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에 밀린 당구장, 갑자기 북적거리는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30일 07시 11분


PC방 열풍에 밀려 눈에 띄게 줄어들었던 당구장이 최근 부활하고 있다고 뉴시스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즐기던 20~30대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면서 직장에서 선후배들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당구장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라는 것.

이와 함께 50~60대 장년층들이 퇴직 후 취미나 생활체육으로 인식하고 다시 당구장을 찾기 시작한 것도 한몫하고 있다.

또 단순히 여가 차원에서가 아니라 당구를 전문적으로 배워보려는 수요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00년 5172곳에 달했던 서울 시내 당구장은 2006년 3956곳까지 줄었다. 그러나 매년 400~500곳이 추가로 개업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더니 2009년에는 5155곳으로 늘어나 10년 전 수준을 회복했다.

과거 담배연기 자욱한 곳에서 도박판이 벌어지던 당구장들은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대신 널찍한 공간과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추고 인터넷은 물론 각종 음료와 스낵 제공 등의 서비스로 무장한 당구장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활의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듯 덩달아 주류를 판매하고 있는 당구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당구장은 체육시설로 분류돼 있어 주류 판매가 불가능하지만 버젓이 맥주 등 주류를 판매하고 있는 당구장들이 늘어나 단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5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의 한 당구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넓은 공간과 깔끔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끌었다. 10여개 당구대에는 이미 당구를 치러 온 손님들도 가득 차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또 몇 몇 고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당구를 치고 있었다.

당구대 옆에 놓인 테이블 마다 '가정용'이라고 표기된 맥주병들이 눈에 띄었다. 직장동료들과 함께 온 강모(30) 씨는 익숙한 듯 종업원에게 술을 시켰다. 강 씨에게 주문을 받은 종업원은 당구장 한 켠에 마련된 비밀 공간에서 차가운 맥주 서너 병을 꺼내 전달했다.

종업원은 술을 건네며 "지금까지 단속에 걸린 적이 없었지만 혹시 모를 단속에 대비해 맥주는 직접 사왔다고 말해야 된다"고 귀뜸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 당구대에서 고성이 오가며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당구대 옆에 테이블에는 소주병을 포함해 대여섯 개의 빈 술병이 놓여 있었다. 주인과 종업원은 이내 달려가 싸움을 뜯어 말리는 진풍경까지 벌어져 눈살을 찌푸르게 했다.

비단 이 당구장만 술을 판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종로구와 마포구 일대 당구장 20여개 중 10여개가 넘는 업소에서 맥주 1병당 5000~6000원을 받고 각종 스낵류와 함께 버젓이 술을 판매하고 있었다.

당구장들이 술 판매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구장이 호황이라 한집 걸러 하나씩 들어서 있다 보니 과다 경쟁이 불가피해졌고, 주류 등을 파는 불법 행위를 통해서라도 손님을 유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소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손님들 역시 이미 당구장에서 술을 판매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술을 팔지 않는 당구장에서는 손님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당구장을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모(47) 씨는 "직장인들은 대부분 술을 주문하는데 없다고 하면 다른 당구장으로 가버린다"며 "이미 다른 당구장도 술을 판매하고 있어 불법인지 알면서도 손님 떨어질까 봐 어쩔 수 없이 판매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당구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직장인 최모(32) 씨는 "일주일에 서너번 직장 동료들과 당구장을 가지만 술을 마신다고 해서 폭력이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찾은 당구장에서 맥주 한 두잔 먹는게 무슨 큰 죄가 되냐"고 반문했다.

직장인 서창수(41) 씨는 "체육시설로 분류돼 청소년들도 자유롭게 이용하는 당구장에서 술을 판매하는 행위에 대해 제재가 필요하다"며 "당구가 건전한 여가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라도 술을 파는 불법 행위 등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단속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술을 판매하는 당구장은 늘고 있지만 뚜렷한 법적 규정이 없다보니 구청도 단속에 선뜻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체육시설로 분류돼 있는 당구장에서 술을 판매하는 행위는 체육시설 범위를 넘어선 행위"라며 "당구장이 신고제다보니 노래방이나 비디오방처럼 경찰과 함께 단속을 해야되는데 이러한 단속 권한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으로 단속 권한이 없으나 굳이 적발을 하려면 안전위생기준에 부합하는가의 여부를 검토해봐야 한다"며 "불을 사용해 안주를 조리해 함께 판매할 경우에는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구장에서 술을 판매하는 것에 대해 단속할 뚜렷한 법적 근거가 없는데다 지차제의 무관심까지 더해져 술을 판매하는 당구장들이 독버섯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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