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잊을 수 없는 ‘그날’]<5>창작 판소리 ‘억척가’ 마지막날 공연 완창후 쓰러진 이자람의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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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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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걱정-핀잔 속 매진 사태라니 모든 걸 쏟아부어 혀 굳고 정신 몽롱”

《 처음이었나. 무대 위에서 내 한계 지점과 맞닥뜨린 것이. 아니 엄밀히 말하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1999년 동초제 춘향가 8시간 완창 때였다. 공연 절반인 4시간쯤 지났을 때 스무 살 내 몸과 정신이 더 버틸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 외롭고 두렵고 모든 것이 새까매졌다. 공연을 멈추고 컴컴한 무대 뒤로 멍하게 돌아 들어갈 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던, 지금은 작고한 은희진 선생님께서 “잘하고 있다”라며 포근히 안아주시지 않았더라면, 내게 8시간 완창이라는 경험은 없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올해 6월 19일. 나와 나의 예술적 파트너들이 만들어 낸 신작이자 우리가 만든 두 번째 판소리 ‘억척가’의 마지막 공연 날이다. 》
2011년 6월 19일 이자람은 창작 판소리 ‘억척가’의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 쓰러졌다. 그는 “그대로 캡슐에 나를 넣어 우주로 날려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LG아트센터 제공
2011년 6월 19일 이자람은 창작 판소리 ‘억척가’의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 쓰러졌다. 그는 “그대로 캡슐에 나를 넣어 우주로 날려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LG아트센터 제공
올해 태어난 ‘억척가’는 2007년 ‘사천가’에 이어 내가 두 번째로 선보인 판소리다. “무슨 창작 판소리냐, 전통 판소리나 제대로 하고 있느냐”라는 수많은 걱정과 핀잔에 ‘나는 전통 판소리가 너무 좋고, 그래서 매일 연습하고,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삭이고 삭여 작품으로 빚어낸 판소리다. 브레히트의 원작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에서 가져온 전쟁통에 자식들을 잃어가며 자신도 잃어가던 억척네의 웃음, 비통함, 억울함, 신명, 깨달음을 인간의 몸으로 낼 수 있는 소리를 총동원해 만든 소중한 ‘판소리’다.

5월 20일부터 사흘간 의정부 국제음악제에서 ‘억척가’ 초연을 마치고 6월 14일부터 LG 아트센터에서 5회 공연을 남겼을 때 일이 벌어졌다. 어렸을 때 이미 겪은 수두가 온 얼굴을 뒤덮었다. 공연이 몸에 얼마나 무리를 주었던지 몸의 밸런스와 열을 모조리 헤집어 놓은 것이다. 두려웠고 몸에게 미안했고 한편으론 신났다. ‘어느 배우가 무대에서 이렇게 모든 것을 쏟아낼 기회를 갖는단 말인가.’

의정부 공연이 입소문이 나면서 LG아트센터 5회 공연 티켓이 매진됐다. 공연 2시간 전부터 관객이 줄을 섰고 웃돈 주고라도 표를 구하고 싶다는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사천가’를 만들고 5년이 지나서야 우리의 판소리를 알아주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벅차면서 야속했다.

마침내 마지막 공연 날. 힘든 공연(사천가 이후 ‘다신 이렇게 힘든 공연은 만들지 말아야지’ 했는데 억척가는 그 세 배 정도 체력 소모가 더 크다) 이후엔 농담 삼아 “관객이 천 명 와서 하루 더 하자 하면 뭐, 할 수 있어”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날만큼은 그런 농담도 안 나왔다. ‘만 명 와도 더 못하겠다. 차라리 건강하게 살아남아 만 번의 공연을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었을까.

무대 위에서 ‘장하다, 조금만 더 버텨다오’라는 마음이 어떤 따스한 에너지로 나를 에워쌌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혀가 마비되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여기가 어디인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 여기서 버텨내야 하는데 누가 날 도와줄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한계 지점에 서 있었다. 이제 20분 남은 것 같은데, 이제 10분 남은 것 같은데, 이제 추선이가 죽으러 가는구나, 이제 억척네가 길 떠나는구나, 아, 신발 끈 풀렸구나, 넘어지지 말아야지, 억척네 이야기를 끝까지 마쳐야지….

정신을 차려 보니 기립박수를 보내는 관객 앞에 서 있었다. 울음이 터졌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몸을 혹사해 무언가와 싸우며 살아가는 것인가. 세 차례 커튼콜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 쓰러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기 싫고, 그대로 캡슐에 나를 넣어 우주로 날려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2시간 넘게 분장실에 쓰러져 누워 있었다.

이제 곧 2012년이다. 억척가의 재공연이 기다리고 있어 벌써부터 두렵고 심장이 뛴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가, 무엇과 이렇게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가. 답은 밖에 없다. 답은 내 안에 있다. 너무도 행복한 삶이다.

이자람 소리꾼·판소리창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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