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20주년… 새로운 20년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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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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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교류는 긴밀, 외교-안보는 긴장… 미완의 동반자관계

《 올해로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20년. 1992년 8월 24일 수교할 당시만 해도 양국 관계가 지금처럼 밀접하게 교직되고 양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한국전쟁 당시 총부리를 겨누었던 두 나라는 수교 20년 만에 서로 없어서는 안 될 이웃이 됐다. 그렇다고 한-중 관계가 줄곧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어찌보면 수교이후 양국의 역사는 수많은 갈등과 충돌로 점철됐고 그늘도 여전히 깊다. 요즘도 양국은 곳곳에서 뿌리깊은 불신과 경계심을 확인하고 있다. 어느덧 성년으로 접어드는 한-중 관계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짚어봤다. 》
# 중국 베이징(北京)의 컴퓨터회사에 다니는 주제(朱杰·25) 씨는 한 달에 한두 번 노래방(중국에선 KTV라 부른다)에 간다. 한류를 통해 노래방이 소개되고 한국 가요반주기가 들어오면서 중국 젊은이들의 놀이문화가 바뀌었다. 현재 중국의 하드디스크 방식 가요반주기 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 “외교적 수치심을 느꼈다.”

작년 5월 제주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간 회담에 배석했던 한 한국 정부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천안함 폭침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견해를 고집한 중국에 큰 실망을 했다는 얘기다. 대(對)중국 외교는 한국 외교관의 무덤으로까지 불린다. 민감한 일은 많은데 중국을 상대하기가 날로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특파원을 오래 지낸 중국 언론인은 올해로 수교 20주년을 맞는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한마디로 “수근유원(雖近猶遠) 이교난심(易交難深)”라고 표현했다. 가깝지만 아직 멀었고, 교류하기는 쉽지만 깊어지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 특별한 이웃이 되어버린 밀접한 교류


한중 양국의 밀접한 관계를 말할 때 ‘가장 많은 자녀를 상대방에 맡기는 이웃 나라’라는 표현을 쓴다. 2010년 말 기준 중국 내 한국 유학생(대학 이상)은 약 6만3000명, 한국 내 중국 유학생은 약 5만8000명으로 각자 자국 내 외국인 유학생 중 가장 비중이 크다. 한국국제교류재단에 따르면 2011년 3월 말 현재 한국어학과(조선어학과)가 개설된 중국 대학은 97곳에 이른다. 한국 대학에 개설된 중국어과보다 더 많다.

경제는 양국의 상호협력과 상생을 보여주는 대표적 분야다. 한국의 대중 경제관계는 ‘중국에서 가공 후 수출(made in china)’에서 ‘중국 내수시장 진출(made for china)’를 넘어 ‘중국 기업과의 상생협력(made with china)’ 시대를 향한다. ‘중국과 함께’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조직인 중국한국상회 박근태 회장(CJ중국본사 대표)은 “양국 기업이 협력해 중국뿐 아니라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자본의 한국 공략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동안 양국 간 자본 이동은 한국의 ‘짝사랑’에 가까웠다. 수교 이후 19년 동안 한국의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FDI)는 495억 달러(2011년 11월 말 현재)지만 중국의 대한(對韓) FDI는 누적으로도 약 33억 달러(2011년 9월 누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근 추세는 고무적이다. 중국의 대한 FDI는 2007년 연간 3억 달러를 처음 넘었고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6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 FDI는 약 24억 달러 수준이었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4년 전부터 중국 자본의 한국행 물꼬가 터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중국의 제3 무역상대국(홍콩 제외)이고 중국은 한국의 제1 무역상대국이다. 한국 통계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11년(11월 말 현재)까지 교역규모가 무려 32배나 커졌다. 국민의 상호 교류는 지난해 600만 명에 이른다. 매일 1만6000명이 서로 오간다는 얘기다. 양국을 잇는 항공기는 주당 700여 편이다.

○ 서로에게 스며든 문화


중국의 한류에 불을 지핀 건 한국 가요와 드라마였다. 지금은 한국 음식,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태권도, 화장품, 의류 등으로 확산됐고 ‘한반(韓版)’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한국산 의류를 뜻하던 한반은 한류의 외연이 넓어지면서 한국식 화장 등 한국식 생활문화를 통칭하는 뜻을 담게 됐다.

중국 최대 소비층인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출생자) 세대들에게 한반은 필수 아이템이다. 한국인이 많이 몰려 사는 베이징(北京) 왕징(望京)의 미용실에서는 한국인 미용사가 머리를 깎아주면 약 80위안, 중국인 미용사는 30위안 정도로 차이가 크다. 한국의 유명 스타처럼 꾸민 중국 청소년들이 한국인 미용사를 찾아 머리 손질을 받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올해 초에 완공된 랴오닝(遼寧) 성 선양(瀋陽) 시 황구(皇古) 구의 아파트는 전체 2100가구 중 400가구가량에 온돌이 깔려 있다. 중국 아파트는 원래 라디에이터를 이용해 난방을 한다. 한국식 온돌의 탁월한 난방과 건강효과가 알려지면서 온돌을 까는 중국인 가정이 늘고 있다. 베이징 순이(順義) 구에 짓고 있는 한 아파트단지는 아예 ‘한국식 온돌’이라는 점을 홍보 포인트로 한다.

○ 힘세지는 중국, 불안한 한국


하지만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중 관계는 차갑기만 하다. 양국 국가원수가 상호 방문을 하고 군사교류도 활발히 진행되지만 아직 근본적인 신뢰가 구축되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중국의 커지는 힘을 우려한다. 중국이 주장하는 아시아적 세계질서가 옛 조공 질서의 회복을 꿈꾸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중국은 중국대로 ‘밥은 우리 집(중국)에서 먹고, 사귀기는 미국과 사귄다’고 불만이다. 한국의 뒤에는 미국이 있어 결정적 순간에 중국에 등을 돌릴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의 한중 관계는 어찌 보면 ‘불완전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보인다.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양국 관계에서 경제적 상호이익이 균형을 유지해 왔지만 최근 안보상의 세력 균형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굴기(굴起)와 미국의 견제, 중국의 북한 끌어안기와 한미 동맹 강화가 복합 작용한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중국이 한국을 볼 때 미국의 그림자가 비치는 상황 속에서 한중 관계는 계속 불안한 요인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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