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빼는 진동… 굉음… 코너 돌 때마다 “휘청 휘청”
선수들도 카트 타며 실전감각 유지… 車와 밀고당기기… 연애 같은 레이싱
레이싱은 연애와 참 많이 닮았다. 속도에 욕심을 부리면 여지없이 문제가 생긴다. 반면 액셀을 과감히 밟지 않고선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뜨거운 가슴과 이를 절제할 수 있는 차가운 머리가 동시에 필요하다. 자동차와의 밀고 당기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14일 전남 영암에서 열리는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 개막을 앞두고 레이싱의 매력을 탐구하고자 기자가 직접 카트 체험에 나섰다. 파주 스피드파크는 길이 1.2km, 폭 8∼10m의 서킷으로 주말이면 300여 명의 체험 관광객이 찾는 카트장이다. 한국인 최초의 F2 드라이버인 문성학에게 6일 카트 비법을 전수받았다.
레이싱카트는 F1 드라이버의 등용문이다. 현역 F1 드라이버 대부분은 카트 출신이다. 미하엘 슈마허(독일·메르세데스GP), 제바스티안 페텔(독일·레드불) 등도 대여섯 살부터 카트를 탔다. 슈마허는 시즌 중에도 카트를 통해 실전 감각을 유지한다.
오전 이론교육 2시간을 소화한 기자는 입문용 스포츠카트부터 체험했다. 스포츠카트는 최고 시속 60km(6.5마력)를 낸다. 먼저 최대한 F1 드라이버의 환경을 체험하고자 800도 불에 13초까지 견디는 불연성 레이싱복을 입었다. 초등학생도 즐긴다는 스포츠카트는 놀이동산의 범퍼카보다 빨랐지만 10년 무사고로 단련된 기자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레이싱카트(최고시속 120km·14마력)에 오르자 모든 것은 제로 상태가 됐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카트는 갈대 같은 여자의 마음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몸이 꽉 조이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정형돈이 F1 머신에 오르자마자 뛰쳐나온 이유가 이해가 갔다. 시동을 걸자 고통은 더 심했다. ‘덜덜덜’ 떨리는 카트에 앉아 있노라면 헬스장의 벨트마사지기를 온몸에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엔진의 굉음은 영암 서킷에서의 소음 못지않았다.
카트의 액셀을 밟자 BMW, 벤츠 같은 고급 스포츠카를 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두려움 속에 맞이한 첫 코너에서 여지없이 스핀(차가 미끄러지며 도는 것)이 났다. 주로를 벗어난 차량 앞은 흙먼지로 뒤덮였다. 헬멧을 썼지만 작은 돌들이 얼굴에 들어왔을 정도다.
파주 스피드파크 김태은 사장은 “속도가 너무 느려서 엔진이 젖었다. 기름은 계속 공급되는데 엔진이 소모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문성학도 “무서워하지 마라. 지금 40km도 안 나왔다. 코너 직전에 브레이크를 살짝 밟고 핸들을 튼 뒤에는 오히려 액셀을 밟아야 통과할 수 있다”고 일갈했다. 빠른 속도를 제어하지 못해 스핀이 난 것으로 생각했던 기자는 식은땀이 났다. “속도를 더 올리라고요?”
용기를 잃자 스핀은 밥 먹듯이 일어났다. 코너를 돌 때마다 자기 체중의 3배에 이르는 횡압력이 몰려왔다. 횡압력에 익숙해지자 기자의 등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문성학의 기술지도가 더해지자 제법 랩타임이 일정해졌다.
체험을 마감하기 전 문성학이 제안해 왔다. 서킷 5바퀴 경주를 해보자는 것. 미래의 F1 드라이버와 겨뤘다는 훈장을 달기 위해서 선뜻 경주에 응했다. 결과는 물론 문성학(평균 랩타임 53초96)의 완승으로 끝났다. 그는 첫 코너부터 기자(1분6초07)의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4바퀴 만에 기자를 추월했다. 한 바퀴 차 완패를 당한 기자에게 문성학은 손을 내밀었다.
“아마추어들은 랩타임이 계속 빨라지는데 기자님은 마지막 4, 5바퀴가 거의 같았어요. 기자님 연애 잘하실 것 같아요. 자동차와의 밀고 당기기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계시다는 증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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