담당자는 지난해 말 대성시스템에 들렀다가 달라진 공장 환경을 보고 “작업장 정리나 품질관리 수준이 웬만한 대기업보다 낫다”고 극찬했다. 대성시스템은 올 초 E사에서 지난해 연간 매출액(40억 원)과 맞먹는 규모의 신규 주문을 받았다. 하지만 설비와 인력이 부족해 납품 시작 시기를 내년으로 늦춘 상태다.

차호병 감마누 품질담당 이사는 “대성시스템을 벤더 코칭에 참여시킨 것은 ‘한 번 거래한 업체와는 끝까지 함께 간다’는 우리 회사의 원칙 때문”이라며 “대성시스템의 품질이 높아지면서 감마누도 제품 불량률이 낮아져 원가 절감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 ‘깐깐한’ 거래처 덕분에 매출액 9년간 4배로

경기 의왕시의 파워서플라이(전원공급장치) 제조업체 명텔레콤은 SK텔레콤의 2차 협력업체다. 이 회사는 2002년부터 SK텔레콤에 이동통신 중계기를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 GS인스트루먼트(이하 GSI)와 거래를 하고 있다.

GSI는 명텔레콤에 처음부터 ‘깐깐한’ 시어머니였다. 납품된 제품의 불량률만 관리하는 다른 거래처와 달리 처음 납품을 시작할 때부터 종종 직원을 명텔레콤 공장에 보내 불량률을 낮추도록 요구했다. 맨 처음 지적을 받은 부분은 자재창고의 습도관리를 안하는 것이 불량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었다. 습도가 너무 낮으면 정전기가 일어나 부품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명텔레콤은 GSI의 요구대로 제습기와 정전기 관리계측기를 창고에 설치했다. 이 밖에도 GSI는 틈날 때마다 공정관리나 품질검사 기준을 꼼꼼하게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했다.

GSI는 ‘채찍’과 동시에 ‘당근’도 내걸었다. 자신들의 요구를 충실히 따라 불량률을 ‘제로(0)’ 수준으로 떨어뜨린 명텔레콤에 매년 조금씩 거래물량을 늘려준 것. 2002년 당시 연간 7억∼8억 원 수준이던 GSI와의 거래량은 15억∼20억 원으로 늘어났다. 또 제품의 품질이 높아지면서 GSI 이외의 다른 거래처 주문량도 늘어 명텔레콤은 2002년 20억 원 수준이던 매출액을 지난해에는 4배인 80억 원까지 끌어올렸다.

GSI는 부가가치가 높은 새 제품을 개발할 때 명텔레콤을 초기 연구단계부터 참여하게 해 충분한 이윤을 챙길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현재 명텔레콤의 영업이익률은 4.5% 정도로 대기업의 2차 협력업체 사이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노욱현 명텔레콤 사장은 “GSI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SK텔레콤이 적정 납품단가를 보장해준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명텔레콤은 GSI의 도움으로 또 한 차례 도약을 준비 중이다. GSI의 추천으로 SK텔레콤이 비용을 대고 한국생산성본부 소속 경영전문가가 지도를 맡은 협력업체 컨설팅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 명텔레콤은 이 프로그램이 끝나는 3년 뒤에는 직원 1인당 부가가치 생산액을 현재의 연간 4800만 원에서 2배 수준으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매주 한두 차례, 하루 평균 8시간씩 조직 정비와 원가·품질관리 등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있다.
▼ 상생위원회 평가 ▼
“동반성장의 온기가 1차→2차 퍼지는지 대기업이 모니터링을”

동아일보와 중소기업중앙회가 구성한 ‘대-중소기업 상생위원회’ 위원인 동학림 IBK기업연구소 소장(사진)은 동반성장의 온기가 2, 3차 협력업체에까지 충분히 퍼지지 않은 원인에 대해 “그동안 중소기업의 문제가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 사이의 문제로만 국한됐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 사이에만 초점을 맞추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이 정작 도움이 절실한 영세업체들은 소외됐다는 것.

동 소장은 “과거보다는 2, 3차 협력업체에 대한 관심과 제도적인 보완이 늘어나고 있지만 현실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진정한 동반성장인가’에 대한 사회 전체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안으로 대기업의 ‘1차 협력업체 모니터링’ 제도를 제시했다. 대기업이 현금 결제, 기술 지원 등을 통해 1차 업체를 배려한 만큼 그 효과가 2, 3차 업체에도 잘 퍼지는지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니터링만 제대로 해도 1차 협력업체들의 ‘온기 나누기’ 움직임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동 소장은 “대기업이 동반성장을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1차 협력업체가 나머지 업체들에 퍼뜨리지 않으면 효과가 단절될 수밖에 없다”면서 “사회 전반에 동반성장 효과를 퍼뜨리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지금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1차 협력업체들을 이끌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특별취재팀 ::

▽팀장
김상수 차장 ssoo@donga.com  

▽팀원
김선우 정효진 유덕영 김상훈
김현수 김상운 한상준 장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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