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인촌기념관 귀빈홀로 20명의 학생과 27명의 학부모가 들어섰다. 서울과학고 세종과학고 한국과학영재학교 등 전국 과학고 및 영재학교 출신의 사이버국방학과 1기 수시 합격자들이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과 교수 10명은 이들을 따뜻하게 맞았다. 내년 3월 입학을 앞둔 인재들을 격려해 다른 학교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 교수진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유례없이 연 것이다.
사이버국방학과는 고려대가 국방부와 함께 사이버장교를 육성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개설한 특수학과다. 11.65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수시 과학영재전형으로 20명이 우선 선발됐고 정시 결과에 따라 10명이 추가 선발된다. 합격자 전원은 4년간 전액 정부장학금을 받는다. 원할 경우 추가로 3년간 석사과정을 밟은 뒤 졸업 후 7년간 국방부에서 장교로 의무복무 해야 한다. 올해 신설된 학과지만 수시 합격자 20명 전원이 특목고 출신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만난 학생들은 모두 의예과나 서울대 진학을 포기하고 사이버장교의 길을 택했다고 했다. 전원이 장교로 복무해야 하는 상황이라 학교와 국방부 측은 인터뷰는 익명으로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울산과학고 출신 고모 군(17)은 “최근 몇 년간 연이어 발생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사태와 정보 유출 사건을 지켜보며 전문적으로 공부해 해커를 막는 방패가 되고 싶었다”며 “의사가 되면 돈이야 벌겠지만 나라를 지키며 명예를 얻고 싶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논문도 암호에 대해 썼을 정도로 ‘암호광(狂)’인 한국과학영재학교 출신 이모 군(18)은 “북한 해커들에게 번번이 당하는 걸 보면 분명 암호 보안과 관련해 취약한 부분이 존재한다”며 “이를 메울 수 있는 인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합격자 중 유일한 여학생인 충남과학고 출신 최모 양(17)은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고민하다 이 학과를 선택했다”며 “공군 파일럿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 7년 군복무도 별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학부모는 간담회 중 자녀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학부모가 “내 아들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도 합격했는데 포기하고 왔다. 잘한 선택인지 걱정도 된다”고 하자 김승주 교수는 “간판도 중요하지만 국내 유일의 사이버보안 인력을 육성하는 사이버국방학과의 전문성과 가능성에 주목해 달라”고 했다.
고려대는 우수 이과 인재를 더 유치하기 위해 정부가 제공하는 5000만 원 상당의 장학금 외에 연간 600만 원의 학업보조비를 전 학과생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올해 신축한 민자기숙사도 방학을 포함해 4년간 무료로 제공한다. 미래의 사이버장교들에게 투자하겠다는 기업들도 줄을 섰다. 마이크로소프트(MS)코리아를 비롯해 삼성과 LG 등 국내외 대기업들이 사이버국방학과에 후원금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임종인 원장은 “인재들이 돈 걱정 없이 학업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학교와 정부가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 하겠다”며 “암호학, 해킹 기술은 물론이고 사이버법학, 사이버심리학, 국제전략학도 포괄적으로 가르쳐 문과와 이과 전공을 섭렵한 국가대표로 길러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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