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장규수 박사의 ‘스타시스템’]<16>유럽에서의 케이팝 열풍?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7일 13시 42분


● 현장을 모르는 학자 공무원 그리고 기업이 만들어 낸 과포장
● 케이팝은 온라인으로 유통되고 주소비자는 아시아계와 10대 일부
●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시대, '정복'이란 개념을 포기해야

최근 한국 대중음악, 일명 케이팝(K-pop)이 신한류(新韓流)를 이끌고 있다는 기사들과 함께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 넘쳐나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한류가 TV드라마와 대중음악이 중심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최근 한국 TV드라마의 인기가 식으면서 한국 대중음악과 아이돌스타들이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추세가 너무 과장되며 "케이팝이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일부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하기도 했다. 과연 진실로 케이팝이 아시아를 넘어서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까? 물론 실제 그렇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실상을 냉정하게 들여다 볼 필요는 있다.

■ 한국 대중음악의 해외진출과정 복기

유럽의 유명 음반매장 내부. 대부분이 자국이나 영미계 팝음악으로 채워져 있다.
유럽의 유명 음반매장 내부. 대부분이 자국이나 영미계 팝음악으로 채워져 있다.
한국 대중음악의 해외진출은 1990년 말 한류를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미 1980년대 계은숙, 김연자, 조용필, 패티김 등에 의해 성인가요, 트로트로 일본에 진출한 바 있다.

당시 이들의 공연 횟수와 음반 판매량을 볼 때 그 인기가 매우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1989년의 경우 일본 최고 스타들이 출연하는 NHK의 인기 프로그램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에 이들 4명이 모두 출연하는 등 국내의 인기에 이어 일본진출에도 꽤 성공적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즉, 일본의 한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이들의 해외진출은 1990년대 이후 연예기획사의 기획과 전략에 의한 해외진출과는 달리 개별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고, 1980년대 국내 음악시장의 변화에 따른 위상의 변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1970년대 무렵까지 인기 있던 성인가요, 트로트가 1980년대 음반 산업의 전성기를 맞으며 서양음악이 급속히 유입되고 젊은 세대를 위한 기획음반이 등장하며 자연스레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신승훈, 김건모 등 50만 장을 넘긴 기획음반들에 밀려 일본으로 넘어간 성인가요는 오히려 일본의 가라오케와 성인 수요층을 중심으로 엔카(演歌)와 또 다른 매력으로 시장을 개척하였다.

1990년대 하반기부터 한국의 TV드라마를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중화권 청소년들은 국내 아이돌스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이 때 한국 대중음악은 MTV 등을 통해 대만, 홍콩을 시작으로 중화권에 전파되기 시작했고, 중화권의 유명가수들이 한국 음악을 리메이크해서 히트하면서 친숙하게 다가갔다. 특히 한국의 댄스음악이 인기를 얻었는데, 당시만 해도 한국의 댄스음악은 일본의 콘텐츠를 모방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런 한국 댄스음악이 한류와 더불어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중화권의 반일감정과 함께 아이돌가수들의 뛰어난 댄스실력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음악에 비해 미국적인 힙합 리듬이 가미된 한국의 댄스음악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분위기를 연출하였고, 클론, 신화 등의 건장한 댄스가수들은 대다수의 아시아남성들에게 찾을 수 없는 새로운 매력을 발산했던 것이다.

이후 중화권에 이어 일본 그리고 동남/중앙아시아에서도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 특히 최근 필리핀, 태국 등에서 케이팝의 인기는 가히 열풍이라 할만하다.

■ 때론 냉정한 접근법이 효과적일 때도 있다

수년전부터 케이팝과 일부 한국 가수들이 아시아를 넘어 미국으로 진출한다고 떠들었지만 성과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최근에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 유럽에서의 인기몰이는 어떻게 봐야 할까?

'케이팝이 아시아를 점령하고 유럽까지 퍼졌다'는 이야기는 SM엔터테인먼트의 투어공연 중 프랑스 파리에서 약 4000석 규모의 공연을 추진했다가 미처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일부 청소년들이 연장공연을 요청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SM의 파리공연에 관한 에피소드는 공중파방송의 뉴스에까지 소개되며 큰 이슈가 되었고, 최근에는 심지어 "케이팝이 영국 비틀즈 거리도 점령했다"는 등 케이팝의 인기가 파리와 런던을 비롯한 유럽을 휩쓸고 있다는 기사까지 등장할 정도다.

