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로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비행에 나선 대원들을 동행 취재하고 있는 본보 이훈구기자가 2번째 현지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이훈구기자의 취재일지를 게재합니다. 산악지대에 있어 통신시설이 없는 만큼 이동하는 현지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틈틈이 며칠간의 일지를 올리고자 합니다.》
◆20110823(화/12일째)
08:00 마스투지 모텔서 뒤쪽 돌산으로 중턱까지 2시간 산행 10:00 비행팀 Shandru Pass방향 날개짓,이 날 비행 약 10 km 16:00 지상팀은 Shandru Pass로 이동 23:00 어둠 속 목적지 도착,
나중에 합류한 비행팀들은 착륙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들을 전해준다.
내리자마자 오분도 채 안돼 수 십명의 동네주민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여들어 외계인처럼 낙하산타고 내려온 이방인들을 구경했다고 한다. 더위와,피곤에 지친 비행대원들에게 동네사람들은 갖가지 마실 물과 사과,포도,짜파티 등 먹을거리를 선물했다. 어떤 이는 집에서 귀한 얼음을 물에 담아 갖다주기도 했단다. 동승했던 정하영 촬영감독은 순박한 동네주민들에게 “X-히말라야 만세”를 우리말로 알려 준 후,외치게 해 카메라에 담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너무 늦어 텐트를 치지 않고 각자 침낭을 깔고 별을 보며 자기로 했다.
24:00 한밤중 간단한 저녁. 처음 술이 나왔다. 대원들이 모두 지쳤음을 안 박대장이 피로를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박대장이 몰래 준비한 양주를 한 병 꺼낸다.나중에 빙하지역 도보횡단 때 얼음을 깨 언더락을 할 계획으로 몰래 숨겨온 귀한 술이다. 늦은 시간 나온 반가운 술을 보고 피곤에 지친 대원들 얼굴에 모처럼 화색이 돌았다. 역시 술은 좋은가보다. 처음으로 웃음이 시끌벅적할 정도로 여기저기 터져나왔다.. 몇 순배 돌고 나니,홍팀장이 늦둥이 3살 딸아이가 보고 싶다며 한 숨을 쉰다. 이어 제주도에 6살 딸을 둔 함팀장이 아이폰을 꺼내 딸아이가 오기 전 노래하고 춤출 때 찍은 동영상을 틀어주며 자랑한다.
어느 순간 어둔 랜턴 빛 사이로 그 들 눈망울 속에 눈물이 살짝 보였다.
각자 침낭을 펴고 처음으로 땅바닥 위에 눕는다.
눈 위 바로 하늘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별들이 쏟아질 듯 하다.
은하수를 본 적이 언제였지? 저 쪽에서 누군가 신나게 침낭속에서 노래를 한다. 함팀장은 전화기 볼륨을 맘껏 키우고 동영상을 계속해서 틀었다. 밤하늘 사이로 여섯 살 아이의 낭랑한 목소리가 계속 퍼진다. ◆20110824(수/13일째)
10:00 강한 아침햇살이 침낭 속 대원들을 깨운다. 처음으로 다들 늦잠을 잤다. 본부텐트와 개인텐트를 설치했다. 간밤에 안보였던 산드루패스의 광활한 초지와 호수, 사방으로 병풍같은 산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숙영한 곳은 폴로경기장 앞이었다. 로마시대의 전차경기장처럼 돌로 만든 멋진 경기장이다. 산드루패스(3800m)는 파키스탄 북부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치트랄과 길기트지역의 중간이다. 매년 7월 이 폴로경기장에서 두 지역간 시합이 벌어지고,전국에서 몰려온 관광객의 텐트로 이 고원이 채워진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벌어지는 폴로경기장은 축제분위기로 변한다.
