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사흘째인 13일(현지 시간)은 워싱턴 정가에서만큼은 이 대통령이 중심 무대에 선 하루였다. 백악관에서 공식 환영행사로 시작된 국빈 행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단독·확대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 국무부에서 국빈 오찬, 상하원 합동연설을 거쳐 다시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으로 이어졌다. 여섯 번째 정상회담을 한 양국 정상은 서로를 친구로 부르며 ‘다원적 전략동맹’의 시대를 예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한국어를 세 번 구사했다. 백악관 북쪽 행사장(North Portico)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건배사를 마치며 “건배, Cheers”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I'd like to propose to toast(건배를 제의한다)”라며 영어로 답사를 마무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情)의 문화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미동맹의 핵심은 한국적 표현이 가능하다. 쉽게 번역되지는 않지만 이 개념은 깊은 애정이며 쉽게 끊어지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대통령에게서 ‘정’을 느낀다. 가난(한 시절)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을 보면 동양적인 좋은 ‘정’을 갖고 있다. 겸손해 보이고 속은 매우 강하다”고 칭찬했다. 또 “난 매우 정직하므로 정직한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해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아침 공식 환영행사에서 “같이 갑시다”라는 말도 한국어로 했다. 이는 주한미군이 한국군과 우의를 다질 때 늘 쓰는 표현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참석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성 김 신임 주한 미국대사를 가리키면서 “(반 총장은)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분이며, (김 대사는)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주한 미국대사)으로 상원의 인준을 받았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별명인 ‘불도저’도 우연찮게 두 번이나 거론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만찬석상에서 “이 분이 불도저인 이유가 있다. 가만히 있지 못한다”며 이 대통령의 빡빡한 워싱턴 일정을 떠올리게 했다.
국무부 8층 벤저민 프랭클린 룸에서 열린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주최 국빈 오찬에서도 불도저 이야기가 나왔다. 바이든 부통령은 “이 대통령은 (기업인 시절에) 불도저 개선 방법을 찾기 위해 완전히 해체했다가 재조립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사 하나까지 끝까지 따져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다”라며 이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두 정상은 정치인의 필수요소라는 조크를 빼놓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전날 오바마 대통령과 한식당 ‘우래옥’에서 불고기 만찬을 함께할 때 미 의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법안을 처리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사실을 거론하며 “미안했다. 우린 밥 먹는데, 미 의원들은 일을 하셨으니…”라고 말했다. 또 클린턴 국무장관으로부터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여수 엑스포(5∼8월)에 참석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걱정했었다. 100여 개 나라가 참석하는데 미국이 빠질까 봐”라고 농담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뒤질세라 “나와 이 대통령은 운이 참 좋다. 배우자를 아주 잘 만났다”며 곁에 있던 김윤옥 여사와 미셸 오바마 여사를 가리켰다. 이어 “이 대통령님, 이럴 때 미국에선 아내 덕에 신분이 상승했다는 말을 한다”며 웃었다.
○…이번 국빈방문의 공식 초청대상에 이 대통령의 차녀 승연 씨(38)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미국 정부가 “대통령 가족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며 초청한 데 따른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지난해 인도 및 스위스 방문 때는 장녀 주연 씨(40)와 손녀가 동행했다. 당시엔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지는 바람에 논란을 빚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미국 정상들은 재임 중 해외 순방 때 자녀와 동행하는 사례가 잦다.
○…두 정상의 우정 쌓기는 14일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의 GM 공장에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공장시설을 함께 시찰했고 직원들 앞에 나란히 서서 연설했다. “한미 경제협력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과정이며, 한미 FTA는 서로에게 커다란 이익과 기회를 준다”는 것이 공통된 강조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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