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선수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농구를 하다 14세 때 종목을 바꾼 소녀가 처음 들은 말은 온통 부정적이었다. 다행히 한 선생님만 그의 탁월한 점프력에 관심을 보였다. 시작하자마자 배구를 그만둘 뻔한 소녀는 그 선생님 덕분에 살아남았다.
‘내가 왜 안 돼.’ 오기가 생긴 소녀는 배구공을 놓지 않았고 이듬해 학교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지금은 한국 프로배구 최고의 용병으로 불린다. 여자 외국인 선수 최초로 3시즌째 한국에서 뛰고 있는 인삼공사 몬타뇨(28·콜롬비아)를 대전 숙소에서 만났다.
“어릴 때부터 목표가 생기면 그것만 생각했다. 콜롬비아를 떠나 아르헨티나와 미국 주니어리그에서 뛸 때도 외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지금은 남편(테오도로스·51·그리스)과 아들(디미트리스·4)이 있어 너무 행복하다.”
공격 4개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몬타뇨의 올 시즌 득점력은 가공할 수준이다. 올 시즌 두 차례나 여자부 역대 한 경기 최다인 54득점을 기록하는 등 19일 현재 11경기에서 416점을 올렸다. 이 페이스로 30경기를 마치면 여자선수 최초로 한 시즌 1000득점 돌파도 가능하다. 지난 시즌 24.6점이었던 몬타뇨의 경기 평균 득점은 37.8점으로 껑충 뛰었다. 세트 평균 9.9득점은 남자를 포함해 역대 최고다. 삼성화재 가빈의 올 세트 평균 득점은 9.1점이다.
“상대 팀이 나를 집중적으로 분석해 올 시즌은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결과에 나도 놀랄 정도다. ‘남자 가빈’이라고 불리는 것은 나쁘지 않다. 예전부터 남자와 많이 비교됐다.”(웃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몬타뇨는 누구보다 노력을 많이 한다. 숙소에서도 끊임없이 비디오를 보며 연구한다. 자만할 법도 하지만 훈련할 때도 꾀를 부리지 않는다. 인삼공사 박삼용 감독이 “몬타뇨의 가장 큰 장점은 배구 실력이 아니라 인성”이라고 할 정도다.
몬타뇨는 대전 신탄진역 근처에 있는 인삼공사 사택에서 남편, 아들과 함께 생활한다. 농구 에이전트로 일하는 23세 연상의 남편은 늘 몬타뇨를 따라다니며 응원을 한다. 주말 대전 홈경기 때는 아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는다.
“2005년 2월 그리스에서 뛰던 중 친구와 같이 간 자리에서 우연히 남편을 알게 됐다. 한 달 뒤 다시 만났는데 서로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고 4개월 뒤 결혼했다. 평소 또래는 남자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남편은 나이가 있어 더 끌렸다.”
몬타뇨는 지난 시즌을 마친 뒤 배구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뛰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럽 경제위기 여파로 상황이 꼬였고 다시 인삼공사 유니폼을 입었다.
“남편이 유럽행을 추진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 내가 가자고 했다. 지난 시즌 도중 그리스에 계신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남편은 나와 아들만 남겨 놓고 떠날 수 없다며 어머니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 시즌이 끝난 뒤 남편 고향과 가까운 유럽으로 가자고 한 것이다. 어찌 됐든 다시 돌아와 잘됐다. 우리 가족은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
그는 요즘 기분이 좋다. 자신의 요청을 구단이 받아들여 콜롬비아에 사는 아버지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기 때문이다. 보름 정도의 일정으로 17일 도착한 아버지는 18일 도로공사와의 경기가 열린 성남을 찾아 사위와 함께 딸의 경기를 지켜봤다. 이날 몬타뇨는 34점을 퍼부으며 팀의 3연승을 이끌었다. 진화한 몬타뇨 덕분에 올 시즌 인삼공사는 선두를 독주하며 2시즌 만에 챔피언 탈환을 노리고 있다.
“어려서 농구를 할 때 아버지의 칭찬을 받는 게 너무 좋았다. 그동안 경기 녹화 테이프를 보내 드렸는데 직접 보시게 됐으니 더 잘해야 할 것 같다.”
몬타뇨는 평소 가족이 경기를 보러 오면 힘이 난다고 했다. 아버지와 남편, 아들이 함께 경기장을 찾는 날, 그가 자신의 득점 기록을 다시 갈아 치울지 모른다.
대전=이승건 기자 why@donga.com ■ 몬타뇨는 누구?
△생년월일=1983년 1월 6일 △체격=185cm, 68kg △배구 시작=14세 △포지션=레프트 △국적=콜롬비아 △수상=2009∼2010시즌 공격상,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 2010∼2011시즌 득점상, 공격상 △가족=남편과 1남 △취미=뜨개질(최근에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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