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취재 일지]<1>2011년 8월 12일 ~ 20일

  • Array
  • 입력 2011년 8월 23일 18시 12분


《 세계최초로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비행에 나선 대원들을 동행 취재하고 있는 본보 이훈구기자가 현지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이훈구기자의 취재일지를 게재합니다. 산악지대에 있어 통신시설이 없는 만큼 이동하는 현지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틈틈이 며칠간의 일지를 올리고자 합니다.》

<이훈구 기자의 취재 일지>

1일차 : 2011년 8월 12일 (금)

인천공항에서 동아일보 김동주차장과 KBS스포츠국 취재팀이 대원들 인터뷰

<9시30분>
태국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싣다.
대원들은 서로 말이 없다. 각자의 친구들에게 페이스북과 문자를 날리며
약간은 긴장된 모습들이다.
방콕 새로 지은 국제공항에서 1900시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행 비행기 출발때까지
시간을 보내다. 이 날은 태국 여왕(Sirikit 79세)의 생일이라 국제공항도 축제분위기다.
여왕의 생일이 어머니의 날(Mother's Day)이며 공휴일이다.
비행기에서 읽은 IHT(International Herals Tribune) 톱기사가
인도-파키스탄 분쟁지역인 Kashmir지역이 화해분위기(Detente)에 접어들어
Dal Lake에 인도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에 대원들 잠시 안도.
영국정부는 인디아와 파키스탄 양쪽 민족이 살던 곳을 인도땅으로 남겨 아직까지 카슈미르지역은 분쟁중이다.

19시에 이슬라마바드를 출발해 23시(현지시각)에야 이슬라마마드 호텔에 도착.
2일차 : 2011년 8월 13일 (토)

<12시30분>
첫 번째 원정대 미팅
현지가이드와 문제점 논의
훈자(Hunza)지역과 그 외 히스파르 빙하(Hispar Glacier)지역의 포터들이 다르다는 점
이유는 포터들의 지역 구분이 명확해 새로 포터들을 구해야 함

<20시>
시내서점에 가서 현지 상세지도 구입

8월1일부터 31일까지 라마단기간이라 식당은 문이 닫히고 저녁때 사람들이 붐빈다.
외국인들은 식사가 가능하지만, 호텔방으로 시켜먹을 수 있고,거리에서 물마시고 담배피우는 것 조차 눈치가 보인다.

호텔방에서 본 CNN뉴스에 카라치(파키스탄 중심도시)에서 미국인 한 명이 납치되고,이슬라마바드에서 4시간 떨어진 라호르(Lahore)에서는 버스안 1명 분신했다는 소식에 잠시 긴장. 호텔직원들과 가이드는 이슬라마바드는 안전하니 걱정말라고 안심시킨다.
3일차 : 2011년 8월 14일(일)
파키스탄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 1947년)


아침부터 대형 스피커 음악소리가 울리고 호텔 밖이 부산하다.
호텔 전 직원(70여명)이 모여 국기게양대 앞에서 기념일 행사를 한다.
이 곳의 독립기념일이란 영국이 지배했던 인도로부터의 독립을 말한다.
옆에서 촬영하던 기자를 본 호텔 회장이 악수를 청하며 기념사진을 찍자고 제안.

<9시>
호텔 식당 안에 모인 직원들 TV로 나오는 총리주관 독립기념일 공식행사 관람
국가가 나오니 앉았던 직원들이 모두 일어선 채 엄숙,경건하게 행사를 또 치른다.
저녁은 모두 축제분위기다.
수천여대의 차량과 오토바이들 가족들 위험하리만큼 다 싣고 파키스탄 국기를 밖에 단 채 경적울리며 거리 퍼레이드

<16시>
박정헌대장은 김민수총무 가이드를 데리고,원정에 필요한 추가음식 시장 보러갔다.
현지폰과 기타 필요한 방송팀 추가장비를 정비했다.

