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가는 늘 북한 리스크가 반영된 상태입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달라질 게 별로 없어요.”(홍콩 투자회사 ‘밸류 인베스트먼트 프린시플’의 샌디 메타 대표)
“싱가포르 투자자들은 중국 영향으로 북한이 개방 쪽으로 움직이면 되레 긍정적이라는 생각도 합니다.”(싱가포르 소재 헤지펀드 ‘퍼페티엘 캐피털’의 스콧 정 대표)
김 위원장의 돌연 사망을 접한 외국계 투자자들의 반응은 담담했다. 20일 동아일보 경제부가 홍콩 싱가포르 등에 위치한 글로벌 투자자들과 한 긴급 전화 인터뷰에서 이들은 “이번 사태의 영향은 단기에 그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북한 리스크는 한국 증시에 늘 반영된 상태였고, 펀더멘털(기초체력)에서 달라질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기적으로 이번 사태가 북한 체제 개편이나 개방으로 이어지면 한국 증시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외국계 투자전문가들은 한국 금융시장의 최대 변수는 유럽 재정위기 해소 과정이며 북한 권력승계는 그 다음으로 지켜봐야 할 ‘제2의 포인트’라고 지적했다. ○ “북한 리스크, 새롭지 않다”
프랜시스 챙 ‘크레디 아그리콜’(프랑스계 투자은행) 홍콩지부 애널리스트는 “홍콩의 외국계 투자자 대부분이 김 위원장의 사망 영향이 단기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아예 떠날 자금들은 유럽 재정위기의 영향으로 이미 떠났고, 과거 북한 이슈가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사망이 대형 돌발변수이지만 북한 리스크는 늘 있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메타 대표는 “한국 주가는 기존에도 북한 리스크를 반영한 상태여서 추가 하락 요인은 없다”며 홍콩 투자업계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싱가포르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정 대표는 “아직 어리지만 김정은이라는 후계자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아시아본부장을 지낸 그는 중국 효과에 주목했다.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직후 중국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인정했다는 얘기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한국담당 이코노미스트도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오랫동안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사망 이후 상황을 주변국들이 충분히 준비한 상태”라고 했다.
북한 이슈와 한국 경제의 직접 관련성이 작다는 분석도 많았다. 송기석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전무는 “역사적으로 북한 이슈와 한국 금융시장의 상관성이 낮았다”고 설명했다. 남북한 교역 규모가 10억 달러에 불과한 점도 이번 사태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이 작을 요인으로 꼽혔다. ○ 조심스러운 기대감도 엿보여
메타 대표는 “몇 년 전부터 김정일 사망은 예고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번 일을 돌발사태로만 볼 게 아니다”며 “북한이 개방이나 체제 개편에 나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도 “김정은으로 순조롭게 권력이 넘어가면서 남북 관계가 부드러워진다면, 외국인 투자가 입장에서 한국 주식의 가치는 되레 뛰는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외국인 투자가들의 향후 한국 투자 전략은 대체로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선진국 경제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신흥국 시장을 놓칠 수 없고, 신흥국에서는 한국 주식이 가장 저평가돼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 “권력승계 과정은 지켜봐야”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은 김 위원장의 사망 영향을 제한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권력승계 과정은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경계했다. 이 과정이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악재가 불거질 수 있다는 얘기다. 프랑스계인 BNP파리바는 “새 지도자가 권력 강화를 위해 국내 문제에 전념하겠지만 내부의 권력투쟁이나 외부관계가 악화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금융위원회 측은 “19일 외국인 매도는 대부분 유럽계 자금이었고, 이는 김 위원장의 사망보다는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매도”라며 “유동성 확보에 나선 유럽계 이외의 외국인은 한국시장에서 재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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