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한 시대의 유행을 이끌고, 한 시대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이를 두고 우리는 ‘스타일 아이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패션이 소수 왕족이나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자 취미인 시대에도 그들 안에서 새로운 패션을 소개하고 이끈 이들은 항상 있었다. 또 이들의 초상화는 패션 매거진의 화보처럼 각국 왕실을 돌아다니면서 유행의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본격적인 ‘스타일 아이콘’의 등장은 대중문화, 즉 영화산업과 음반산업의 성장으로 대중과 예술가의 만남이 필름을 통해 극장에서, 레코드판으로 라디오에서 확대 재생산됨으로써 대중적인 폭발력을 갖게 된 데 있다.
대중이 선망하는 우상(偶像), 멋들어진 우상, 닮고 싶은 우상, 따라하고 싶은 우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꿈의 공장, 할리우드에서는 풍만한 가슴에 잘록한 허리의 글래머러스한 여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라나 터너, 에바 가드너 그리고 메릴린 먼로. 그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하나같이 모두 요즘으로 치면 블록버스터급 대작이었으며 화려했고 또 눈이 부셨다.
하지만 그 ‘지나친 화려함’ 뒤에는 더 깊은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 ‘이상적인 마네킹’에 대중은 더는 관심과 애정을 두지 않았다.
그 뒤 1960년대가 찾아왔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로 구성된 젊은이들의 로큰롤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공위성 발사, 달의 탐험 등의 과학적 사건들은 패션 역사에 새로운 국면을 빚어냈다. 비닐 금속 플라스틱 같은 신소재가 의상에 사용됐고 단순한 미니스커트나 거친 청바지가 패션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이런 분위기를 배경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는 기존에 없던 대통령 부인상을 창조해냈다. 또 배우 오드리 헵번은 지방시의 슬림한 블랙드레스 한 벌로 할리우드의 글래머 배우들을 평정하고 스타일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깡마른 몸매의 짧은 커트머리, 주근깨와 큰 눈을 가진 모델 트위기가 미니스커트에 플랫슈즈 차림의 신선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프랑스에서는 가수 겸 배우가 스타일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그는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유롭고 편안한 감성인 ‘프렌치 시크’ 스타일을 구현했다. 그녀의 이름을 딴 에르메스 ‘버킨’백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년 이상 대기해야 손에 넣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 꼽히는 것도 제인 버킨이 살아 있는 스타일 아이콘이라는 반증 아니겠는가.
그 어느 시즌보다 1960년대 스타일 아이콘의 영향이 거센 지금, 한 시대의 우상을 넘어 세월이 지나도 영원히 스타일리시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스타일을 창조한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넘어, 또 단순한 유행을 넘어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타일 아이콘은 바로 그 시대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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