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9월 대기업 계열사의 소모성자재 구매대행업(MRO) 독점 등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방안이 정작 MRO에는 대부분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 상정된 일감 몰아주기 대책은 재검토가 불가피해 보인다.
6일 한나라당 소속 김성조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이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입수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세제개편안의 일감 몰아주기 대책으로는 대기업 MRO 중 단 두 업체만 과세 대상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이 MRO 문제점에 천착하기 시작한 것은 올 6월.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들과 당 정책위원회는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업종인 MRO 사업에 진출한 뒤 모기업과 MRO 계열사 간에 내부거래를 많이 한다”면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의 대물림 현상”이라는 데 공감했다. 투자와 고용이 수반되지 않는 MRO 업체 등을 재벌 2, 3세가 운영하면서 부를 세습하기 때문에 규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 후 한나라당과 정부는 여러 차례 당정협의를 거쳐 9월 7일 고위당정회의에서 일정 기준(내부자거래 비율 30% 이상, 총수 일가 등 특수관계인 지분 3%)을 넘어서는 대기업 계열사의 영업이익에 증여세를 부과하는 일감 몰아주기 방지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김 위원장에 따르면 MRO 업체 중 대기업 총수 친족 등의 지분이 3%가 넘는 곳은 웅진(웅진홀딩스)과 한화(한화S&C) 두 곳밖에 없다. LG의 서브원, 삼성의 아이마켓코리아, 코오롱의 코리아이플랫폼, 현대중공업의 힘스, SK의 MRO코리아 등 주요 MRO 업체들은 여러 법인이 지분을 소유하는 형태로 총수 친족의 지분은 0%다. 공기업으로 시작한 포스코(엔투비)나 KT(KT커머스)는 재벌 총수가 없다. 한나라당이 홍보했던 ‘MRO 대책’은 속 빈 강정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당정이 대기업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 대책을 마련했지만 한나라당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던 MRO 대책으로서의 실효성은 낮다”면서 “공정거래법 등을 개정해 직접 일감 몰아주기 행위 자체를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재정부는 국회에 “당정이 9월에 발표한 방안은 일반적인 대기업 계열사 내부거래 문제에 대한 것이지 MRO를 겨냥해 만든 대책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당정이 발표한 일감 몰아주기 대책이 MRO 업체 대부분에 적용되지 않는 것인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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