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은 1962년 시작돼 국내 최고 권위의 영화제로 자리 잡은 대종상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축제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일반인 심사위원을 예심에 참여시켜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을 잠재웠고, 흥행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화제작들이 주요 부문상을 차지했다. 대종상은 내년에는 영화제 조직의 법인화를 통해 아시아 최고의 영화상으로 거듭나게 된다.
가장 관심을 모은 최우수작품상은 장훈 감독의 ‘고지전’에 돌아갔다. ‘고지전’은 6·25전쟁의 와중에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병사들의 시각으로 전쟁을 바라본 반전영화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남북 병사들 간의 화해를 모색한 박상연 작가의 탄탄한 시나리오와 ‘의형제’ ‘영화는 영화다’에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입증한 장훈 감독의 연출이 빛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제의 꽃’으로 불리는 여우주연상은 ‘블라인드’의 김하늘이 차지했다. ‘7급 공무원’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에서 코믹한 연기를 선보였던 김하늘은 ‘블라인드’에서 시각장애인 역을 맡아 성공적인 연기 변신을 했다.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으로 교통사고를 ‘목격한’ 시각장애인이 범인을 밝혀가는 과정을 그린 ‘블라인드’는 독특한 설정으로 시나리오상도 받았다. 김하늘은 “영화를 시작하면서 연기가 너무 어렵고 힘들어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좋은 작품을 만난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이런 영광까지 주셔서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남우주연상은 ‘최종병기 활’의 박해일에게 돌아갔다. 박해일은 청나라 군대에 잡혀간 여동생(문채원)을 구출하는 조선의 신궁을 열연했다. ‘최종병기 활’은 빠른 화면 전개와 탄탄한 구성으로 올해 개봉한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모았다. 박해일은 “오랜만에 후보에 올라 즐기는 마음으로 참석했다. 활 한 자루를 쥐여주며 영화에 불러준 김한민 감독에게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홍진 감독의 누아르 영화 ‘황해’에서 독특한 악역을 연기한 조성하는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조성하는 올해 ‘오직 그대만’과 ‘파수꾼’에도 출연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17세 고교생 배우 심은경은 장진 감독의 ‘로맨틱 헤븐’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는 미국 피츠버그 빈센션 고교 10학년에 재학 중이어서 시상식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감독상은 ‘과속스캔들’에 이어 흥행에서 연타석 홈런을 친 ‘써니’의 강형철 감독에게 돌아갔다. 단 두 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한 신인급 감독으로 감독상을 차지한 것. 복고열풍을 일으키며 7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써니’는 40, 50대 관객까지 극장으로 끌어들인 올 상반기 최대 화제작이었다. 강 감독은 재미있으면서도 눈물을 자극하는 작품을 만드는 솜씨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성현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으로 만든 ‘파수꾼’은 신인감독상과 주연 이제훈이 신인남우상을 받았다. 학교 폭력을 다룬 이 영화에서 윤 감독은 탁월한 인물묘사를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고지전’에도 출연한 이제훈은 소년 같은 얼굴에서 나오는 다양한 표정연기로 여성 관객을 매료시켰다.
신인여우상은 ‘최종병기 활’에서 박해일의 여동생으로 열연한 문채원이 받았다. ‘최종병기 활’의 남매가 모두 수상의 영광을 안은 셈. 문채원은 최근 방영된 KBS2 사극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작품별로는 ‘고지전’이 작품상, 촬영상, 조명상, 기획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최종병기 활’도 남우주연상, 신인여우상, 영상기술상, 음향기술상 등 4개 부문을 차지했다. ‘써니’는 감독상과 편집상, ‘파수꾼’은 신인감독상과 신인남우상 등 2관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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