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으로 한국 정부의 대북 정보수집 및 판단 능력의 부재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북한이 ‘특별 방송’을 예고한 19일 오전 10시 부랴부랴 상황 파악에 나섰지만 안보 당국에서는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중대 방송’은 이따금 나오는 반면 ‘특별 방송’ 형식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처음이란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예후였다.
하지만 청와대의 움직임에선 급박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대통령은 71세 생일을 맞아 아침에 참모들과 케이크를 잘랐다. 수석비서관회의 때도 북한 동향을 논의했다는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낮 12시 조선중앙TV ‘특별 방송’을 직접 시청했는지, 방송 전에 김정일 사망 소식을 보고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그 시간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어떻게 파악했는지는 일일이 설명할 수 없다”고만 답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할 때 결국 “청와대는 몰랐다”는 게 좀 더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사망 시간인 17일 오전 8시 반부터 무려 51시간 반 동안 북한의 권력 공백을 몰랐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정보 부재 속에 이 대통령은 김정일 사망 4시간 뒤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출국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나 정승조 합참의장도 안보위기를 상정한 행보와는 거리가 있었다. 김 장관은 오전 내내 국회에서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를 만나 국방개혁법안을 논의하다가 낮 12시 20분 국방부 상황실로 돌아갔다. 정승조 합참의장도 전방부대를 순시하던 중 이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급히 귀경했다. 김태효 대통령대외전략비서관은 마침 18일 맹장수술을 받았고 병가를 하루 쓴 뒤 20일 출근한다.
정보 전문가들은 “후계구도가 안정화되기 전 상황인 만큼 김정일 유고는 극소수에게만 알려졌을 것”이라며 불가항력이란 점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의 미국 내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북한 유엔대표부도 TV 보도 이후에야 사망 사실을 알았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현지 시간 일요일 오후 11시에 나온 깜짝 뉴스 직후 현지 언론의 방송카메라에 유엔대표부 소속 북한 외교관들이 황급히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잡혔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 정보당국이 중국이나 미국 등 주요국과의 정보공유가 아니면 북한 내부의 민감한 사정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1차 북한 핵실험 계획도 북한이 중국 등 제3국에 알려준 것을 전달받는 방법이 유일한 창구였고, 2차 실험 땐 그나마도 정보를 받지 못했다. 올 5월 20일 김 위원장의 중국 동북 3성 방문 때도 우리 정부는 출발 이후 4, 5시간 동안 “3남인 김정은이 동행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다가 비판을 자초했다.
한미 간 정보공조가 없었다는 점에서 미국도 김 위원장의 사망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은 사전 통보를 받았을 개연성이 높다. 미국 CNN은 중국 정부가 김정일 사망을 미리 알았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류웨이민(劉爲民)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사전 통보를 묻는 질문에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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