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72>수박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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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3일 03시 00분


수박 껍질로 만든 반찬… 미국은 피클 담가

먹고 난 수박 껍질의 하얀 속살을 썰어 고추장과 식초를 넣고 버무리면 수박나물이 된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좋다. 맛있는 반찬이 될 수 있음에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수박 속만 먹고 껍질은 그냥 버린다. 수박나물도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에 먹었던 반찬 정도로만 여길 뿐이다.

그런데 수박나물은 의외로 역사가 깊은 음식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등 동서양에서 수박껍질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니 먹다 남은 껍질로 만든 ‘허드레’ 반찬이 아니라 뼈대가 있는 음식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수박이 전해진 시기는 13세기 말이다. 허균은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고려 충렬왕 때 홍다구가 개성에 처음으로 수박을 심었다고 적었다. 고려 말이니 전래 시기도 비교적 늦은 편이고 보급도 더뎠다. 세종 때는 수박 한 통 값이 쌀 다섯 말이라고 할 정도로 귀했고 조선 후기에도 그다지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귀한 과일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먹지 않아 껍질의 활용도가 낮았던 것인지 먹고 남은 껍질이니까 당연히 쓰레기라고 여겼던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예전에도 수박나물을 흔하게 먹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19세기 중엽의 실학자 이규경은 수박껍질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서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사람들이 수박껍질은 쓸모가 없다고 버리는데 항아리에 담아 장을 담그면 무김치와 마찬가지로 좋은 반찬이 된다고 적었다.

이규경은 수박껍질이 몸에 좋다며 그 용도에 대해서는 명나라 의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참고해 적었는데 본초강목에는 수박껍질인 서과피(西瓜皮)가 약재로 나온다. 껍질 역시 수박처럼 열을 식히고 갈증을 멎게 할뿐더러 이뇨작용을 한다고 했는데 특히 입안이 헐었을 때 수박껍질을 갈아서 먹으면 좋다고 나온다.

약효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지 중국에서는 수박껍질로 만드는 음식이 적지 않다. 돼지고기 혹은 버섯과 수박껍질을 섞어서 볶기도 하고 우리처럼 무치거나 김치처럼 절여 먹기도 한다. 다만 본초강목을 비롯한 여러 의학서에는 수박껍질의 효능이 많이 보이는 데 비해 명청시대 문인들의 문집이나 요리책에는 수박껍질로 만든 요리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수박껍질로 만든 음식이 서민음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되는데 음식 종류가 다양한 것으로 보면 역사가 짧은 것 같지는 않다.

서양에서도 수박껍질 음식은 예전부터 있었다. 오이피클처럼 수박껍질로 피클을 담갔는데 미국에서는 18세기 말 수박껍질피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직접 원문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최초의 미국 요리책에 수박껍질피클 만드는 법이 적혀 있다고 하니까 19세기 중반에 편집된 오주연문장전산고보다 빠른 셈이다.

1881년 발간된 ‘남부의 옛 요리’라는 책에도 수박껍질피클 만드는 법이 보인다. 흑인 노예 출신 요리사인 피셔 부인이 구술한 책으로 이 책에는 수박껍질피클이 미국 남부에서 흑인 요리사들을 중심으로 발달한 음식이라고 나온다.

어쨌든 먹고 남은 수박껍질로 만드는 수박나물이 사실은 19세기 이전부터 먹었던, 뿌리가 깊은 음식이라는 사실이 의외다. 동양은 물론이고 미국에도 수박나물인 수박껍질피클이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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