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보선]목멘 나경원 “더 낮은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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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7일 03시 00분


고개 떨군 나경원 26일 오후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 차려진 선거캠프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다 패배가 확실시되자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 채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고개 떨군 나경원 26일 오후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 차려진 선거캠프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다 패배가 확실시되자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 채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예상 밖 큰 격차의 패배였다. 보수의 ‘얼짱 대변인’에서 수도 서울의 첫 여성 시장을 꿈꿨던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안철수 바람’으로 대변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의 벽을 넘지 못했다.

나 후보는 개표가 30%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은 26일 오후 11시경 일찌감치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정치권이 더 반성하고 더 낮은 자세로 나아가라는 뜻으로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성찰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패배를 담담히 받아들였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나 후보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 14일 동안 2800km에 이르는 거리를 종횡무진 누비며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뒤를 잇는 대표적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를 굳혔다는 것이다.

나 후보는 선거 초반 지지율에서 야권 무소속 박원순 당선자보다 15∼20%포인트나 밀렸다. 자칫 원사이드 게임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선거가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각종 여론조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승부를 안갯속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막판 대역전극은 펼쳐지지 않았다. 박빙의 승부라고 하기엔 격차가 컸다. 이는 나 후보가 자신만의 콘텐츠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 당선자 측은 ‘이명박-오세훈 시정 심판’의 프레임으로 선거 구도를 몰고 갔지만 나 후보는 과거 한나라당 출신 시장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나 후보는 지난해와 올해 잇달아 전당대회에 출마해 여성 몫 최고위원이 아니라 당당히 남성들과 겨뤄 자력으로 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두 차례 모두 일반시민 대상 여론조사에선 당내 1위를 기록했다. 다만 ‘정치 프로’인 한나라당 대의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아직까지 ‘정치인 나경원’이 추구하는 정치에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선거를 통해 나 후보는 일정 부분 ‘엄친딸’의 이미지를 벗고 ‘전사(戰士)’로 변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거 캠프에서 그의 별명은 ‘나징가 Z’였다. 깡말랐지만 ‘마징가 Z’처럼 무쇠 체력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나 후보는 ‘1일 1회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면서 캠프 관계자들이 다음 일정을 이유로 이동할 것을 권해도 자신에게 할당된 분량을 반드시 채우는 성실함을 보였다.

그는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꿰차는 과정에서도 정치적 위상을 높였다. 나 후보에 대한 친박(친박근혜)계의 견제 속에 외부 영입이 추진됐지만 결국 당내 경선도 아닌 추대 형식으로 후보가 됐다. 그만큼 인지도나 커리어 측면에서 나 후보와 경쟁할 당 내외 인사가 별로 없음을 과시한 셈이다.

올해 7월 전당대회에서 탈(脫)계파를 표방한 나 후보는 친이(친이명박)-친박계 양쪽 모두에서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2007년 대통령선거 이후 갈라진 양 진영을 이번 자신의 선거를 통해 뭉치도록 하는 역설적 상황도 연출했다. 이번 패배가 ‘정치인 나경원’에게 마이너스만은 아닌 이유다.

26일 투표 이후 나 후보의 행보도 의미심장했다. 나 후보는 투표를 마친 뒤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2주년 추도식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박 전 대표를 만났다.

박 전 대표는 동생 지만 씨를 옆으로 옮겨 앉게 하고 나 후보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박 전 대표는 추도식 뒤 박 전 대통령의 묘소로 자리를 옮기면서도 나 후보를 옆에서 안내하는 등 최대한 예우를 갖췄다. 나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자신의 한계를 확인했지만 한편으론 ‘포스트 박근혜’의 토대도 마련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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