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피니즘과 에코이즘의 추구가 현대 등반의 대세라고는 해도 ‘정복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등산의 대중화와 함께 물량 공세를 앞세운 산악인들의 히말라야 도전도 급증하고 있다. 상업등반으로 대표되는 산의 세속화는 자연 훼손과 쓰레기를 남긴다. 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버린 자일, 배낭, 산소통, 생활용품 등 각종 쓰레기가 히말라야 곳곳에 처박혀 있다.
히말라야의 쓰레기는 1990년대 초반부터 국제사회의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1991년 한 외신은 “히말라야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쓰레기 야적장으로 변했다”고 보도했다. 등반대와 여행객은 계속 늘었다. 2007년 영국의 BBC 방송은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가 첫 등정에 성공한 이후 에베레스트에는 50여 t의 쓰레기가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생태계 훼손을 막기 위해 주요 루트의 등산객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네팔 정부는 1992년 1개 등반대 인원을 5명으로 한정했지만 4년 뒤 되레 이를 상향 조정했다. 입산 허가에 따른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그나마 등반대가 각종 폐기물과 쓰레기를 자진해서 회수해 오도록 유도하기 위해 4000달러의 보증금을 예치하도록 한 게 대안이었다.
히말라야 고봉의 경우 베이스캠프 이상의 높이에서는 쓰레기가 썩지 않는다. 철수할 때 남긴 쓰레기는 대개 빙하 속에 묻힌다. 지구온난화로 눈이 녹으면서 예전에 파묻었던 쓰레기들이 땅 위로 나오는 일도 많아졌다. 베이스캠프 정도라면 쓰레기와 인분을 모아 놨다가 하산할 때 챙겨올 수 있지만 더 높이 올라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극한의 환경에 처한 등정대원들이 쓰레기 수거에 신경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전문 산악인들이 책임감을 갖고 환경 보호에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본의 젊은 산악인 노구치 겐이 주도한 에베레스트 청소원정대는 2001년 약 두 달 만에 2t 가까운 쓰레기를 수거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한국의 한왕용 씨를 포함해 ‘청소 원정’에 나서는 양식 있는 산악인이 늘고 있다. 한 씨는 이를 ‘빚을 갚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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