그래서 필자는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프랑스 파리를 방문하여 개선문 앞에 위치한 세계적인 번화가 샹제리에 거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음반매장인 프낙(Fnac)에 가보았다.

결론은 단 한 장의 한국음반도 찾을 수 없었다. 매장 직원에게 물어보니 "한국음반은 없다. 작년까지 일본음반은 조금 있었는데 그 마저 다 철수하고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다시 필자는 근처의 버진레코드(Vergin)으로 가보았지만 역시나 한국음반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필자는 프랑스 파리에 이어, 영국 런던에서도 케이팝이 열풍을 일으키며 한류가수들의 콘서트이 요청이 밀려들어온다는 언론보도를 확인하러 영국 런던으로 가보았다.

영국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에 위치한 대형음반매장 HMV. 한류나 아시아음악에 대한 관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영국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에 위치한 대형음반매장 HMV. 한류나 아시아음악에 대한 관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런던의 브로드웨이로 불리는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에 위치한 대형 음반매장인 에이치엠브이(HMV)에 가보았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매장직원에 따르면 일부 제이팝(J-pop)과 중화권 음악을 찾는 사람은 조금 있지만 그 수가 매우 적고, 케이팝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음반들을 취급하는 소규모 전문매장으로 가야지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 케이팝의 유럽열풍에 관한 불편한 진실

필자가 현지를 직접 방문해서 조사한 결과,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에서 케이팝이 열풍이라는 이야기는 일부 사실이지만 상당수 과장이 포함되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첫째, 프랑스 파리에서는 프랑스어로 된 현지음악과 영어로 된 팝음악 그리고 일부 아프리칸 음악이 소비되고 있을 뿐 아시아음악은 오프라인에서는 거의 소비되지 않고 있다.

둘째, 케이팝의 유통지역은 주로 아시아다. 그리고 소비자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아시아계 또는 일부의 아시아계 이주민들이다. 전 세계의 아시아계 유학생, 현지 아시아계 청소년들이 주소비자들이다.

셋째, 케이팝의 소비는 대부분 CD DVD 등 오프라인 음원이 아닌 유튜브(YouTube) 등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돈을 지불하고 음악을 구입하며 소비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화려한 댄스와 외모가 강조된 소모성 유행음악을 인터넷을 통하여 무료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일본의 경우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케이팝이 파리를 점령했고 유럽을 휩쓸고 있다는 이야기는 심한 과장법이다.

그리고 케이팝이 아시아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고는 있지만, 직접적인 경제적 성과를 발생시키거나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프랑스 파리의 샹제리에 거리에 위치한 대형음반매장 프낙(fnac). 한국 음악CD나 영화,드라마DVD는 단 한 장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프랑스 파리의 샹제리에 거리에 위치한 대형음반매장 프낙(fnac). 한국 음악CD나 영화,드라마DVD는 단 한 장도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에 일본에서 일부 한국 아이돌그룹들이 인기가 높지만, 대부분 일본의 자본과 회사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정작 국내로 들어오는 수입은 매우 적다.

이러한 구조는 얼마 전 '카라사태'를 초래했고, 당시에 카라의 일본수익 중 일본 유통사가 84%를 갖고 일본 현지파트너와 소속사 DSP엔터테인먼트가 8%씩 갖는데, 카라는 소속사 수익에서 1.6~1.8%를 배분받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제 케이팝의 해외진출에 있어서도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절실하다. 한국 대중음악의 생산자(제작자와 가수)들은 자극적인 옷차림과 화려한 댄스에만 신경 쓰며 국적미상의 일회성 음악콘텐츠만 만드는데 급급하지 말고, 음악을 소유하고 오랫동안 사랑하며 들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음악생산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최근 케이팝에 대하여 필자의 외국인 지인들은 대부분 한국 아이돌가수들의 댄스실력과 섹시한 외모만 지적한다. 특히 과도한 노출과 선정적 안무에 대한 인상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이나 일본의 전문가들은 한국형 아이돌스타시스템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도 하지만, 서양국가의 전문가들은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언론과 정책담당자들은 기획사의 주장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냄비근성, 탁상공론으로 한국 대중문화와 한류의 미래를 성급하게 떠들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현장의 실태를 파악하고 미래지향적이고 계획적인 목소리를 내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이제 "케이팝이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는 문화제국주의적 표현이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콘텐츠도 소비되기 시작했다"고 표현했으면 좋겠다. 이런 올바른 정보가 한국 대중문화와 한류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

장규수 | 연예산업연구소 소장 gyus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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