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 한복판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을 향해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야당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김 의원에게 책임을 묻는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다. 소신과 원칙보다는 득표와 실리만을 좇는 기성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김 의원은 올해 5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 “억지로라도 대한민국 국회가 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해 ‘최루탄 테러’가 사전에 계획된 것임을 암시했다.
○ 폭탄 돌리는 여당
한나라당 김기현 대변인은 23일 논평에서 “의회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국회의원이 불법 화학무기를 의장석에 뿌린 책임을 (김선동 의원은) 의원직 사퇴로 져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판사 출신인 김 대변인은 김 의원의 행위가 특수공무방해죄에 해당돼 4년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공분’은 거기까지였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김 의원의 형사처벌은) 국회 사무총장이나 국회의장이 결정할 사항”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어 “(김 의원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하는 것은 정쟁의 소지만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도 “(최루탄을 터뜨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도 “국민정서법이 있어서 (김 의원을) 건드리면 덧난다”고 말했다. 결국 국회 차원에서 김 의원에게 책임을 묻지도, 한나라당이 나서서 형사고발을 하지도 않겠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국회 사무처가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미지수다. 한종태 국회 대변인은 “김 의원과 본관 4층 본회의장 방청석 유리창을 깬 민노당 당직자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 논평했다. 그러나 국회 사무처의 핵심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나서지 않겠다면 국회 사무처도 일단 관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경찰 “최루탄, 경찰에 납품됐던 것”
김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최루탄을 어디에서 구했느냐’고 묻자 “문제의 본질은 어디서 구했는지가 아니다. 한미 FTA로 인해 눈물짓게 된 서민의 눈물을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문제의 최루탄과 관련해 “1985년 생산돼 경찰에 납품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이 터뜨린 최루탄 파편의 신관 부분에는 모델명 ‘SY-44’와 ‘EC-85E805-028’이란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1985년 생산된 1만 발에는 같은 일련번호가 붙어 있다”고 말했다.
SY-44 최루탄은 1980년대 이후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사용하던 발사식 최루탄이다. 1987년 연세대 학생이었던 이한열 씨를 숨지게 한 것과 같은 종류다. 경찰은 김 의원이 과거 시위현장에서 불발된 최루탄을 습득해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민노당 관계자는 “김 의원이 옛날 시위 때 경찰에게서 뺏어 전리품처럼 갖고 있던 것을 터뜨린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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