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는 이제 국내에서도 인기 레퍼토리다. 문제는 이를 새롭게 무대화할 때 어떻게 차별화하느냐다.
연극 ‘레드’의 연출가 오경택 씨가 연출한 극단 맨씨어터의 신작 ‘갈매기’는 체호프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코미디’이면서 ‘삼류 연애극’이라고 자평한 지점을 부각하려 했다. 제정 러시아 말기 두 가족과 이들의 지인 사이의 얽히고설킨 삼각관계를 현대인의 감성에 맞는 경쾌한 느낌의 연애극으로 풀었다.
중년의 유명 여배우 아르카지나(우현주)는 연인이자 유명 작가인 트리고린(박호산)과 함께 오빠 소린(이문수)이 사는 시골집으로 여름휴가를 온다. 아르카지나의 아들 트레플레프(박해수)는 연인이자 배우를 꿈꾸는 이웃집 처녀 니나(전미도)를 주인공으로 이들에게 보여줄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준비한다. 하지만 아르카지나의 훼방으로 공연은 중단되고 니나마저 트리고린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일상적인 연애야말로 이 작품이 부각하려는 키워드다. 13명의 등장인물 대부분은 엇갈린 짝사랑에 빠져 있지만 그 사랑은 한없이 가볍기만 하다. 예외는 비극의 주인공 니나와 트레플레프뿐. 니나는 자신을 버린 트리고린에 대한 애정을 포기할 줄 모른다. 트레플레프는 그런 니나를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 그들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그들만이 진짜 사랑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그려진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야”란 말을 입증하려는 듯한 이 연극을 풍성하게 만든 것은 단순하면서도 뛰어난 무대, 그리고 적절하게 사용한 음악과 춤이다. 연극 ‘됴화만발’에서 강렬한 이미지의 무대를 보여줬던 무대디자이너 정승호 씨는 이번 작품에서 바닥에서 1m쯤 띄운 가로 7m, 세로 23m의 무대를 만들었다. 이 무대는 때로 넓은 테이블로, 때로 거실로도 사용되고 트레플레프가 극 초반 연극을 올리는 야외무대로도 활용된다.
공연은 어떤 순간에도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비극적으로 흐를 수 있는 장면엔 예외 없이 음악과 춤을 삽입했다. 가령 1막 트리고린에게 니나를 빼앗기고 절망하는 트레플레프의 모습 뒤로 니나가 춤을 추고 트리고린은 색소폰을 연주한다. 사랑을 얻지 못해 상심이 극에 달한 트레플레프가 자살하는 2막의 마지막 장면에선 모든 배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등장해 왈츠를 춘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i: 12월 11일까지 서울 신수동 서강대 메리홀. 3만5000∼4만5000원. 02-766-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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