<20시>
파키스탄 패러글라이딩협회 초청 만찬
동호인은 많지 않지만, 패러글라이딩이라는 취미의 성격상 엘리티즘 분위기가 느껴진다.
일부 회원은 변호사다.
김형운PD “초청받은 집의 규모로 봐서 파키스탄 내 0.5%의 부자인 것 같다”



◆4일째 : 2011년 8월 15일(월)
우리나라 광복절


<9시>
그동안 휴일로 묶여있던 원정팀 장비화물을 공항에서 찾다.
취재팀(신문/방송팀)은 전기가 없는 산속생활에 대비 발전기를 구매했다.
방송팀은 파일롯팀을 촬영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예약했다.
산악과 빙하지역은 위험하기 때문에,구조목적으로 헬기를 무조건 두 대가 떠야하며 두 대를 동시계약해야한다. 비용은 물론 두 배다. 계약하는 김형운 PD는 예상이라도 한 듯 선뜻 가계약한다. 몇 번의 히말라야 등반원정을 취재책임을 맡은 그다.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방송제작의 규모에 잠시 놀라다. 본사가 새로 출범하는 채널 A도 이런 때가 올 거다.

<20시>
한식당에 가 치트랄로 출발 전 최종 점검회의
방송팀과 채널A관련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니 비행팀 중 한 대원이
“비행팀과 취재팀이 서로 벌써 갈라졌네. 족구시합을 산위에서 한번 겨뤄보자”고 농담.
아직까지 대원들 모두 겉으론 농담도 하지만 내심 출발전 긴장,초조분위기.

<22시>
식사후 다음날 0300 먼저 출발하는 트럭에 공용장비 모두 싣다.
저녁 내내 이슬라마바드 하늘은 마른 번개가 수 백번도 넘게 내리친다.



◆5일째 : 2011년 8월 16일(화)

<04시>
같은 방 쓰는 홍핗표팀장이 공항갈 시간이라며 단잠을 깨운다.
오전 7시 출발 예정이던 치트랄행 비행기는 8시가 돼서야 출발했다.
베나지르 부토 국제공항이라고 써있다.
낯익은 이름을 생각해보니 암살당한 부토여사 이름이다.
부토여사 사진이 많은 곳에 있는 걸로 봐 아직도 인기가 있나보다.
손님이라곤 원정대원과 가이드(굴람씨) 그리고 몇 명의 지역주민이 전부다.

힌두쿠시의 관문인 치트랄(Chitral)은 해발 1400m에 위치한 작은 산악도시다.
신라시대 혜초스님이 인도로 가는 도중에 잠시 들렀던 마을이기도 하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처음 가까이 보는 풍경.
거의 벌거숭이인 험악한 산악지형 중간 중간 농지를 만들고, 많은 마을들이 주변에
성냥갑처럼 형성돼 있다. 이 곳 지형에선 하늘 아래 첫 동네들이다.
척박한 자연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끈기!

산꼭대기 아래 시골공항인데도 검문검색이 심하다. 공항직원들과 군인들의 신기한 외지인들은 카메라를 연신 누른다. 사진 찍지 말라고 외치는 공항직원들과 군인들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알고 보니 이 곳은 아프카니스탄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국경도시다.
(갑자기 태양이 이글거리는 이 뜨거운 날씨에 왜 하늘 아래 높은 산 위의 눈은 녹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과학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일까????@@@)

<14시>
치트랄마을 둘러본다. 순박한 산골 아이들,어른 할 것 없이 첨 보는 이방인에게 수십개의 눈들이 몰려온다. 한 아이는 마을 가이드를 자처하며 짧은 영어로 이 곳 저 곳 끌고 다닌다. 콜라를 사주겠다고 하니 절대 안마신다. 그저 안내하고 싶어 안내해줬을 뿐이라는 자존심일까? 가는 곳마다 대여섯의 아이들이 쫓아오며 카메라를 보자고 한다.

<15시>
박정헌대장은 경찰서장을 만나 자니패스에서의 숙영허가를 얻고자 했다.
돌아 온 답변은 “No!"
이유는 바로 5일전 숙영지에서 멀지 않은 국경마을에서 부족간 총격전이 일어났고,아프칸 탈레반과 내통하고 있는 파키스탄 세력이 외국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며 숙영허가는 내줄 수 없다는 것! 나중에 박대장은 현지에서 임기응변(?)정공법(?)을 감행했다.

<18시>
치트랄마을의 지역 패러동호인 세명이 찾아왔다. 어찌 알고 왔냐고 하니 어디서 소문들었다고 한다. 비행팀은 날씨와 바람 조건 등 여러 가지를 묻고 한국에서 입수한 정보를 몇 번이고 확인한다. 비행실력은 뛰어나지 않고 패러장비도 예전모델이지만,열의는 대단했다. 한국의 세계적인 패러장비업체인 ‘진’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진’의 회장과 이들 파일롯들이 친구사이라고 하니 매우 놀라며 기뻐한다.
6일째: 2011년 8월 17일 (수)

<06시>
치트랄 모텔 숙소앞 정원에 경찰관 3명이 총을 들고 앉아있다.
우리와 이 지역 끝까지 보호목적으로 동행하는 국경수비대 소속 무장경찰들이다.

