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와 금융위원회가 방문한 외국계 금융사들은 한국 경제의 체질과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자본의 속성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금융사들은 한국 정부가 시장 혼란기에 긴급간담회 같은 것을 열어 주식투자자의 불안심리를 잠재우려 하는데, 그보다는 시장 안정기에 정책 파트너들과 소통을 많이 해 예측 가능한 정책을 투명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 외자 유치만 반기는 한국인에게 불만
외국계 금융사들은 한국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먹튀’라는 단어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투자전략은 원래 특정 상품을 사들이는 ‘진입전략’과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는 ‘출구전략’으로 나뉘는데 한국인은 외자 유치만 환영할 뿐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BoA메릴린치는 답변서에서 “외국자본에 대한 부정적 정서는 없는 것 같은데 단기 차액 거래자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고 썼다. 송기석 BoA메릴린치 전무는 인터뷰에서 좀 더 강한 어조로 “나쁜 자본, 좋은 자본이란 것은 없다”며 “빨리 돈을 벌어 나가는 게 자본의 속성인데 한국에선 이 점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국의 투자환경이 외국인들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는 의미여서 앞으로 금융중심지 육성이나 헤지펀드 도입 등 금융을 산업으로 키우는 과정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주식 판 외국인, 다시 한국 안 올 수도
외국인이 주식을 판 자금으로 다시 한국 주식을 살까. ‘다시 살 것’이라는 것이 우리 정부의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마이클 체임버스 CLSA 대표는 “단순히 이익을 실현한 것이다. 다시 한국 주식을 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전체 투자자금 가운데 현대자동차 주식 투자 비중이 12%인 고객이 있었는데, 이번에 4% 정도를 팔았지만 이 고객은 재투자 의사가 별로 없다고 전했다. 현재 외국인들은 한국처럼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의 주식보다는 내수 중심의 산업이 발달한 인도네시아 인도 중국 등지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 외국의 기관투자가들이 전체 투자 대상에서 한국 비중을 줄이는 움직임은 없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외국인이 한국을 떠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실제 이번 취재 때 답변서만 제출한 스위스계 금융회사인 크레디스위스는 “이달 초 한국 투자 비중을 확대했는데 그 뒤 투자계획을 수정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권구훈 골드만삭스 전무는 “우리는 국채나 현금 같은 저수익 자산보다는 주식과 원자재 같은 고수익 자산을 선호한다”며 “한국은 세계적으로 주식이 저평가된 투자국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달 들어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대거 매도하고 한국 국채를 매입한 것과 관련해 정부는 외국인이 위험자산(주식)에서 안전자산(채권)으로 투자처를 옮기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런 해석에 대한 외국계 생각은 좀 달랐다.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채권을 사는 현상이 계속될 수는 있겠지만 주식자금이 채권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운용하는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외국계는 ‘외국인이 주식을 판 자금을 벌써 본국으로 송금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금융계의 분석에는 동의했다. 만약 외국인이 주식 순매도 자금을 송금하기 위해 달러로 환전했다면 원-달러 환율이 크게 상승해야 하지만(원화가치는 하락) 환율 변동 폭이 크지 않았다. ▼ 3개월 공매도 규제, 잘한 일이지만 연장은 곤란 ▼
채권을 사는 것도 장기적인 추세의 변화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채권의 투자 매력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외국계는 설명하고 있다. ○ ‘급한 불만 끄려 하지 말라’
외국계 금융사들은 정부가 10일 주식을 빌려 증시에 내다파는 공매도 규제를 한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김수룡 도이치은행
대표는 답변서 끝부분의 ‘한국 정부가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 단 3개월 동안 실시키로 한 공매도 제한 조치도
선제적으로 잘 이뤄졌다’라는 문장에서 자신이 강조하려던 단어는 ‘단 3개월’이라고 했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정책인
만큼 약속한 기간이 나중에 연장돼선 안 된다는 뜻이다.
공매도와 관련한 답변만큼은 익명으로 해달라는 다른 금융사
관계자는 “한국이 이 조치를 발표한 날 본사에서 ‘한국에 무슨 일이 있느냐, 거래에 문제가 없겠느냐’는 질문이 많이 들어왔다”고
귀띔했다. 그는 공매도 규제로 단기 차익을 노리며 시장을 교란하는 세력을 몰아내는 등 급한 불을 끌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장기
투자자가 한국 시장을 꺼리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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