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 이야기]<97>파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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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4일 03시 00분


고대 중국선 생선회와 함께 먹어

고기를 먹을 때 신선한 파무침을 곁들이면 느끼한 맛을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고깃집이나 치킨집에서도 많이 곁들여 내놓는데 옛날에는 생선회를 먹을 때도 파를 함께 먹었다. 어쨌든 파무침은 주로 다른 음식을 먹을 때 곁들여 먹는데 사실 이는 파에 잘 어울리는 조리법이다. 양념으로 주로 쓰는 파의 별명이 ‘주방의 감초’이기 때문이다.

감초(甘草)는 한약을 제조할 때 흔히 부수적으로 집어넣는 약재다. ‘동의보감’에 감초는 아홉 가지 흙의 기운을 받았기 때문에 72가지의 광물성 약재와 1200가지의 식물성 약초를 비롯해서 모든 약을 조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약방에 감초가 있다면 주방에도 감초와 같은 재료가 없을 수 없으니 옛날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하는 주방의 식재료가 파라고 했다. 그래서 파는 별명이 화사초(和事草)다.

송나라 때 도곡(陶谷)이라는 학자가 ‘청이록(淸異錄)’에 별명의 유래를 적었는데 파가 모든 종류의 음식과 어울려 좋은 맛을 내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풀이했다. 약 지을 때 감초를 넣는 것처럼 음식을 만들 때 파를 넣으면 다른 재료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명나라 의학서인 ‘본초강목’에도 파는 채소 중에서 첫 번째로 넣어야 하는 재료이니 맏형에 해당된다는 뜻에서 채백(菜伯)이라고 했다.

화사초라는 별명이나 채소 중의 맏형이라는 말에서 파가 진작부터 양념으로 널리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고대 중국의 예법을 적은 ‘예기(禮記)’에 파가 여러 차례 나온다.

예기 내칙(內則)편에 회를 먹을 때는 파를 곁들여 먹는다고 했으니 지금 고기를 먹을 때 파무침을 곁들여 먹는 것과 비슷하다. 예기 소의(少儀)편에서는 군자를 맞이해 파와 마늘을 준비할 때는 양쪽 끝을 가지런히 다듬어 놓는다고 했다. 소중한 손님을 맞이할 때 사소한 반찬 하나라도 정성껏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파는 주로 양념으로 쓰지만 국으로도 많이 끓여 먹었다. 6세기의 농업서인 ‘제민요술’에 된장을 풀고 파뿌리를 넣어 국을 끓인다고 했으니 파 계란국의 원형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송나라 때 주자가 사위인 채침의 집을 찾아갔다. 식사 때가 되어 딸이 파를 넣어 끓인 국에 보리밥을 내놓으며 밥상이 조촐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자 주자가 “보리밥과 팟국은 서로 어울리니, 파는 단전의 힘을 길러주고 보리밥은 허기를 면하게 해주네”라며 시를 지어 딸을 위로한다. 이후 팟국과 보리밥은 선비의 청빈을 상징하는 표상이 됐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는 인종 9년, 절에서 술과 파를 팔면서 상도를 어지럽히고 풍속을 파괴하고 있으니 금지해야 한다는 기록이 보인다. 파는 수행을 하는 승려들은 먹지 못하게 금지했던 오신채(五辛菜)의 하나인데 절에서 술과 파를 팔았다고 하니 당시 사찰의 부패를 짐작할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파가 그만큼 식용으로 널리 쓰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참고로 동양의 주방에서 파는 약방의 감초처럼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이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예전 우리가 먹는 종류의 파는 먹지 않았다. 양파가 근대에 동양으로 전파된 것처럼 대파와 쪽파도 근세에 서양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파를 동양에서 왔다고 중국 양파(chinese onion)라고 한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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