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백만기의 컨버세이션]간도 내주는 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2일 15시 00분


● 일상에서 써먹는 크리에이티브 기술 ④작명법

\'간도 쓸개도 내주는 순대\' \'\'후다닭\' \'위풍닭닭\' 등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메뉴들이 있다.
\'간도 쓸개도 내주는 순대\' \'\'후다닭\' \'위풍닭닭\' 등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메뉴들이 있다.

새로 이사한 사무실 동네에서 점심 먹잇감을 구하러 어슬렁거리다 분식집 안에 걸린 메뉴판으로 눈이 향했다. 이름 하여 '간도 내주는 순대'. 킥킥거리며 자연스럽게 그 집으로 들어가서는 간 뿐만 아니라 쓸개까지 다 내주는 순대 맛을 보았더랬다.

동방신기가 한참 잘 나갔을 때는 한 술집에 이런 안주메뉴도 있었다. 동방제육, 유노김치, 믹키오뎅, 최강똥집, 영웅꽁치, 시아황도.

가게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곳들도 있다.

특히 닭집이 많았던 것 같은데 후다닭, 닭데리아, 영계소문, 위풍닭닭, 쏙닭쏙닭 등이 대표적. 삼겹살집도 만만치 않다.

돈데이, 돈내고 돈먹기, 목구멍에 기름칠. 동대입구에 있는 떡볶기집 떡도널드도 맛보다는 독특한 이름으로 유명해졌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은 겨울마다 군밤리어카에 등장하는 고전적인 이름이다.

▶ 이름이 좋으면 반은 먹고 간다

제품이 세상에 나올 때 가장 고민을 많이 하는 것이 이름 짓기다. 브랜드의 이름을 짓는 일은 주로 브랜드네이밍 회사들이 담당하는데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다 보면 브랜드네이밍을 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게 된다.

(카피라이터는 컨셉라이터이기도 하기 때문에 브랜드네이밍을 하기에 좋은 자질을 갖추고 있긴 하다. 문제는 중국집 군만두도 아닌데 서비스로 해달라는 광고주가 많다는 것이다. 거기다 시간도 충분히 주지 않는다.)

군만두 얘기가 나왔으니 식품브랜드부터 얘기하면 이 종목엔 긴 이름이 많다.

'7일간 저온숙성하여 바삭하고 고소한 돌자반김'
'푸짐한 야채와 해산물이 살아있는 중화 짬뽕'
'속까지 천천히 잘 말려 더욱 부드러운 소면'
'목초를 먹고 자란 건강한 닭이 낳은 달걀'
'우리 쌀로 만든 불타는 매운 고추장'
'기름을 적게 먹는 건강한 튀김가루'
'원초가 좋아 바삭하고 향긋한 양반김'
'씻어 나온 맛있는 오뚜기쌀'
'매콤함이 살아있는 김치손만두'

이건 뭐 코미디의 고전인 '김 수안무 거북이와 두루미~'도 아니고 마치 누가 누가 더 긴가 경쟁하는 것 같다.

필자가 런칭광고를 만들었던 쫀득쫀득 참붕어빵도 처음엔 '쫀득한 찹쌀떡 먹은 참붕어빵' 이었다. 이런 긴 이름엔 제품의 컨셉트가 그대로 살아있어 매장에서 제품을 접하자마자 손이 절로 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소비자들이 '긴~ 이름' 전체를 기억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알아서들 줄여 부르기도 한다.

물론 기억하기 쉬운 짧은 이름도 많다. 외자로 지은 브랜드만 해도 통신 브랜드 티(T), 올레로 통합되면서 사라진 브랜드 쇼와 쿡, 화장품 브랜드 후, 숨, 요구르트 브랜드 윌 등이 있다.

▶ 이름 짓기에는 원칙이 있다

세계적인 네이밍 개발 전문기업 델라노&영의 CEO인 프랭크 델라노는 성공하는 브랜드를 위한 '브랜드 네이밍의 일곱가지 검증된 원칙'을 제시했다.

1. 멋진 아이디어로 제품의 본질 특성 정신 등을 사로잡아라.
2.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상상력을 자극하라.
3. 제품에 적합한 소리를 만들어내라.
4. 단순명료화하라.
5. 소비자의 머릿속에 영원히 각인될 시각적 이미지와 소리로 잊을 수 없는 제품이 되게 하라.
6. 제품의 정확한 性이미지에 초점을 맞추어라.
7. 제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믿게 하라.

