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미국과 유럽에서 지켜본 시민운동은 민주주의를 지탱해주는 기둥이었다. 1988년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참여할 기회가 왔다. 그해 6월 지역감정해소국민운동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았다.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와 작고한 김지길 목사가 함께 활동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는 이른바 ‘1노(盧) 3김(金)’이 후보로 나서 대한민국의 좁은 땅은 다시 지역색에 의해 갈라졌다. 지역감정 극복은 현재 진행형의 과제이지만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그 폐해가 컸다.
대선 뒤 상황은 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강력하게 분출하던 시기였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요구도 커졌다.
1989년 7월 변 교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황인철 변호사 등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공동대표로 취임했다. 이에 앞서 서경석 목사 등이 찾아와 시민운동을 통해 경제적인 불평등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대안 있는 비판과 평화적이면서 합법적인 추진, 제도화 등의 목표를 얘기했다. 일부 단체와 달리 대안 제시와 평화적으로 활동한다는 원칙이 맘에 들어 흔쾌히 합류를 결정했다.
나는 8년간 경실련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이 기간 시민운동의 ‘ABC’를 처음부터 배우면서 적지 않은 일을 했다. 경실련의 가장 큰 목표였던 금융실명제가 YS(김영삼 전 대통령) 정권에서 제도화에 성공했다. 임대주택법을 개정해 임차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임대주택 건설을 늘리도록 해 주택문제의 해결에 기여했다. 경실련의 대안이 정책에 반영되면서 시민운동의 새로운 미래가 열렸다. 이 무렵 환경과 통일, 공명선거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활성화됐다.
시민운동에 발을 들여놓자 그 영역이 계속 넓어졌다. 공명선거실천시민연합(1990∼1995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 공동대표 겸 이사장(1996∼2006년),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공동위원장(1998∼2003년) 등을 맡았다.
시민운동 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을 다시 불교계에 도입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불교계의 경우 시민단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던 상황이었다. 우리 불교가 지나치게 개인적 수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깨달음의 사회적 실천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부처님 법을 전해 올바른 지혜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사회와 시대 속에서 생기는 고민을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현대판 보살행이다.
나는 경실련에 참여하면서 공명선거추진 불교도 시민운동연합, 경실련 불교시민연합, 공해추방운동 불교인 모임, 불교인권위원회 등을 결성하거나 주요 직책을 맡았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주거할 수 있는 ‘나눔의 집’ 건립 추진위원장도 맡았다. 나눔의 집은 처음에는 서울 서교동 전셋집으로 시작해 혜화동으로 옮겼다가 경기 광주시 퇴촌에 건립했다.
최근 시민운동과 정치권의 관계가 논란이 되고 있다. 멀리는 서영훈 서경석 씨 등이 정계에서 활동했고, 가깝게는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모두 가까운 분들이지만 시민운동의 미래를 위해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운동의 ‘생명줄’은 도덕성이다. 특히 정치권, 재벌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시민운동가 출신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변명은 대체로 두 가지다.
“정부의 힘을 빌려 제대로 하고 싶다”와 “정부가 못해 나섰다”.
둘 다 틀렸다. 시민운동 자체가 애초 한꺼번에 목표에 도달하는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이다. 힘들고 더딘 게 맞다. 그렇게 땀 흘리며 올라가야 주변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고 함께 갈 수 있는 것이다. 관변 단체나 기업 사외이사 자리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마다해야 한다.
눈앞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치권과 결합해 걸핏하면 거리로 나가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시민운동은 국론이 분열될 때 이를 조정할 수 있는 균형추다. 여와 야에 관계없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고 간주되면 누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나. 대안 제시를 통한 법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라 거리와 인터넷에서 다수의 힘에 의지한다면 그 단체는 시민운동의 관점에서는 ‘자격상실’이다.
개인적으로 정치권에 진출한 시민운동가 출신들이 잘하기를 바랐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그들은 다시 돌아와 시민운동가를 자처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차가울 수밖에 없다. 시민운동이 더 이상 정치권으로 가는 ‘주차장’이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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