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예비전력량을 늘리려면 개인과 가정, 기업 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곳은 기업이다. 기업들이 소비하는 전력(산업용)은 우리나라의 전체 전기사용량의 54.6%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많은 기업이 전력 대란을 ‘남의 일’처럼 여기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전기 귀한 걸 체감할 수 있도록 산업용 전기요금을 확 올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점심식사 시간에 컨베이어벨트 작동을 멈추면 전기료를 한 달에 30만 원 정도 아낄 수 있어요. 그런데 직원들이 ‘뭘 겨우 그 돈 아끼려고 번거롭게 껐다 켰다 하느냐’고 반대하더라고요. 돈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되니까 전기 아까운 줄을 모르는 것 같아요.”(경북지역 전자부품 공장 담당자)
전국에서 전력 대란이 빚어진 지 고작 나흘이 지난 19일. 하지만 산업현장의 풍경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대기업 사무실에서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춥다며 카디건을 입고 양말까지 신은 여직원들을 볼 수 있었다. 경기도에 본사를 둔 한 중견그룹 임원은 “요즘 젊은 직원들은 회사에서 ‘전기 아껴라, 기름 아껴라’ 하고 말하면 ‘좀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산업용 전기료 싸, 올려도 ‘무반응’
국내에서 기업들은 전기료와 관련해 큰 혜택을 받고 있다. 과거부터 정부가 ‘산업계 발전=국가 발전’으로 여겨 온 덕분에 산업용 전기료를 농사용 다음으로 싸게 매기고 있어서다. 현재 국내의 전기료는 용도별로 다르게 책정돼 있다. 산업용 전기료는 1kWh에 84.35원이다. 농사용(42.20원)의 두 배 수준이지만 주택용(121.76원)과 비교하면 3분의 2 수준이다. 산업용 전기료는 원가의 92.1% 수준으로 교육용(95.87원)이나 가로등용(90.19원) 전기료보다도 싸다.
이 덕분에 기업들이 누리는 혜택은 적지 않다. 1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지식경제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강창일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3039억 원의 요금을 냈지만 만약 일본이었다면 8083억 원을 냈어야 했다. 포스코도 지난해 2576억 원의 전기료를 냈지만 일본이었다면 6851억 원을 냈을 거라는 분석이 있다.
이처럼 싼 전기료는 기업들의 전기소비를 빠르게 상승시키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산업용 전기소비량은 전년 대비 12.3%나 증가했다. 주택용(6.3%) 일반용(8.7%) 등이 한 자릿수 증가를 보인 것과 비교하면 큰 폭의 증가다.
이 같은 지적을 반영해 정부는 8월 산업용 전기료를 소폭 올렸다. 대기업 건물에 대한 전기요금도 6.3% 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싸다 보니 기업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서울 도심에서 고층빌딩 여러 채를 사옥으로 쓰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전기요금이 올랐다고 해도 원래 요금이 싸서 그런지 건물에 따라 월 100만∼200만 원만 더 내는 것 같다”면서 “일선 직원 가운데 전기요금이 올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 절약… 일본 기업과 비교하면 ‘걸음마’
전력 사용량이 많아 경영비용에서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철강, 화학업계 등은 “일반적인 절전 대책 외에 획기적인 방안이 없다”며 난감해하고 있다.
하지만 올여름 절전 기간에 일본 기업들이 펼친 ‘지독한’ 절전 노력을 들여다보면 우리 기업들의 노력이 정말 최선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올여름 일본 기업들은 노타이 정장을 일반화한 것은 물론이고 서머타임제와 재택근무제까지 확대 도입했다. 마에다 건설회사는 ‘머리 손질에 드는 전기도 절약하자’며 직원들에게 머리를 짧게 깎자고 권유했다. 컴퓨터 사용이 많은 도쿄의 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는 사무실 사용 전력을 일부라도 자급자족하자며 사무실 책상마다 페달용 축전지를 설치했다. 이 제품은 NHK방송이 절전 아이디어 상품으로 소개했던 것으로 직원들이 페달을 돌리며 일하면 전력이 생산되도록 한 장치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좀스럽다’고 여길 법한 이런 노력은 중소기업들만 펼친 것이 아니다. 평소 에너지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은 전력수요가 많은 평일 오후 1∼4시에 도쿄 본사의 컴퓨터를 모두 끄고 직원들이 태블릿PC인 ‘아이패드’로 업무를 보게 했다. 이를 통해 30% 이상 전력 절감 효과를 봤다는 게 손 사장의 설명이다.
이수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부터 우선적으로 ‘실시간 요금제’나 전력이 부족할 때는 비싼 요금을 매기는 ‘피크 요금제’를 적용하고 스마트 미터기 등을 사용하게 해 전기 공급이 부족할 때 절약에 힘쓰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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