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후보로 올랐던 것도 몰랐습니다. 새로 생긴 박경리 문학상이 수상 범위를 국경 너머까지 넓힌다는 얘기를 듣고 이런 시도가 한국 문학 사상 일찍이 없었던 일이니까, ‘특별한 안목을 갖고 많은 생각을 한 관계자들이 좋은 일을 시작했구나’라는 정도만 혼자 생각했죠.”
제1회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광장’의 작가인 소설가 최인훈 씨(75)를 4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만들어줘 감사할 따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활동해온 최 씨는 1936년 함북 회령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법대를 중퇴하고 1960년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 ‘라울전(傳)’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60년 스물다섯 나이에 중편 ‘광장’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남북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비판한 최초의 한국 소설이자 1960년대 문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이 된 평론가 김현은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였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였다”고 평가했다.
최 씨는 대표작인 ‘광장’에 대해 “시기를 잘 타고나기도 했다”며 웃음 지었다. “1960년 4·19가 일어났고 ‘광장’은 그해 11월에 발표했어요. 당시 사회를 휩쓸고 있던 4·19 정신에 부합했기에 호의적으로 평가된 측면이 있지요. 이듬해 바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사회 분위기가 급변했지만….”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남한에서 고초를 겪고 월북하지만 다시 북한의 사회주의에도 환멸을 느낀다. 6·25전쟁에 뛰어든 이명준은 포로가 되고, 포로교환에서 남이나 북을 택하지 않고 결국 중립국을 택한 뒤 이송 중인 배 안에서 실종된다. ‘이명준이 2011년에 와서 남북을 선택해야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묻자 최 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시 남북과 지금 남북을 비교하기 어렵고, 더 결정적으로 제가 변화한 북한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해 답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60여 년 전 남북 대치 상황에서 이명준은 남으로 가든, 북으로 가든 제대로 정착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이명준의 실종으로 끝나는 결말은 기존 지성이나 권위, 사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 나름의 머리와 가슴으로 생각한, 자신이 납득할 만한 그런 인생을 살겠다는 의식의 발로죠.”
1950년 12월 당시 고교 1년이던 최 씨는 강원 원산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피란길에 올랐다. 원산에서 미군 폭격기를 피해 방공호로 뛰어가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고 그는 회상했다. “6·25전쟁이 삶과 문학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꿨다”는 그는 ‘구운몽’ ‘회색인’ ‘서유기’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등을 발표하며 자아와 현실에 대한 탐구와 성찰이라는 뚜렷한 주제 의식을 가진 작가로 입지를 다졌다.
고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에 대해선 “1960년 ‘광장’의 출판기념회 때 본 게 마지막인 것 같다. 개인적인 왕래는 없었다”면서 “그분의 작품을 읽었지만 지금 와서 내가 새삼 평가할 부분은 없는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1994년 발표한 자전적 소설 ‘화두’ 이후 신작을 내지 않는 작가에게 집필 근황을 묻자 “글은 최소한 예술적인 훈기(薰氣)가 불어와야 한다. 미신일 수도 있지만 아직 내게는 그렇다. 그럴 때가 오면 쓸 만하면 쓸 것이고, 못 쓰면 못 쓰는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해까지 10번 ‘광장’을 개작한 그는 “한문을 되도록 한글로 바꾸고, 문학적 수사도 세련되게 다듬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앞으로도 눈에 띄는 곳이 있으면 개작하겠다”며 “매일 산책하고, 메모하며 살아가는 ‘작가의 일상’을 유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소설가 최인훈 약력
―1936년 4월 13일 함북 회령 출생 ―1950년 6·25전쟁 중 월남 ―1952∼56년 서울대 법학과(중퇴) ―1959년 자유문학에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 발표하며 등단 ―1960년 소설 ‘광장’ 발표 ―1962년 소설 ‘구운몽’ 발표 ―1966년 동인문학상 수상 ―1977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 수상 ―1977∼2001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2001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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