19:00 호수에서 저녁노을을 카메라에 담았다. 서산의 거대한 산군들이 붉은 빛 호수위에 그대로 들어갔다. ◆20110825(목/14일째) 흐림
아름답긴 하지만 당나귀와 양, 염소,소 들이 많아 동물 오물이 많은 게 흠이다. 걸을 때 조심조심해야 한다.산악지역에서 당나귀가 주요 운송수단이다. 이 때문에 포터들의 일자리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09:00 비행팀은 지상에서 장비들을 점검했다. 14:00 두 시간을 차로 내려가 비행할 방향의 지형 등을 정찰했다. 마을을 둘러보았다. 주식인 짜파티 만드는 데 쓰이는 밀 수확이 한창이다. 이 곳은 벌써 가을이다. 초록빛이 도는 개울과 산 풍광에 취한 함영민씨는 “너무 아름다워 이 동네에서 살고싶다”며 연신 감탄.
매일 야근이다. 그 날 취재일지나 사진정리하고 2중으로 저장하다 보면 열두시를 훌쩍 넘긴다. 밤만 되면 마른 기침이 나와 힘들다. 고소증세의 하나라고 한다. 4000m 적응은 했지만,5000m에서 다시 또 적응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산넘어 산이다.@@@@@@@@
◆20110826(금/15일째)
10:00 산드루 패스 북쪽 산 정상 바로 아래에서 정찰비행을 했다. 고도계가 4500m를 가르킨다. 지금껏 오른 것 중에서 최고고도다. 비행을 마친 대원들이 터뷸런스(소용돌이성 바람??)가 심하다고 걱정한다.
14:00 우리 텐트에 양치기하는 주민과 어린 소녀가 찾아왔다. 우리 텐트에서 500미터 산 언덕에 살고 있다고 했다.
소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척박한 이 곳에서 교육시설도,놀이터도 없이 살아 온 야생소녀 이미지 그대로다. 아무 말도 안하고 무표정이다. 양치기 주민은 미르 모하메드(50.Mir Mohamed),딸은 사내이 굴샨(9.Sanai Gulshan). 서울에서 가져 온 즉석 사진기를 꺼내,찍자마자 나온 인화지를 선물했다. 얼굴이 서서히 드러나는 게 매우 신기해 하는 듯 해도 표정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대원들이 오후에 사내이 집을 방문했다. 양 6마리,염소 8마리,소 4마리가 이들 가족의 전 재산이다. 허름한 돌집에 가족들이 많았다. 부엌과 거실 침실이 한데 있는 구조다. 양젖을 끓이며 요거트를 만들고 있었다. 박대장이 모형 패러글라이더를 사내이에게 선물했다. 아직도 무표정이지만, 아까 산 아래서 한 번 봤다고 경계의 눈빛은 덜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외따로 떨어진 산중에 사는 아이들. 겨울이 되면 눈이 많이 내려 하루에 아침,저녁 두 번 오는 버스도 끊겨, 아랫마을로 이동한다.
대원들이 인사 후 집에서 나와 언덕을 넘을 때, 사내이집을 돌아보았다. 사내이가 선물받은 모형패러글라이더를 종이비행기 날리 듯 달리며 놀고 있었다. 소녀의 입가에 웃음을 처음 보았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2200 소나기가 쏟아진다. 천둥번개가 바로 위에서 내리친다. 수 백번도 넘게 때리는 번개빛이 내리는 순간은 대낮같다. 자다가 화들짝 놀란 대원들,모두 텐트밖으로 나와 밖에 늘어놓은 장비와 발전기 등을 다시 정리했다. ◆20110827(토/16일째) 흐림
아침부터 박대장의 표정이 무겁다. 어제부터 말이 없다. 산드루 패스에 온 지 나흘이 지나도록 궂은 날씨 때문에 제대로 된 비행을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서 전해 온 이 곳 상세 기상정보는 31일까지 강풍이 계속 돼 비행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각 국가와 지역에서 정해진 일정대로 가야지만, 원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아침식사 후 박대장이 결단을 내린다. 비행팀은 산 정상에서 비행을 시도 후 착륙지점부터 걸어간다고 말한다. 애시당초 비행이 불가능하면 걸어서 이동한다고 다짐했었다. 서둘러 텐트를 거두고 이동준비에 들어간다.
