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4대 이용훈 대법원장(69)의 6년 임기가 24일 끝난다. 그는 임기 내내 대법원 최고 판결기구인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을 맡아 왔다. 그가 주관한 전원합의체엔 ‘이용훈 코트(court·법정)’라는 미국식 별명이 붙었다. 이 대법원장의 철학이 판결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그의 퇴임을 앞두고 6년간의 전원합의체 판결 95건을 전수 분석했다. 특정 대법원장 임기의 전원합의체 판결 전체를 심층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매달 한 번씩 대법관들의 전원합의가 열렸던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11층 전원합의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재임했던 최근 6년간 전원합의 분위기는 과거와 달리 믿을 수 없을 만큼 격렬한 토론이 잇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나 고요해 정적마저 감돌았던 대법원 분위기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는 것. 대법관들은 의견이 다를 경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격렬하게 다투고 끈질기게 상대방을 설득했다고 한다. 이념적 정치적으로 격렬한 논란에 휩싸인 사건을 다룰 때는 더 심했다.
○ 전쟁터 같았던 전원합의체
이 대법원장은 취임 초기 거친 말투로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해 매우 강하고 공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전원합의체 재판장으로서 이 대법원장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평소 점잖고 과묵해 보이는 대법관들은 전원합의 때만 되면 인생을 건 듯 결사적으로 다퉜지만 도리어 이 대법원장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대법관들은 이를 “이 대법원장의 리더십”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법관들이 서열과 기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을 붉힌 채 고성을 주고받으며 다툴 때도 이 대법원장은 나서지 않았다. 대법관들이 격한 몸짓까지 하며 앉은 의자가 들썩일 정도로 흥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법관들이 격렬하게 다투고 집요하게 설득하는 과정이 완벽히 보장돼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법원 관계자들은 이 대법원장이 6년간 전원합의에서 100% 다수 의견을 지지한 것에 대해 “결코 관행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제시하기 위해 진보 성향의 대법관을 임명 제청했지만 이 대법원장 자신의 생각이 항상 진보 성향 대법관들과 같지는 않았다는 것. 경우에 따라서는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 의견에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동조하지 않도록 대법관들을 설득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 대법관 다양성이 격렬한 토론 유발
이 대법원장이 이끄는 전원합의에서 전례 없이 격렬한 논쟁이 잦았던 것은 다양한 대법관 구성 덕분이다. 이 대법원장 때는 사법 사상 처음으로 2명의 여성 대법관이 있었다. 여성인 김영란 전 대법관(국민권익위원장)과 전수안 대법관 모두 주로 소수 의견의 대표주자였다. 이 대법원장 임기 내내 폐지 논란에 휩싸였던 우리법연구회 출신 박시환 대법관도 국가보안법 사건 등 논란이 뜨거웠던 사건에서 소수 의견을 이끌었다.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낸 양창수 대법관이 교수 출신으론 처음 대법원에 입성했다.
○ 대립과 갈등의 용광로, 전원합의체
본보의 분석 결과 ‘이용훈 전원합의체’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정치적으로 파장이 큰 사안일수록 격한 대립과 갈등, 논란을 통해 각자의 의견이 섞이고 녹아드는 용광로 같은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실천연대 이적단체 사건 등 국가보안법 사건과 삼성에버랜드 사건,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 등 숱한 논란 속에 하급심 판단이 엇갈렸던 사건들이 전원합의에서 모두 보수적으로 결론이 났다.
분석 결과 흥미로운 사실도 확인됐다. 정치적 이념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김황식 전 대법관(국무총리)이 소수 의견을 많이 낸 대법관 5위에 올랐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처럼 ‘스윙보터(swing voter·균형추)’로 불리며 다수·소수의 균형을 맞춘 대법관은 김능환 대법관과 이홍훈 전 대법관이었다. 50건 이상의 전원합의에 참여한 대법관 가운데 전수안(16.1%) 박시환 대법관(15.8%)과 이홍훈 전 대법관(13.7%) 순으로 소수 의견이 많았다.
○ 6년 새 사법부 크게 변화
이 대법원장은 은둔과 침묵 이미지가 굳어진 전임자들과 달리 자신이 직접 선두에 서서 사법정책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는 공판중심주의 확립이다. 법정에서 나온 증거와 증언만을 토대로 사건의 실체를 판단하는 공판중심주의는 원래 형사재판의 대원칙이었지만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대법원장이 공판중심주의를 강하게 추진한 결과 검찰의 반발이 커진 점은 부작용으로 지적된다. 또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국회 폭력 사건 1심 무죄’ 등 하급심의 튀는 판결이 이어지면서 법원 판결의 신뢰 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튀는 판결 논란 이후 국회가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등 법원이 외부의 거센 압력을 받기도 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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