<07시>
방송팀과 치트랄 전경과 세부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치트랄성과 모스크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아침시간 학교가는 여학생들과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어린이들. 얼굴을 잔뜩 가린 여인들,가린 정도가 여러 형태. 집안 아버지,남편의 엄격한 정도에 따라 가리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김PD가 설명해 준다. 마을 앞으로 산줄기들에서 내려 온 빙하와 눈 녹은 물이 흙탕물이 되어 요동을 친다.

<13시>
반가운 한국인 한 명이 찾아왔다. 부영건설 소속으로 이 곳에서 터널공사를 마치고 수력발전소를 만들고 있는 토목기사 강영진차장(44)이다. 마을을 지나다가 한국말을 써 무작정 반가운 맘에 찾아왔다고. 외국계회사가 포기하고 간 르와리 터널공사를 한국기업이 맡아 성공적으로 마쳐,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다고 전한다. 그 터널로 끊겨있던 지역간 소통이 이뤄지고, 매년 몇 십명씩 산을 넘다 동사하는 주민도 더 이상 없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사귄 물크왕족의 후손 왕자에게서 “옛날에 고선지 장군이 저 산 너머까지 원정을 왔고, 그가 우리나라 민족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려줘 놀랐다”고 했다.
<고선지장군은 당나라때 고구려 유민의 아들로 태어나 당나라 장군으로 성공해, 이 곳 지역까지 침공, 중국의 서쪽 영토를 오늘날 수준으로 넓은 입지전적인 인물. 나중 길기트,훈자지역에서 상술예정>

<14시>
지프로 차량 4대로 출발 총 일행은 원정팀 8명 가이드, 포터들, 요리사 1명,무장경찰 3명 총17명. 현지 전문 가이드 라닥씨도 또 합류했다.

자니패스 경찰서에 또 신고하고 자니패스 정상(3840m)으로 향했다.
그러나 시간은 벌써 2040이다. 칠흑같은 어둔 신길 중간 오툴마을(2500m)에서 여장을 풀고 마을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로 했다. 산골 마을 주민들이 모두 플래시를 들고 몰려나왔다. 난생 첨 보는 외지인들에게 경계의 눈빛은 없었다. 어둠 속으로 간간히 보이는 수많은 미소와 웃음,신기한 눈길들. 서로 짐을 들어주고 가는 길을 플래시로 비춰준다.
이들의 과도한 친절은 다음날 과자가 든 장비짐 분실사건으로 산산히 깨지지만........
7일째 : 2011년 8월 18일 (목)

<06시>
자니패스 아래 오툴마을(2500m) 아침. 밖은 소란스럽다. 밤사이 장비박스가 뜯겨지고,그 중 과자와 중요 패러 핵심장비가 담긴 상자가 없어졌다. 몇시간 동안 동행한 경찰과 가이드 굴람씨가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1000루피를 아이들에게 나줘 주고 구슬려서야 훔친 아이를 겨우 찾긴 했지만 대원들은 핵심장비가 담긴 짐을 찾을 때까지 맘을 졸여야 했다.
많고 많은 짐 중에 과자담긴 게 없어져 아이들 소행(?)임을 짐작했지만, 첫 번째 만난 산골마을에서의 추억치곤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망울은 잊을 수 없다.
아마도 처음 본 이방인들의 물건을 훔쳐, 유쾌하지 않은 추억을 안겨준 그 아이는 마을에서 ‘공공의 적’으로 배척받을 게다.

<08시>
자니패스 정상(3840m)까지 차량으로 정상까지 한 시간만에 도착.
멀리 트리치미르산 정상(7705m)이 흰 눈을 잔뜩 품은 채 우뚝 치솟아 위용을 뽐내고 있다.
동쪽으로는 부니줌산이 넓게 펼쳐져 그 중간 고원에 자리를 잡았다.
트리치미르산은 힌두쿠시 산맥 수백개 7000m급 산중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왜 패러와 수많은 트레커들이 찾는 명소인지를 알 수 있다.

<14시>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출발 전 서울의 산악전문가들과 수많은 지인들로부터 듣고 우려했던 것! 고산증! 히말라야를 숱하고 드나든 박정헌 대장,정하영 촬영감독과 홍감독 등이 내 주변을 오가며 안부를 묻는다. 오기 전부터 염려한 유력한 고산증 후보였다.

