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124>도루묵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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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0일 03시 00분


‘말짱 도루묵’이라고?… 서민들 사랑받는 생선으로

맛이라는 것이 주관적이어서 사람에 따라 입맛이 각각 다르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도루묵을 고급 생선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형편없고 맛없는 물고기인지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많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도루묵은 살이 연하고 비리지도 않아 구워 먹어도 맛있고 찌개를 끓이거나 조려 먹어도 좋다.

미끌미끌하고 탱탱한 알이 입속에서 오도독 터지며 씹히는 맛도 각별하다. 그러니 도루묵 입장에서는 이름의 유래가 억울하기 짝이 없다.

따지고 보면 도루묵은 맛보다는 이름 때문에 더 유명해진 생선이다. 그런데 동해를 사이에 두고 한국과 일본의 도루묵 이름을 짓는 법이 서로 달라 흥미롭다. 알려진 것처럼 도루묵은 피란길에 시장했던 임금님이 이 생선을 맛있게 드신 후 ‘목(目)’이라는 이름 대신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가 난리가 끝난 후 궁궐로 되돌아와 다시 맛보니 옛날 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로 ‘목’이라고 부르라”며 역정을 냈기 때문에 생긴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역정을 냈다는 임금이 누군지는 여러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임진왜란 때의 선조로 알려져 있지만 1904년 4월 9일자 황성신문에는 인조라고 나온다. 또 정조 때 이의봉이 쓴 ‘고금석림(古今釋林)’에는 고려의 어느 임금이라고 기록돼 있다고 한다.

도루묵 이름의 이 같은 유래에 대해 자주 인용하는 문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인조 때 문장가인 택당 이식의 ‘환목어(還目魚)’라는 시다. 여기에 옛날부터 그런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했으니 맛이 없다며 화를 낸 임금이 인조는 아닐 것이다. 또 선조는 임진왜란 때 도루묵이 잡히는 함경도나 강원도로 피란간 적이 없다고 한다.

또 피란길에 허기진 임금님이 흡족한 맛에 반해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하지만 실학자 서유구는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 배가 하얀 것이 운모(雲母)가루와 비슷해 현지 사람들이 은어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즉, 맛과는 관계가 없는, 생김새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도루묵을 ‘하타하타’라고 한다. 천둥 치는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로 일본 고어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도 도루묵은 음력 11월에 주로 잡히는데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천둥과 번개가 많이 치는 계절에 도루묵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일본식 한자로는 도루묵을 물고기 어(魚)변에 귀신 신(神)자를 써서 표기하는데, 신과 같은 물고기라는 뜻이 아니라 옛날 일본에서는 천둥을 신이 내는 북소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역시 천둥이 많이 칠 때 몰려오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하타하타’는 또 겨울철 동해의 파도가 거세질 때 잡히기 때문에 파도가 많이 친다는 뜻의 파다파다(波多波多)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고급 생선은 아니지만 예전 서민들은 도루묵을 지금보다 다양하게 조리했다. 구이와 조림, 찌개는 물론이고 도루묵으로 회도 치고 식해도 담갔다.

또 도루묵깍두기는 별미였으니 토막 친 생선을 무와 버무려 깍두기를 담그고, 김치를 담글 때 대구나 동태 대신 도루묵을 넣어도 훌륭한 맛이 난다고 했다. ‘말짱 도루묵’이 아니라 서민의 사랑을 받는 생선이었던 것이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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