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른 대통령령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해온 경찰이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그동안 검찰이 관행적으로 경찰에 의뢰해 수사해오던 진정 등의 사건을 더는 경찰이 대신 수사해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한마디로 검찰이 경찰을 수족 부리듯 해온 ‘하청 수사’ 관행의 고리를 끊겠다는 뜻이다.
경찰의 이번 조치는 ‘준법투쟁’의 성격이 강하다. 1일부터 시행된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라 검사의 수사 지휘는 받되 엄밀한 의미의 ‘수사’에 대해서만 지휘를 받겠다는 것이다. 통상 고소 고발은 범죄혐의가 비교적 분명해 수사 대상에 해당하지만 진정이나 탄원, 첩보 등은 수사의 전 단계인 ‘내사’ 사안으로 분류되는 만큼 검사가 지휘할 대상이 아니라는 게 경찰 측 시각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기존에는 검찰이 고소 고발 건뿐 아니라 진정이나 탄원, 풍문도 경찰서에 내려보내면 관행상 대부분 조사를 했다”며 “하지만 이번 형소법 대통령령 논의 과정에서 수사에 대해서만 검사 지휘를 받는다는 게 분명해진 만큼 수사 요건에 해당하는 고소 고발 건에 대해서만 수사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이 같은 방침을 정한 것은 검사의 수사지휘 원칙을 규정한 개정 형소법 대통령령 제2조에 근거한 것이다. 이 조항은 ‘검사는 사법경찰관을 존중하고 법률에 따라 사법경찰관리의 모든 수사를 적정하게 지휘한다’고 돼 있다. 수사에 대해선 예외 없이 검사 지휘에 따르겠지만 수사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검찰의 진정이나 탄원 사건에 대해선 경찰이 대신 조사해줄 법적 근거도 없고 지휘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전국의 일선 경찰서로 모두 확산될 경우 검찰 수사는 사실상 마비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에서 접수하는 고소 고발뿐 아니라 진정이나 탄원 사건의 80%가량을 그동안 경찰이 수사해왔는데 경찰이 고소 고발 사건만 수사한다면 검찰에 들어오는 진정 탄원 풍문 첩보 등 대부분의 범죄단서는 그대로 묻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10만1108명에 이르는 전체 경찰 중 수사를 전담하는 경찰관은 18.3%인 1만8457명. 검찰은 2044명에 불과한 인력으로는 접수하는 사건을 모두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동안 사건을 경찰에 이관해 처리해왔다.
경찰의 이 같은 강공 대응에 검찰은 당황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검찰이 이날 밤 공식 입장을 곧바로 결정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일선 검사 사이에서는 불만이 대단하다. 수도권의 한 재경 검사는 “검찰 입장에서는 꼭 고소 고발이 아니더라도 첩보가 구체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내려보낸 것이고 수사지휘에 따르는 것은 검찰에 대한 의무가 아니라 국민에 대한 의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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