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칼럼]‘짝’에서 ‘진짜 짝’을 찾기 어려운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9일 11시 05분


'교양정보' 프로그램을 자처한 SBS '짝'
'교양정보' 프로그램을 자처한 SBS '짝'
대학상담소에서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성 또는 이성문제로 상담을 받으려하거나 다른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왔더라도 결국 연애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때로는 학생들이 조심스럽게 이런 문제로 상담을 받아도 되냐고 물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바로 일과 사랑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실제로 인간의 문제는 모두 관계에서 나오며, 그러기에 더더욱 삶에서 가장 가깝고 중요한 관계인 짝을 찾는 것 사랑을 하는 것은 평생직장을 찾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최근 가깝게 지내는 미혼의 선배로부터 SBS '짝'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즐겨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 역시 관심을 갖고 보게 됐다. (재미있는 건 제작진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에게 짝을 만나기 위한 교양과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인지 프로그램 분류를 예능이 아닌 '교양정보'에 두었다는 점이다)

제대로 본 건 두세 번 정도라 뭐라고 말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짝'과 관련된 여러 가지 논란을 보고 들으며 뭔가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사명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담에서도 장기상담을, 관계 중심의 접근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이 프로그램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짝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가장 소중한 짝에 대한 희생과 배려와 사랑을 살펴본다'라는 취지와 달리 이 프로그램에는 진정한 짝을 만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보였기 때문이다.

▶인위적, 동물적, 조건적인 '짝'

첫째, 인위적이다.

6박 7일 동안 '애정촌'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오로지 짝을 찾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과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첫인상으로 상대를 선택한 후 자기소개를 하고 그 후에 도시락을 같이 먹을 사람을 선택하며 첫 번째 데이트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어떤 사람은 그것이야말로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만남과 선택이 아니겠냐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매우 효율적인, 기가 막힌 설정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짝을 찾고자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나온 출연자들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순간적으로 보여지고 판단될 자신을 포장할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알아간다기보다는 하나의 상품으로 점수 매기고 순간적으로 가장 값어치 있어 보이는 상대를 선택하기 쉽다.

둘째, 동물적이다.

'짝'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 한번쯤 봤을 법한 동물들의 짝짓기가 떠오른다. 특히 화려한 수컷 조류들이 암컷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장면.

자기소개부터 시작해 제한된 일상을 함께하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어필하고 싶어 하는 출연자들을 바라보노라면 어느 순간엔 처절함마저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택된 여자, 혹은 남자는 우월한 인간으로 부러움을 사고 그렇지 못해 혼자 도시락을 먹게 되는 사람은 낙오자로 동정을 받는다.

진화심리학의 입장에서 볼 때 학벌 좋고 돈 많은 남자가 예쁜 여자를 선택하는 것은 보다 나은 종족 번식을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한다지만, 종족 번식을 위해 짝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쩐지 좀 씁쓸하다. 그럴 땐 적어도 사랑이란 단어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셋째, 조건적이다.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될 만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인 것 같다. 지상파 방송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출연자들의 프로필이 자세히 나오고 거기에 대한 반응들이 매우 단순하다. 학벌과 직업은 당연하고 아버지가 뭐하는 사람인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 결혼자금은 어느 정도 모아놓았는지 등. 마치 결혼정보회사에서 조건으로 등급을 매기듯이 프로필이 공개되고 여러 출연자들 앞에 서서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결국 돈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요즘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고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요즘 청소년들과 상담할 때처럼 답답하다. 정말 돈이 최고일까. 돈 잘 버는 남자가 지식과 미모를 겸비한 여자를 만나면 행복하고 안전한 길로 접어드는 것일까.

▶'진짜 짝'? 비슷한 욕구 가진 사람부터 찾아야…

그렇다면 내게 잘 맞는 짝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끔 미혼 상담자들이 질문할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서로 비슷한 욕구를 우선시하는 사람과 만나라는 것이다. 인정, 사랑, 재미, 성취 등 사람들이 추구하는 욕구 혹은 가치는 보편적이지만 각자가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욕구는 다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함께 살 때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상호 이해하는 것을 중시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각자의 성공과 성취를 중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고 그것을 온전히 수용해줄 상대를 만나는 것이 아닐까. 이 두 가지를 알기 위해선 반드시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한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엄마가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내 성향은 어떤 것인지(상대가 바라는 것이 청소든 심부름이든 그저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 말이다.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다보니 내가 너무 이상적인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짝'을 통해 짝을 찾기란 매우 어려울 것 같고, '짝'으로 연애를 공부하는 수많은 남자들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단 여기서 성공이란, 삶에서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행복하게 자신의 가치를 누리며 사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않아도 잘들 살아가는 세상이라지만 여전히 진정한 짝을 만나 즐겁게 생을 누리다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계정 상담심리 전문가 lisay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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