이 날 예상대로 열기류를 못잡은 비행팀은 동쪽 2km 산드루패스 초입에 착륙했다.
박정헌대장,홍필표,함영민 대원과 김민수대원은 다음 목적지 판다르(Phandar)방향으로 걷고 또 걸었다. 정하영 촬영감독이 도보팀에 합류했다. 정감독은 산악등정 촬영전문으로 히말라야의 14좌 중 8개를 등반한 베테랑 산악맨이다.
거대한 산들 사이에서 쏟아지는 냇물들은 강물이 되어 서로 만난다. 이 강물은 길기트까지 계속 서쪽으로 흘러 인더스강으로 이어진다. 강 옆엔 광할한 초지가 펼쳐진다. 초지엔 소,양,염소,당나귀,말 등 온갖 초식생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이 강줄기 옆의 동물수만 수 천여마리다. 초식동물들에겐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다. 저녁이 되면 주인들을 따라 다시 집으로 이동한다. 겉보기엔 경계없이 야생으로 흩어진 듯 하지만 모든 동물들의 주인이 따로 있고 경계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양떼를 모는 일은 어린 아이들의 몫이다. 가다가 마주친 양떼들 틈엔 어김없이 소년,소녀들이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강태공들도 많다. 한 낚시꾼이 자신이 잡은 송어들을 보여주며 자랑한다. 강안엔 송어가 많이 살고 있다. 이렇게 자연의 혜택이 넘쳐 나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아웅다웅 다투며 살 필요도 없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면 그만이다. 순박함과 친절한 그들 눈빛은 당연하다. 중간에 만난 박대장은 “고향땅에서 먹었던 맛있는 송어무침 생각이 간절하다”고 말한다.
걷고 걷다가 첫 마을을 만나다. 바르사트(Barsat)라고 하는 시골이다. 산 아래 작은 밭들엔 밀이 가득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밀수확이 한창이다. 이 곳은 벌써 가을빛이 완연하다. 밀을 뺀 나머진 말려서 겨우내 가축 먹이로 쓰는 건 우리와 똑같다. 박대장이 낫질을 해보고 싶다고 밀밭으로 내려간다. 외지인의 난데없는 봉사활동 제안에 잠깐 놀란 듯 하던 농부는 이내 낫을 건네준다. “어렸을 때 벼베기,보리베기가 생각나네요. 이 분들은 트랙터(탈곡기)도 없이 우리 몇 십년전 수준으로 힘들게 농사짓는 걸 보니 맘이 찡하네요”
10여분 정도, 밀수확을 도운 후 다시 길을 걷는다. 그들은 걷고 또 걸었다. 다시 날 수 있는 곳을 향해….
21:00 지상팀은 판다르(Phandar)는 곳으로 도착했다. 오늘도 밤새 다시 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가 요동쳤다. 오늘은 다행히 텐트가 아닌 숙소여서 무섭지 않았다. ◆20110828(일/17일째)
08:00 아침뉴스에 대원들 모두 귀를 기울인다.
며칠 전 건너 온 치트랄 북쪽 국경에서 어제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로켓포공격을 해, 파키스탄 국경수비대 10여명이 죽고 탈레반 76명이 죽었다는 소식이다.파키스탄은 크고 작은 사고가 연일 이어진다. 여기 온 이후 계속 그랬다. 며칠 전엔 CIA 무인폭격기가 알카에다 지도자 은신처에 폭격을 했다는 소식도 현지인들이 전해주었다.(추가:8월31일엔 파키스탄 남부 퀘타(Quetta)에서 차량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 5명이 죽었다) 대원들은 지나쳤던 곳 바로 옆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이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도 “한국가족들이나 우리나라 외교통상부에서 왜 전화가 안오지?”라고 농담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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