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리쌍 7집 대박이 예능 때문이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1일 15시 02분


힙합 듀오 리쌍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8월25일 7집 앨범 '아수라 발발타'가 공개되자마자 각 음원차트는 리쌍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몇몇 차트에선 1위부터 10위까지 모조리 리쌍 노래들로 채워지기까지 했다. 물론 음원 발매로부터 일주일여가 지난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연예미디어들은 일제히 '리쌍 현상'을 놓고 원인 추적형 분석 기사들을 내보냈다.

이들 분석 기사는 크게 4가지 관점에서 '리쌍 현상'을 규명하고 있다.

첫째, 이른바 '빈집털이'가 가능한 시점이었다는 논리다.

8월 넷째 주에서 다섯째 주는 대형그룹들이 9월 컴백을 앞두고 '숨고르기'에 들어간 시점이었다는 것. 그나마 슈퍼주니어와 지나 정도가 버티고 있었지만 그 열기는 의외로 높지 않았고, 시점도 미묘하게 빗나가 있었다. 한 마디로 '타이밍'이 좋았다는 얘기다.

둘째, 리쌍 멤버들의 TV 예능프로그램 출연 효과라는 주장이다. 현재 멤버 길은 MBC '무한도전'에, 개리는 SBS '런닝맨'에 출연 중이다. 멤버 두 명 다 최고 인기를 누리는 주말 예능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니 그만큼 홍보효과와 후광효과도 톡톡히 봤으리란 것.

셋째, 아무래도 상품적 매력의 승리란 입장도 존재한다. 최근 힙합 장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데다 수록곡들의 높은 완성도와 절절하고 재치 있는 가사 등이 즉시 공감을 얻어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원차트 '올킬'은 너무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리쌍 음악을 소비하던 앨범 세대가 음원시장으로 편입되면서 벌어진 일이란 분석이 있다.

그러다보니 음원 한 곡만 사는 게 아니라 기존 소비습관대로 전곡을 통째로 사버리는 현상을 낳았다는 것이다. '올킬' 현상 자체에만 집중해 분석된 유일한 가설이다.

이들 분석 기제들은 일정부분 맞는 구석들이 없진 않다. 특히 '빈집털이' 논리는 어쩌면 '리쌍 현상' 중심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그를 제외하고는 다들 조금씩 문제가 있다. 아예 전제 자체를 잘못 깔고 들어가는 부분도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 대부분 문제가 있는 '리쌍 현상' 원인 분석

먼저 TV 예능프로그램 출연 효과를 생각해보자. 물론 대중적 접근성 부분에서 리쌍이 예능프로그램 '빨'을 받았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다. 최소한 그룹명, 멤버 각자의 얼굴과 개성을 알리는 데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런 부분들이 음원차트에서 효력을 발휘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 예능프로그램과 음원시장은 '그런 식'으로 만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예능프로그램 '출연' 자체만으로 효과를 본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능프로그램 효과는 어디까지나 고정출연 패널의 '노래'가 프로그램 내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해야 일어났다. MC몽, 이승기 등이 예다.

그리고 이런 효과를 극대화시킨 컨셉트가 MBC '나는 가수다'와 '무한도전 가요제' 등이다. 프로그램이 '노래'에 집중하면 할수록 음원시장 파급력도 거세졌다.

그런데 리쌍은, 최소한도 '아수라 발발타'와 관련해선, 이런 식의 효과를 얻어낼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아수라 발발타' 직전 발매된 디지털 싱글 '그랜드 파이널' 경우가 정확한 예능프로그램 효과 사례였다.

'무한도전' 조정특집에서 BGM으로 집중 조명된 조정가다. 그 덕에 8월 둘째 주 가온 주간차트 3위에까지 올랐다. 이런 식이 아닌 다음에야, 예능프로그램 '출연'만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음원판매가 아니라 차라리 CF섭외라고 봐야한다.

한편 음원차트 '올킬'에 대해 앨범 세대의 음원시장 편입 논리를 적용하는 것도 무리가 있긴 마찬가지다. 일단 대중문화상품에 대한 세대별 소비심리 차원에서 그렇다.

소비욕구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세대가 자신들에 맞는 상품이 등장했을 시 이변을 일으키는 사례는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 후발적으로 따라붙지 상품 론칭 초기 몰려들진 않는다.

올 초 눈길을 끈 중장년층 러브스토리 '그대를 사랑합니다'만 해도 사실상 슬리퍼 히트를 이끈 중장년층 관객은 개봉 후 3주가 지난 시점부터 몰려들었다. 더군다나 리쌍 같은 힙합 그룹들 음악을 '앨범 세대' 30대 이상이 주로 향유한다는 점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다.

