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송전선이 뻗어 있다/서리의 왕국,모든 음악의 북쪽에/해가 낮게 걸려 있다/그림자가 거인이다/머잖아 모두 그림자/자줏빛 난초꽃들,/유조선이 미끄러져 지난다/달이 꽉 찼다/잎새들이 속삭인다/멧돼지 하나 오르간을 연주한다/종소리들이 울려 퍼진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80)는 ‘스웨덴의 국민 시인’으로 불린다. 세상을 높은 곳에서 신비적 관점으로 바라보며, 자연 세계를 세밀하고 예리한 초점으로 묘사하는 그를 스웨덴 국민은 ‘말똥가리 시인’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6일 “그는 역사와 기억, 자연, 죽음 같은 중대한 질문에 대해 집필해 왔다. 그의 시는 경제성과 구체성, 그리고 신랄한 비유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01년 노벨 문학상 제정 이후 스웨덴 출신으로 일곱 번째 수상자가 됐다. 1974년 스웨덴의 하리 마르틴손(시인), 에위빈드 올로프 베르네르 욘손(소설가)의 공동 수상 이후 37년 만이다.
트란스트뢰메르는 1931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97년 영국에서 출간한 시선집이 호평을 받으며 유럽 문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현존 시인 가운데 지명도와 문학성에서 가장 앞선 시인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북유럽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과묵한 시인’으로 불린다. 50년 넘게 문단활동을 했지만 200편 남짓의 시를 발표하는 데 그쳤다. 한 해 네댓 편 정도의 시를 발표한 셈이다. 이런 집필 스타일답게 그는 차분하고, 조용하고, 시류에 흔들림 없이 ‘침묵과 심연의 시’를 생산해왔다. 수십 년의 시작활동 속에서 그의 시는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었지만 그 바탕은 스웨덴 자연시의 토착적이고 심미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고 세계문학사적으로는 모더니즘 시의 전통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트란스트뢰메르는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자연환경에 대한 깊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서구 현대시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초기 작품에서 스웨덴 자연시의 전통을 보여준 그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시의 영역을 확대해 현실정치나 사회와 벽을 쌓았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꿋꿋이 지켜왔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을 탐구하고 있기에 그의 시 한 편 한 편이 담고 있는 시적 공간은 광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재웅 한국외국어대 스칸디나비아어과 교수는 “트란스트뢰메르는 일본 하이쿠처럼 짧은 글귀로 시를 쓰는 게 특징이다. 그의 시는 철학적 성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는다. 자연을 노래한다 해도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과 관련된 인간의 존재가 어우러지고, 삶에 담긴 무게를 심도 있게 표현한다”고 말했다.
스톡홀름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교도소와 장애인시설, 마약중독자 치료센터 등에서 상담사로 일하기도 했다. 1990년 뇌중풍으로 쓰러지면서 반신마비가 와 현재 대화가 어려운 상태다. 즐겨 치던 피아노도 이젠 왼손으로밖에 연주할 수 없다고 그의 아내는 말했다.
한국에서는 2004년 시선집 ‘기억이 나를 본다’(들녘)가 출간됐다. 이 시집은 ‘오늘의 세계 시인’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고은 시인이 책임 편집했다.
노벨 문학상 상금은 1000만 크로네(약 17억 원). 시상식은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