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돌연 사망하면서 한국 경제가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김 위원장의 사망은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폭침과 같은 국지적인 도발과 달리 중장기적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국제금융시장에서 부각시키는 대형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내년 한국 경제에 시련이 예고된 가운데 북한 변수가 불거지면서 물가 상승과 소비 둔화로 경제가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후계 체제 전환 과정에서 북한 정치체계가 불안정해지고, 대규모 탈북사태 조짐이 나타날 경우 우리 경제는 천문학적인 통일비용 부담 문제까지 떠안아야 한다.
○ 물가 불안에 소비 둔화로 경기 악순환 우려
전문가들은 갑작스러운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국내 경제가 떠안을 부담은 더욱 커졌다고 평가한다. 이미 유럽 재정위기의 확산으로 세계 경제가 둔화로 방향을 튼 상황에서 하방 리스크가 더욱 커진 셈이다.
당장 환율 급등(원화가치 하락)으로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북한의 행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외국인 자금 유출이 가속화하면서 국내 주식시장의 33%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 자금이 빠르게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입 단가가 오르면서 물가도 함께 오른다.
당초 정부는 내년 수출 둔화에도 불구하고 소비 회복세가 지속되면서 경제성장률은 3.8%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와 물가 불안이 실물경제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경제성장률이 예상치를 밑돌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안보 불안이 경제 불안 심리로 확산되면서 내년 한국 경제를 지탱해줄 것으로 예상됐던 내수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외국인 자금들이 국내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가속화할 수 있다”며 “이는 물가 상승과 소비 둔화로 이어져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유럽 재정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발동했던 위기관리체제를 강화하면서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특히 국제 신용평가사와 외국인투자가들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외국인들의 과도한 쏠림 현상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각에서는 내년도 예산안에 북한 변수에 대비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회 심의절차가 진행 중인 내년 예산안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예비비를 증액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비비는 2조7000억 원 수준이다.
○ 급변사태 시엔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 불가피
정부는 내부적으로는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비상계획도 손질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김 위원장의 사망이 북한 정치체제의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1994년)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구도가 확고히 다져진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후계자인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해 보인다는 점이 가장 큰 위험요인이다. 김 주석 사망 때와 달리 북한 경제의 펀더멘털이 심각하게 손상된 점도 급변사태의 확률을 높이는 요인이다.
최악의 경우는 북한 내 권력다툼과 대량 탈북사태 등으로 북한 체제가 갑자기 붕괴할 때다. 이런 상황은 남측에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통일비용은 통일 시기와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한 수십조 원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통일 10년 뒤 북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남한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10년간 3조5000억 달러(약 4100조 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 통일부가 전문기관에 의뢰한 용역 결과에 따르면 2030년 통일을 가정할 때 통일비용은 통일 전 20년간 북한에 대한 지원 비용과 통일 후 10년간 남북 통합 비용으로 813조∼2836조 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준비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정부는 통일재원으로 적어도 55조 원을 사전에 적립할 계획을 세웠지만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는 뚜렷한 계획이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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