도시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도 늘 밤마다 미어터지는 힙합 클럽들의 주요고객은 더 말할 것도 없이 20대다. 문화적 흐름 차원에서도, 현 30대가 20대였을 시 선도적으로 향유하던 장르는 힙합이라기보다 모던 록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수라 발발타'의 '올킬' 현상은, 상당부분 음악소비의 이벤트화 경향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한 뮤지션 또는 특정 컨셉트 음악묶음이 시장에 등장했을 시 해당 뮤지션이나 콘셉트 자체가 이벤트화 돼 시장을 재편한다는 논리다.

이미 지난 3월 둘째 주에도 빅뱅의 미니앨범 4집 수록곡 중 무려 5곡이 가온 주간차트 10위내에 랭크된 바 있고, '나는 가수다'나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당시도 '올킬' 현상은 똑같이 벌어졌다.

전문뮤지션으로 상황을 제한해보자면, 음악적 궤가 뚜렷한 뮤지션들의 이벤트화 경향이 확실히 짙다. 어찌됐건 이벤트적 음원소비에도 뮤지션에 대한 신뢰도 정도는 작용한다는 방증이다.

끝으로, '아수라 발발타'의 상품적 매력 부분 역시, 상품 론칭 초기엔 그런 요소가 판매의 키포인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론칭 초기는 마케팅 캠페인이 판매의 향방을 좌우한다.

그러니 상품적 매력 자체를 곧바로 음원시장 성패와 연결지으려면, '아수라 발발타'는 초반 폭발이 아니라 초장기적 롱런 히트를 기록해야 한다. 아직 상황을 단정 지을 단계가 아니다.

SBS '런닝맨'에 출연 중인 리쌍 멤버 게리.
SBS '런닝맨'에 출연 중인 리쌍 멤버 게리.


● 리쌍 '아수라 발발타' 성공은 이변 아닌 당연

이제 의문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것도 저것도 다 아니라면, 대체 리쌍의 '아수라 발발타' 초반 돌풍 원인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그저 '빈집털이' 하나 때문? 그것만으론 설명이 안 된다는 것쯤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뭘까?

이 같은 의문에는 한 가지 도그마가 내재돼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리쌍이 이 같은 돌풍을 일으키는 건 '이변'이란 인식, 그런 음악, 그런 비주얼, 그런 컨셉트 그룹이 음원차트 '올킬'을 하는 건 특별한 사건이란 인식의 도그마다.

그런데 상황을 섬세히 따져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아주 당연한 일이다. '리쌍 현상' 관련 기사들 중 다수는 리쌍이 구사하는 힙합 장르에 대해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라는 인식을 깔고 들어간다.

한 기사에는 "그간 비주류 장르로 취급받던 힙합"이란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 사실 거기서부터 '리쌍 현상'은 '의외'라는 반응이 성립됐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아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반대에 속한다. 현 시점 한국대중음악산업에서 주류 장르를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게 힙합이다. 마니아층도 탄탄할뿐더러 대중화 단계에도 성공했다.

당장 지난해 가온 차트 통계만 봐도 알 수 있다. 주간, 월간도 아닌 연간 10위권 내에도 힙합 넘버는 '죽을 만큼 아파서(MC몽)' 3위, '그땐 그땐 그땐(슈프림팀&영준)' 8위 등이 존재한다.

사실상 미쓰에이,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 아이돌을 제외하자면 나머지를 모두 힙합과 R&B 뮤지션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빅뱅, 2NE1 등 YG엔터테인먼트 계열 힙합 아이돌들까지 포함하면 힙합시장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힙합은 음원시장 내 가장 믿음직스런 '중심' 장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힙합에 비하자면 오히려 유로팝 등이 안티트렌드에 속한다. 한 마디로, 리쌍은 '원래 잘 팔리는' 장르를 택한 것이다.

힙합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는 더 있다. 힙합은 본래 '모습 없이 강하다'는 점이다. 다이나믹듀오, 드렁큰 타이거, 슈프림팀 등 TV에 출연하건 안 하건, 예능프로그램을 뛰건 안 뛰건 관계없이 음원시장 내에서 아이돌들을 제치고 있는 힙합 뮤지션들은 부지기수다.

심지어 그 열악하다는 인디 씬에서조차도 힙합 뮤지션들은 상대적으로 자리를 잡은 상태다. 그러니 애초 TV 예능프로그램 출연 따위를 힙합 그룹 성패와 연결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였다.

거기다 리쌍은 이미 '뜬' 그룹이었다. 2년 전 발매한 6집 앨범 '헥사고널'의 싱글커트 곡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가 대히트를 기록한 바 있다. 거의 모든 음원차트에서 발매 즉시 주간 1위를 차지했다.

음원 랭킹을 벗어나서도 라디오 등에서 끊임없이 에어플레이 되며 큰 인기를 누렸다. 한편 그때도 지금만큼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앨범 수록곡들이 음원차트 상위 랭킹 됐다. 특히 '변해가네'의 선전이 눈에 띄었다.