3번 5번처럼 브랜드 런칭 때부터 소리와 함께 기억되는 이름이 있다. 화장품 브랜드 더 페이스 샵을 떠올릴 땐 내추럴 스토리라는 슬로건과 함께 멜로디가 붙어서 생각난다. 이 편한 세상, 웅진코웨이, 포카리스웨트 등도 브랜드를 떠올리면 멜로디가 함께 생각나는 이름들이다.

현대카드는 1번 2번 4번이 모두 적용된 경우로서 A부터 Z까지 알파벳을 이름에 넣어 각 제품이 가진 모든 특징을 정리했다. 현대카드는 브랜드네임 전략부터 마케팅 전략과 광고 전략까지 하나의 이미지로 일관적인 모습을 보여준 대표적인 성공 브랜드네이밍 사례다.

5번처럼 브랜드네이밍에 시각적 이미지가 투영된 경우는 국내브랜드에서 보다 해외브랜드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나이키와 코카콜라 등이 대표적이다.

6번처럼 제품의 타겟이 여자거나 남자면 브랜드도 성정체성을 정확히 드러내기도 하는데 미스터피자와 미스터도넛처럼 이름을 남성처럼 지어서 오히려 여성을 유혹하기도 한다.

좋은 브랜드는 스스로 브랜드를 확장시키기도 한다. 애플에서 만든 아이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아이팟, 아이튠스,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클라우드, 아이TV에 이어 아이CAR까지 나온다는 소문도 있다.

▶ K-POP 아이돌의 이름에도 원칙이 있을까?

'소녀시대'는 소녀를 향한 남자 특히 삼촌 팬들의 로망을 자극하기 좋은 그룹명이다.
'소녀시대'는 소녀를 향한 남자 특히 삼촌 팬들의 로망을 자극하기 좋은 그룹명이다.

요즘 세계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K-POP 아이돌도 이름 짓기가 중요해 보인다. 팀 이름과 팀 컨셉트가 잘 맞는 팀은 오래가는 것 같고 이름부터 어렵고 귀에 잘 안 들어오는 팀은 역시 큰 임팩트를 못 주는 것 같다.

소녀시대 같은 이름은 (줄여 쓰는 소시까지 매력적이다) 참 잘 지은 이름임에 틀림없다. 소녀를 향한 남자 특히 삼촌 팬들의 로망은 그 소녀들이 나이가 들고 30대가 되어도 영원히 식지 않을 것 같다. 뭐 40대의 소녀시대 모습까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2PM 2AM 같은 이름은 처음부터 귀에 쏙 들어오지는 않았다. 기획사와 선수들이 워낙 실력이 뛰어난 것이지 이름값을 본 것 같지는 않다.

어렸을 때는 참 웃기는 이름이 많았던 것 같다. 박방구, 임신중, 강도 등 놀려먹기 딱 좋을만한 그런 이름들이 진짜로 있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이름이 다들 세련되고 멋지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제품에 이름이 있는 것처럼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도 이름이 주어진다. 사람의 이름은 제품 이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제품은 이름 때문에 망하면 그냥 접으면 되지만 사람 인생은 접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이라도 바꿔 팔자를 고쳐보려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이름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은 사주팔자와 음양오행의 복잡한 원리를 떠나서라도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본다. 평균 70년 이상을 살면서 수없이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이름이기에 그 기운이 그 주인에게 전달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독특한 이름 탓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이름표가 제대로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 백민기, 박만기, 백만규 등 꼭 한 글자씩 틀려나왔던 기억이 난다. 뿐만 아니라 이름 때문에 다양한 별명들도 있었다. 이름에 '만'자가 있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초등학교 때는 일단 '만' 자만 들어가면 무조건 만두다.

그래도 필자는 필자의 이름을 사랑한다. 부모님께서 나름 작명소에서 지은 이름이고 무엇보다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센 이름이라 그런 면에서 특히 만족한다. 다만 지금은 교수로 계신 유명한 씨름선수 이만기 때문에 이름만 들으면 거대한 덩치를 가진 남자로 상상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점만 빼고.

'네이미스트'가 아니더라도 살다보면 스스로 작명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아들 이름, 딸 이름, 회사 이름, 가게 이름 등. 그럴 때마다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평소에 좋은 이름들을 궁리해뒀다가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기 바란다. 작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메모해놓자.

백만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marc@oysterp.com/ 블로그 blog.naver.com/bma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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