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 박원순]‘인증샷’ 찍으려 몰려오자…민주 “아, 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4일 03시 00분


■ SNS 위력 앞에 정당 조직력 무릎꿇다

경선 현장서 ‘인증샷 놀이’ 3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시민참여 경선에 참여한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인증샷 놀이’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경선 현장서 ‘인증샷 놀이’ 3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시민참여 경선에 참여한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인증샷 놀이’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제1야당의 조직 동원력은 의외로 무기력했다. 3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치러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시민참여경선은 정당의 조직 동원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투표 독려 운동에 무릎을 꿇는 자리가 됐다.

○ SNS 투표 독려가 조직 동원 이겼다

무소속 ‘시민후보’ 박원순 변호사는 이날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최종 득표율 52.15%를 기록하면서 45.57%를 얻은 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크게 앞섰다. 경선 득표율은 일반 시민 여론조사(30%), TV토론 후 배심원단 평가(30%), 시민참여경선(40%)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박 변호사는 지난달 30일 밤 공개된 배심원단 평가에서 54.43%로 박영선 후보(44.09%)보다 10.34%포인트 앞서며 기선을 제압했다. 이달 1∼2일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는 57.65%의 지지를 얻어 박 후보(39.70%)와의 격차를 17.95%포인트 차로 벌리며 현장투표로 실시된 시민참여경선의 열세(46.31% 대 51.08%)를 만회했다.

이날 승부를 가른 것은 시민참여경선에서 박 변호사의 예상 밖 선전이었다. 유명인사의 참여와 SNS를 통한 투표 독려 운동이 투표율 제고에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시민참여경선은 사전 신청자 3만2명 중 1만7878명이 투표에 참가해 59.6%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이번 서울시장 당내 경선에 참여한 민주당 당원이 모두 8000여 명이었다. 오늘 경선의 전체 참여자가 1만5000명을 넘어섰다는 것은 박 변호사 지지층이 한꺼번에 몰렸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젊은층 참여 ‘인증샷’ 잇달아

이날 투표가 시작된 오전 7시부터 중장년층 선거인단이 대거 몰렸다. 이들이 민주당을 지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민주당에선 당 후보인 박영선 의원의 역전승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됐다. 손학규 대표는 오후 1시경 체육관 입구에서 투표를 위해 입장하는 시민들에게 악수를 청하며 “서울시장 선거를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잘못된 서울시정을 심판하는 선거로 만들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민주당 후보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조직력 과시에 놀란 박원순 변호사 측은 박 변호사의 트위터(@wonsoonpark)로 현장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며 필사적으로 투표를 독려했다. “민주당의 조직 동원이 만만치 않습니다” “현재 경선장 분위기가 8 대 2로 불리합니다. 서둘러 투표에 참여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트위터를 통해 전파했다.

그래서인지 오후 들어 젊은층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30대 부부, 20대로 보이는 연인 등이 몰려들었다. 박 변호사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인화학교 사건으로 세간의 이목을 받고 있는 영화 ‘도가니’의 원작자인 소설가 공지영 씨도 투표에 참가한 뒤 ‘인증샷’을 트위터에 올려 박 변호사를 측면 지원했다. 조 교수와 공 씨,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투표 참여 인증샷을 올리는 시민들에게 추첨을 통해 자신들의 책을 선물하겠다고 나서며 투표를 독려했다.

이처럼 SNS 투표 독려 공세가 거세지면서 오후 5시경 시민참여경선 선거인단 투표율이 52.3%를 기록하자 민주당 쪽에서는 “아, 졌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막판 역전극을 위해 서울지역 당원과 일반 시민을 상대로 대대적인 세몰이를 벌였던 민주당으로선 이미 당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를 넘겨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얘기였다.

○ 희한한 선거장


이날 체육관 입구에서는 시민 축제를 방불케 하는 풍경들이 연출됐다. ‘시민악대’로 불리는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이 기타와 트럼펫을 들고 나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노래를 열창하는 등 거리공연을 벌였다. 한쪽에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석방 탄원서 제출을 위한 서명운동이 벌어졌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서울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등 최근 인터넷 라디오 방송 ‘나는 꼼수다’로 인기를 끈 출연진의 즉석 사인회도 열렸다. 1시간 이상씩 기다려 사인을 받는 행렬이 이어지자 민주당 관계자들 사이에선 “기성 정치권에 몰아치는 새로운 바람을 실감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오후 8시 최종 후보가 발표된 순간 장충체육관에는 “박원순”을 연호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지지자들은 ‘사람이 희망입니다’ ‘애매해진 서울을 정해주는 남자’라고 적힌 현수막과 촛불을 흔들며 박 변호사를 환호했다.

한편 박 변호사와 박 의원,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는 이날 체육관 앞에 나란히 서서 투표장에 들어가는 시민들에게 악수를 건네는 것으로 투표 운동을 대신했다. 인사말은 모두 “○○○입니다” 등 자신의 이름을 대는 식이었다. 공직선거법상 당내 경선이 아니어서 후보자들이 정견 발표를 할 수도, 지지를 호소할 수도 없는 까닭이다.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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