거기다 올해도 리쌍은 '그랜드 파이널'로 선전을 펼쳤다. 번외 넘버처럼 등장한 BGM치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리곤 곧바로 '아수라 발발타'다. 더군다나 '아수라 발발타'는 '팔릴 만한 음악'들로 가득한 앨범이었다.

발라드 풍 멜로디와 접점을 만들어내 대중적인 느낌이 강했다. 가사도 10cm, UV 등 근래 트렌드 대로 '깨는 가사'들이 많았다. 사실상 히트하지 못한다면 그게 더 뉴스거리가 될 정도였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하고 있는 리쌍 멤버 길(왼쪽)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하고 있는 리쌍 멤버 길(왼쪽)


● 아이돌 중심으로 시장을 오판한 연예미디어

이제 상황을 종합해보자. 이번 '리쌍 현상'은 절대 의외라거나 이변이라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사실 '현상'이란 단어를 붙이기도 애매할 정도다.

지금처럼 '빈집털이'가 가능한 시점이라면 음원차트 '올킬'이건 뭐건 다 가능했다. 이미 이벤트화가 가능할 정도 위상을 리쌍은 이미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인 결과다.

그렇다면 왜 연예미디어는 '리쌍 현상'을 놓고 그리도 흥분했던 걸까. 단순하다. 그만큼 연예미디어가, 심지어 대중까지도, '지금은 아이돌 시대'라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

아이돌이 장악하고 있는 건 TV뿐이다. 음원시장으로 넘어가보면 상황이 크게 다르다. 물론 연간차트 20위권은 아무래도 미디어파워를 등에 업은 아이돌들이 다수 차지하고 있지만, 연간 100위까지 시야를 넓혀보면 전혀 다르다.

뜨거운 감자, 바이브, 임정희, 슈프림팀, 서영은, 거미 등 아이돌성이 극히 떨어지는 뮤지션들이 훨씬 많다. 당연히 리쌍도 그 대열에 들어간다.

결국 연예미디어가 끊임없이 쏟아내는 문제제기, 즉 '지금은 아이돌에만 시장이 편중돼있어 다른 음악이 살기 힘들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은 'TV가' 아이돌에 편중돼있을 뿐이다.

한국 대중음악소비자들의 취향은 의외로 다양하다. 음악소비는 잘 안 하면서 TV만 보고 있는 이들에게나 한국은 '아이돌 천하'인 것처럼 여겨질 따름이다.

이제 연예미디어의 시각도 달라질 때가 됐다. 외모가 뛰어나지 않은 가수가 1위를 차지하면 이변, 춤추며 노래하지 않는 가수가 1위를 차지하면 이변, 30대를 넘어선 가수가 1위를 차지하면 이변, 캔디팝이나 일렉 댄스를 구사하지 않는 가수가 1위를 차지하면 이변. 종합하자면, '아이돌이 아닌 가수'가 1위를 차지하면 무조건 이변.

이젠 지겹지도 않은가 말이다. 일단 예외가 너무 많아 도저히 일반론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뿐더러, 그나마 시장분위기 전환용으로도 약발이 다 떨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TV절대주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다보니 오히려 시장이 더더욱 TV중심으로 쏠려가 왜곡될 우려까지 낳고 있다.

마침 지난 8월7일 개코와 최자의 동반 군 제대로 재시동에 들어간 힙합 듀오 다이나믹듀오가 오는 11월 데뷔 10주년 기념앨범을 발표할 예정을 밝혔다. 베스트 앨범 형식이지만 신곡 5곡 정도가 추가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중심으로 본격 컴백구도에 나설 듯싶다. 안 그래도 2NE1 등 YG엔터테인먼트 계열 아이돌들이 올해 들어 서서히 록 등 백인음악 쪽으로 선회하면서 상대적으로 힙합시장 분위기가 저하된 터다.

리쌍의 컴백도 그런 점에서 오히려 더 큰 호응을 끌어냈을 가능성도 높다. 모처럼 하반기엔 '힙합 중심'이 이뤄질 수 있으리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다이나믹듀오는 CB.MASS 시절부터 꾸준히 대중적 히트를 연속해온 그룹이다. 음원시장에서 늘 폭발적 인기를 구가해왔다. 당연히 그들의 컴백을 기다려온 팬들도 많다.

그런데도 오는 11월 다이나믹듀오가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할 때, 과연 연예미디어들에서 또 다시 '아이돌도 아닌데 1위'라며 호들갑을 떨지 어떨지 지켜볼 일이다.

아무리 똑같은 걸 매번 새로운 것처럼 포장해 팔아내는 게 언론의 속성이라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반복논리 적용이라기보다 왠지 새로운 소재 발굴에 허덕이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만드는 쪽에서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겠지만, 그를 지켜보는 독자들은 더욱 지친다. 건투를 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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