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86>시루팥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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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30일 03시 00분


하늘이 열린 개천(開天)을 기념하는 10월의 고사떡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속이지만 예전에는 음력 10월이면 집집마다 시루팥떡으로 고사를 지냈다.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며 대청마루와 부뚜막과 장독대 등에 시루팥떡을 놓고 집을 지키는 수호신에게 안녕을 빌었다. 시루팥떡은 그러니까 설날의 가래떡, 추석의 송편처럼 10월 상달의 고사떡이다.

상달 고사에 시루떡을 놓는 이유에 대해선 1925년에 발행된 ‘해동죽지(海東竹枝)’에 설명이 나온다. ‘옛 풍속에 10월 단군이 세상에 내려온 날, 집집마다 시루팥떡을 해 놓고 복을 빌었다’고 적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원전 2333년 천신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 신시(神市)를 열고 홍익인간의 대업을 펼치기 시작한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시루팥떡은 그러니 10월 3일, 하늘이 열린 날인 개천(開天)을 기념하는 떡이라고 할 수 있다.

단군의 자손인 한민족에게 10월은 세상이 시작된 달이어서 상달이다. 바꿔 말하면 한 해의 시작인 정월이 된다. 참고로 고대 북방민족은 10월을 새해로 삼았는데 진시황의 진나라도 여기에 해당된다.

시루팥떡이 고사떡이 된 이유도 단군신앙과 관련이 깊다. 고사를 지낼 때 소원을 비는 대상은 성주님이다. 성주는 집안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원래는 단군(환웅)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올 때 선발대로 내려보냈던 건축의 신이다. 해동죽지에 관련 설명이 나온다.

“단군이 성주에게 명하여 지상에 궁궐과 사람들이 살 집을 짓도록 했는데 가옥이 완성되자 하늘에서 내려왔기에 10월을 상달이라고 한다. 그래서 해마다 이때가 되면 술과 떡을 차려놓고 복을 비는데 이를 성주받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무속을 풀이한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서도 무당이 받드는 성주가 집을 지키는 신이라고 했다. 건축의 신이었던 성주가 집을 다 짓고 난 후에는 집안을 지키는 수호신이 된 것이다. 세분하면 성주는 대들보의 신이고 터줏대감은 장독대의 신이며 조왕신은 부엌을 지키는 신이다.

민족종교인 대종교의 교리를 적은 ‘신단실기(神檀實記)’에는 10월 농사가 끝난 후 햇곡식으로 시루에 떡을 해서 술과 과일을 차려놓고 신을 모시는데 이를 성조(成造)라고 했다. 집안과 나라를 이룬다는 뜻으로 단군이 백성에게 집을 짓고 거처하는 법을 가르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는데 좀 더 확장된 개념이다.

그러니 시루팥떡은 좁게 보면 10월 상달에 집 짓는 법을 가르쳐주고 또 집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인 성주에게 바치는 제물이고, 넓게 보면 하늘이 열린 날인 개천절을 기념하는 떡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시루팥떡을 했을까. 시루떡이야말로 먼 옛날부터 조상들이 먹었던 우리나라 정통 떡이기 때문이다.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한중일 삼국의 떡을 비교했는데 곡식의 가루를 뭉쳐서 만드는 떡은 한국과 중국, 일본이 각각 속성이 달라서 중국은 밀가루를 주재료로 만들며 일본은 찹쌀가루를 주로 쓰지만 우리나라는 멥쌀가루로 떡을 만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민족의 떡은 시루떡이 정통으로, 다른 떡은 시루떡의 보조이거나 사치품이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시루떡이 발달했는데 조선후기의 조리서인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보이는 시루떡 종류만 11가지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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