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후보는 동아일보가 발간하는 월간 신동아 2011년 4월호 별책부록 ‘명사의 버킷리스트’에서 자신이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 시절 전체 간사회의에서 한 얘기라며 소개했다. 이 글에서 박 후보는 “내 수첩은 늘 일정으로 가득 차 있다. 조찬 약속에서부터 저녁 늦게까지 거의 30분이나 한 시간 단위로 약속이 잡혀 있다. …밤늦게 집에 가거나 아니면 그냥 사무실에서 잠깐 새우잠을 자고 그 다음 조찬에 나간다”고 자신의 하루를 묘사했다.
박 후보는 주변에서 ‘일 중독자’로 유명하다. 일부에선 일처리가 다소 독단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경남 창녕 출신의 박 후보는 전형적인 ‘시골 수재’다. 박 후보가 태어난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 마을은 40여 가구 대부분이 밀양 박씨인 집성촌이다.
박 후보의 어린 시절 집에는 논 3305m²(약 1000평) 정도가 있었지만 7남매를 키우기에는 넉넉하지 않았다는 게 주민들의 전언이다. 한 주민은 “어머니가 전매청에서 떼어 온 담배를 주민들에게 팔아서 자식 학비에 보탰으며 특히 42세에 낳은 박 후보를 애지중지했다”고 전했다. 조선시대 때 조부와 고조부가 통정대부(정3품)와 가선대부(종2품) 등을 지낸 유복한 집안이었지만 아버지 대에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은 폐교된 장가초등학교와 영산중학교를 나왔다. 중학교까지 30리(12km)를 왕복했다고 한다. 당시 창녕의 수재들은 대구나 부산으로 유학을 갔지만 박 후보는 서울로 유학을 갔다. 읍내에서 다방을 운영하는 등 나름대로 경제적 여유가 있던 첫째 매형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경복고에 시험을 쳤으나 떨어진 뒤 재수해 경기고에 들어간 그는 비교적 조용히 학창생활을 보냈다. 학생시위 가담으로 서울대에서 제적된 뒤 낙향해 면방위로 병역을 마친 그가 국가고시에 매진한 걸 보면 이때만 해도 집안을 일으키는 데 더 관심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 대해선 시민사회 활동의 ‘블루오션’을 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관심과 후원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시민사회의 ‘재벌’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따른다. 고건 전 서울시장이 도입한 서울시의 청렴계약제도는 박 후보의 아이디어였다.
■ 서울시장 후보 검증팀 ▽ 정치부 김기현 이승헌 고성호 이남희 윤완준 기자 ▽ 사회부 박진우 김재홍 유성열 노인호 장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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