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사람이 사는법]김상운 MBC부국장 “몇걸음 물러나 나를 봤다, 온갖 병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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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5일 02시 00분


발걸음 하나에 생각 하나가 흩어진다. 가랑잎 흔들리는 소리,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운다. 27년 동안 세상을 취재했던 그의 눈은 이제 자신의 마음으로 향한다.

“그렇게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저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세요. 어느 순간 잡념이 사라지고 자연과 하나가 되죠. 그러면서 점점 더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고,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7시 30분이면 어김없이 TV 속에 등장하는 MBC 김상운 부국장(53)의 눈빛이 빛났다. 1984년 MBC에 입사한 그는 국제부, 경제부, 정치부를 거쳐 지금은 시사교양프로그램 ‘지구촌 리포트’의 팀장 및 앵커를 맡고 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장미셸 캉드쉬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비롯해 미국 외교부, 상무부 장관 등을 단독으로 인터뷰하며 ‘특종 기자’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 아버지의 삶은 마지막까지 아팠다

그가 올해 4월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신이 부리는 요술’이란 부제가 붙은 자기계발서 ‘왓칭(Watching)’이다. 주요 서점의 베스트셀러 자기계발 부문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며 지금까지 5만 부가 팔렸다. 이 책은 “자신을 제3자의 눈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 모든 고통이 해결된다”며 뱃살 빼기, 키 크기, 화 사그라뜨리기 등 7가지 ‘왓칭 요술’을 과학적으로 풀어냈다. 취재 영역의 제한이 없다고는 하지만 기자가 쓴 책치고는 이색적이다.

“기자의 역할은 결국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잖아요. 그동안 바깥세상과 남들에 대해 많이 알렸으니까, 이제는 ‘내면’과 ‘나’에 대해 알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나와바리(취재 영역)’만 달라진 거죠.”

그는 왜 갑자기 내면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늙어감의 고통을 바로 옆에서 너무 생생하게 지켜봤어요. 가족에게 헌신적이셨던 할머니가 2004년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4년 후 아버지마저 뒤따라 가셨죠. 더구나 아버지는 병상에 계신 마지막 1년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침을 질질 흘리셨어요. 변비약을 써도 대변을 제대로 못 보실 정도로 아주 고통스러워하셨죠.”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에게 늘 다정다감했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 때 술집에서 잠든 아버지를 업어 온 적도 많았다. 아버지의 그런 폭음이 싫었다. 8남매의 장남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북으로 납치된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날부터 지게를 짊어지고 산으로 향했다.

“당신도 꿈이 있으셨을 거 아니에요. 공부도 잘하셨다는데…. 그런 스트레스가 쌓였던 거죠.”

나이 들어 아버지의 아픔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삶은 마지막까지 아팠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해야 하고 수술 결과를 기다리는 그 초조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병원에 입원해 계시면서는 섬망(妄) 때문에 나도 못 알아보시고, 가슴에 꽂은 튜브도 자꾸 뜯어내시고….”

기자 생활을 하며 수없이 많은 죽음을 지켜보고 기사를 썼다. 하지만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무게는 또 달랐다.

“늙으면 다 저렇게 되는구나. 저렇게 죽을 바에야 왜 태어난 것일까. 태어난 것 자체가 고통이구나. 이런저런 생각과 고통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어요.”

결국 그의 마음도 병을 얻었다. 30년 동안 변동이 없었던 체중이 갑자기 크게 줄고, 머리털도 한 움큼씩 빠져나갔다. 이유 없이 심장이 벌렁거리는 일도 잦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문득, ‘이 고통은 왜 생겼을까? 신이 고통을 만들어 놓았다면 그것을 꺼버리는 장치도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취재가 시작됐죠.”

○ 고통을 꺼버리는 장치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심리 치료에 관한 해외 명저들을 주문해서 읽었다. 그리고 그는 ‘왓칭 효과’를 알게 됐다.

“나에게서 몇 발짝 떨어져 객관적인 눈으로 내면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의 아픔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몸도 함께 나아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신기한 생각에 더 파고들기 시작했죠. 내가 평소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이라 사실은 그런 것이 필요했었거든요.”

취재는 계속됐다. 심리치료 분야에서 시작된 책읽기는 양자물리학의 세계로까지 이어졌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해답을 찾을 때까지 매달렸다. 관련 논문들도 찾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관찰(watching)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양자물리학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에요. 이 말대로 온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대로 춤추는 것이었고, 내 인생은 나 스스로 창조하는 거였어요.”

자기계발서에 흔히 등장하는 클리셰(cliche·판에 박힌 듯한 문구나 진부한 표현) 같은 말이지만 그의 말이 더 깊은 울림을 가져다주는 것은 그가 제시하는 각종 과학적 연구 결과들과 구체적인 사례들 때문이다.

“만물을 구성하고 있는 미립자가 모든 것을 말해 줍니다. 실험자가 이 미립자를 입자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입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물결로 생각하고 바라보면 물결의 모습이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자 효과(observer effect)’라고 해요. 미립자가 사람의 마음을 읽고 변화하는 거죠. 만물이 다 이런 속성을 지닌 미립자로 만들어져 있으니 수많은 ‘요술’이 가능한 거예요. 단순히 개인적인 신념이 아니라 지난 3년 동안의 취재와 체험을 통해 말하는 겁니다.”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자신의 ‘기사’에 대한 확신이 묻어났다.

“기자로서 남들에 대해선 참 많이 아는데, 내면 취재를 하다 보니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선 거의 아는 것이 없더라고요.”

그가 중저음의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특종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이고, 책에 쓴 내용들은 누군가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경험을 선사해 줄 수 있는 거잖아요. 비교할 수 없는 보람이죠. 이제 더 열심히 내면을 취재해서 마지막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어요.”

이 말을 건네며 그가 또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늦은 밤이면 매일 홀로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걷는다는 그의 두 발이 앞으론 어디로 향하게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글=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사진=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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