갑자기 온 몸의 힘이 빠지면,졸립기만 했다. 하품이 연신 나오더니 머리가 서서히 짓눌려 온다. 박대장은 텐트를 같이 쓰자고 제안했다. 밤사이 추워지고 기압이 더 내려가면 증세가 더 심해질 듯 걱정해서다. 1800시경 혼자 텐트에서 괴로워하다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을에 내려갔다오기로했다. 2500m 아래 마을에서 3840m를 훌쩍 뛰어넘은 게 무리는 무리였나보다. 다른 대원들은 올 3월경 히말라야 현지답사를 하면서 고지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기자가 내려갈 때 운전기사만 갈 줄 알았는데,가이드와 무장경찰 한 명이 따라 붙었다. 2000m정도 고도에 내려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 두통이 말끔해진다.
인간의 몸...자연의 법칙....
8일째 : 2011년 8월 19일 (금)

세상일은 새옹지마다.
원정대 본대에서 하루 벗어났지만,이 곳 현지인의 생활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지난 밤은 부니의 한 민박집에서 가이드,운전기사,경찰과 잤다.
점심정도 되자,동행한 경찰친구가 자기 집이 근처라며 같이 가서 차한잔 하자며 제안하다.
두 형제 가족이 살고 노어머니 모시고 사는데 다 합치니 16명이 넘는다고 한다.
경찰친구는 50이 훨씬 넘어보이는데,나중에 알고 보니 나이가 40밖에 안먹었다.
치트랄시내에서 이 곳 원정대 보호대장으로 뽑힌 이유도 이 곳 지리를 잘 알기 때문이었단다. 딸들,아들..조카들을 일일이 소개하며 식사를 대접한다.
9일째 : 2011년 8월 20일 (토)

고소증세가 다시 시작됐다.
대원들 모두 미약하나마 있지만,유독 기자만 더 머리가 지끈거리며 집중력을 잃는다.
그 좁은 텐트 안인데도 물건 찾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그 날 일지 적는것도 귀챦다.
컴퓨터 작업은 더욱 그렇다. 만사가 귀챦고 말수도 없어진다.

박대장과 정하영 촬영감독은 지극히 전형적인 고소증세라며 자기들도 똑같다며 마을을 편히 가지라고 위로한다. 비행팀은 장비최종점검을 하며,내일 첫 비행을 준비하느라 밤새 부산하다. 이 곳 출신인 요리사와 셀파들은 산아래 마을에서 양과 염소를 사왔다. 내일 산신제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10일째 : 2011년 8월 21일(일)
산신제/훈련비행


<07시>
날씨가 유독 좋았다. 이 높은 산에 다시 누군가가 찾아왔다. 이 곳 부니지역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동호인들이다. 이슬라마바드 패러협회관계자가 연락해 때마침 찾아온 것이다. 대원들과 셀파,요리사,운전기사들 모두 모여 산신제를 지냈다.산신,바람신,태양신에게 조인(鳥人)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제문이다. 한국에서 가져 온 것은 북어와 미역,소주,대추, 이 곳서 조달한 것은 양과 과일 등이다. 김민수총무가 제문을 낭독하고, 박정헌대장이 먼저 예의를 갖춘다. 방송팀도 기자도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마지막으로 절했다.

<09시>
산신제가 끝나자 박대장이 일정을 서두른다. 기상상태를 봐 곧 열기가 올라오니 서둘러 첫 비행이자 시험비행에 들어가자며 재촉한다. 목표지는 이 곳 자니패스(3840m)정상에서 건너편 부니좀산(Bunizom6550m) 아래 언덕이다. 오후에 만난 박정헌대장은 “이제 모든 장비점검과 지형에 따른 날씨 등을 익혀 곧 실전비행에 들어갈 예정이다”며, “하늘이 안겨주는 자연의 변화가 비행에 최적인 날이 오면 곧바로 훈자지역까지 240Km를 일주일정도 목표로 날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전비행이란 기체장비에 비상식량,버너,코펠,물,침낭,무전기,위성전화,GPS,촬영장비 등을 모두 싣고 불시착할 경우 비부악(비박)을 감내하며 날아가는 것이다. 기류가 안좋아 불시착할 경우 그 곳 주변에서 숙박 후 다시 산으로 올라가 목표지점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