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세계경제]고개숙인 미국과 유럽 ‘일본식 장기불황’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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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0일 03시 00분


미국과 유럽이 ‘저패나이제이션(Japanization·일본화)’ 공포에 휩싸였다. 부동산 자산 거품 붕괴→주가 폭락→경기침체로 이어지며 ‘잃어버린 20년’을 보낸 일본식 경제 불황을 미국과 유럽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우려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상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이 없어 돈이 국채로 몰리는 기현상까지도 일본을 닮아가는 모습이다.

○ 미국 국채금리, 사상 최저치 하락

전 세계 자산의 벤치마크 지수로 활용되는 미국 국채 금리(10년물)는 18일(현지 시간) 장중 한때 대공황 때보다도 낮은 사상 최저치인 1.97%까지 떨어진 가운데 2.07%로 마감했다. 유럽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독일 국채 분트(10년물) 금리도 2.08%로 연일 연중 최저치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국채 금리가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국채 수익률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즉 시장이 불안해 국채를 찾는 투자자가 워낙 많아지다 보니 금리를 덜 쳐줘도 일단 사고 보겠다는 심리가 시장에 팽배해진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20년 전 일본과 너무도 흡사하다. 1990년 7, 8%대를 유지했던 일본 국채 금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줄곧 1%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 국민들은 주식보다 채권을 좋아한다. 20년 가까이 하락하는 증시에 투자하느니 1%의 금리라도 따겠다는 전형적인 안전자산 선호심리다.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는데 되레 그 나라 국채 가격이 상승(금리 하락)하는 기현상도 닮은꼴이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듯이 1998년 무디스는 일본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떨어뜨렸다. 당시 세계 최대 채권국이었던 일본이 “최대 채무국인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이 일본 국채의 신용등급을 하향한 것은 뻔뻔스럽다”고 비난한 것조차 S&P에 대한 지금 미국의 불만과 비슷하다.

재정적자를 줄여야 하는 상황도 당시 일본과 지금 미국이 유사하다. 일본이 초저금리를 활용해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해 각종 공공사업을 벌이다 국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1997년 세출 삭감과 증세를 실시한 것처럼 미국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재정으로 막다가 디폴트 위기에 처하자 채무한도를 늘리는 방식으로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앞으로의 재정긴축이 미국 경기침체를 불러올 것이라는 위기감은 일본의 선례가 충분히 증명한다. 박원암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많은 이들이 재정위기를 논하지만 지금 상황은 단순히 재정이 좋지 않을 때와 오히려 거꾸로 가는 면이 있다”며 “결국 경기둔화가 심해져 돈이 갈 곳이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저패나이제이션’은 전 세계 경기둔화

‘저패나이제이션’의 확산은 곧 일본식 장기불황이 미국과 유럽을 강타해 전 세계 경제를 침체시킨다는 말과 동의어다. 미국 국채라는 특수성을 감안해도 국채 금리의 기록적 하락과 제조업지수, 주택매매건수 같은 실물지표 하락은 일본식 경기침체의 전형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SG)의 앨버트 에드워즈 스트래티지스트는 “지금의 미국 경제는 과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유사하다. 재정지출 감축으로 성장률이 둔화되고 저금리 기조도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일본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이명활 금융연구원 국제거시금융연구실장은 “더블딥 우려가 확산되면서 증시에서 돈이 빠져나가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몰리는 것은 맞다”면서도 “지금은 전 세계적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고, 일본은 자국민 정서상 채권으로 돈이 몰리고 현금 보유 현상이 지속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과도하게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재정을 투자해 부동산 거품 붕괴의 폭탄을 정부가 직접 맞은 일본과 민간 금융기관의 모럴 해저드에 따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단순 비교하기는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과 유럽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재정을 풀어 금융위기에 쉽게 대응하는 방식은 경제 운용의 신뢰성을 높일 수 없다”며 “금융시스템을 개혁하고 가계소비를 줄이는 근본적인 경제 조정 없이는 미국과 유럽 경제는 장기간 침체에 빠져드는 L자형 모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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