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판도 가르고, 시장선거 흔들고, FTA 표류시켜도… 브레이크가 없다대법 ‘명예훼손’ 유죄 받은 2002대선 ‘병풍’ 김대업씨 “난 떳떳… 이회창씨엔 미안”
200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초대형 폭로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향해 쏟아진 것으로 △아들 정연 씨의 불법병역면제 비리에 대한 은폐(병풍·兵風) 의혹 △이 후보가 최규선 씨로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 △이 후보 부인 한인옥 씨가 기양건설로부터 10억 원의 ‘검은 돈’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대선 이후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이들 3대 의혹이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폭로의 장본인들은 모두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두 후보의 승패는 불과 57만여 표 차로 갈렸다. 이 ‘3대 거짓말 사건’이 없었다면 대선 결과는 어땠을까. 어쩌면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간 큰 거짓말’들인 셈이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시종일관 네거티브 공방으로 진행됐다.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동의안 처리 여부를 놓고도 FTA에 대한 근거 없는 ‘괴담’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흑색선전의 폐해를 경험하고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숱한 거짓말에 흔들리고 휩쓸리며 표류하고 있다. 깊은 성찰과 문제의식 없이는 대한민국은 ‘거짓말의 나라’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9년 전 당시 폭로의 주인공 중 누구에게도 반성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동아일보는 9일 2002년 병풍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 씨(51·사진)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당시 김 씨는 인터넷매체와의 기자회견을 통해 “이 후보의 아들 정연 수연 씨의 병적기록부가 위조 변조됐고 이를 은폐하기 위한 대책회의가 열렸다”고 주장했고, 2004년 2월 김 씨는 대법원에서 명예훼손과 공무원사칭 혐의 등으로 징역 1년 10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현재 무역사업을 하고 있다는 김 씨는 “병풍 사건 이후 가족 모두가 많이 불행해졌다. 아내와 자녀 모두 외국으로 나가 각자 살며 가끔씩 왕래한다”고 말했다. 그는 네거티브와 괴담이 난무할 때마다 언론 등에서 ‘제2의 김대업’이란 표현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 “FTA도 나는 잘 모른다. 사실이 아니라면 논리적으로 접근해서 이해를 시켜야지 ‘김대업’을 갖다 붙이는 건 억지”라며 불쾌해했다.
이 후보의 낙선에 대해선 “선거 결과와 내 주장을 연결시키고 싶지 않다. 이 후보의 낙선은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당시 폭로의 배후에 친노(친노무현) 세력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내가 노 정권 출범 특등공신이라면 구속이 됐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씨는 “이 후보에게 개인적으로는 미안한 감정은 있다”면서도 “이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이 사실이란 생각에는 변함없다”고 자신의 과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병풍과 관련해 실형선고를 받은 데 대해서도 “사건의 핵심과는 큰 관련이 없는 지엽적인 걸로 유죄를 받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4년 2월 확정 판결에서 김 씨의 주장에 대해 “현실적 악의가 의심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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