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75>따로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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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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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국 따로 나오는 육개장… 식사예절 때문에 생겨나

국밥은 문자 그대로 국에다 밥을 말아서 먹는 음식이다. 반면 따로국밥은 보통 국밥과 달리 밥 따로, 국 따로 나온다고 생긴 이름이다.

지금은 국밥을 시킬 때 국과 밥이 따로 나오는 경우도 많지만 예전에 국밥을 주문하면 당연히 국물에 밥을 말아서 내왔다. 그러니 ‘따로국밥’이라는 이름까지 특별히 생겨난 것을 보면 밥 따로, 국 따로 먹는 것이 상당히 독특했던 모양이다.

따로국밥은 양반문화의 식사예절 때문에 생긴 음식이다. 우리 밥상은 밥과 국이 기본이다. 보통 국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한다는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예전 양반은 국에다 밥을 통째로 말아 후루룩거리며 먹는 것을 상스럽다고 여겼다.

조선 후기 문인인 이유원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옛날 양반들이 밥에다 국을 말아먹는 것을 얼마나 상스럽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 보인다.

이유원의 친척 할아버지가 암행어사를 나갔을 때 어느 산골 마을에 묵게 되었다. 마침 주인 여자가 밤에 갑자기 해산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외출하고 없어 하는 수 없이 손님으로 머물던 할아버지에게 밥과 국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할아버지가 밥과 미역을 함께 넣고 미역국을 끓여주니 주인 여자가 마구 욕을 했다. 때마침 남편이 돌아와 까닭을 묻더니 “시골여자가 암행어사께 무례를 범했다”며 사과를 했다.

암행어사의 신분 감추기가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쓴 내용이지만 아무리 촌 아낙네라도 뼈대 있는 집안에서 미역국에 밥을 말아 끓이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치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니 국에다 밥을 말아 내놓는 국밥은 장터에서 ‘상것’들이 먹는 음식이었지 양반의 식사법은 아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예컨대 과거 보러 서울 갈 때 주막집에 들러 먹는 장터국밥이다.

그런데 장터에서도 밥 따로, 국 따로인 따로국밥이 등장한 것은 6·25전쟁 때 대구에서다. 당시 대구에는 전국에서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이들이 시장에서 국밥을 먹는데 피란길이라고 해도 명문가 사람들과 양갓집 규수들이 국에다 밥을 말아 퍼먹으니 상스럽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그래서 밥 따로, 국 따로 달라고 주문해서 먹은 것이 따로국밥의 유래가 됐다. 음식 이름이 아니라 먹는 방법에서 생긴 명칭인 것이다.

따로국밥의 옛날 이름은 대구탕(大邱湯)이다. 대구에서 발달한 음식이기 때문에 현지 지명을 따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사골과 등뼈를 푹 고아 낸 국물에 토란줄기, 시래기, 그리고 무와 파를 넣고 끓인 해장국에다 밥을 말지 않고 별도로 내놓는 육개장의 일종이다. 보통 육개장식, 우거지 선짓국식, 선지 육개장식의 세 종류로 구분된다.

이런 대구탕이 1929년에 발행된 근대 잡지인 별건곤 12월호의 팔도 유명 음식 예찬론에서 대구를 대표하는 명물로 뽑혔으니 유서가 꽤 깊은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대구에서 발달한 음식이 널리 알려져 서울로 전해지면서 서울 장터에서 대구탕이라는 이름의 해장국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그러다 6·25전쟁 때 대구에서 밥 따로, 국 따로 먹으면서 대구탕 대신에 따로국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대구의 지역 명물음식을 떠나 전국적인 음식으로 발돋움했던 것이다.

마침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만큼 현지에 가면 먹어봄 직한 지역음식이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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