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한국기업 세계를 품다]<3> 인도 교통문화 개선 힘쓰는 현대차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2일 03시 00분


“車팔면서 印교통사고 외면못해”… 교통봉사대-운전스쿨 운영

‘현대’ 로고 복장으로 교통정리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회사답게 인도의 교통문화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대차 인도재단(HMIF)이 2006년부터 400명 규모로 운영을 시작한 대학생 교통봉사대 대원들이 9일 타밀나두 첸나이의 혼잡한 도로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현대’ 로고 복장으로 교통정리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회사답게 인도의 교통문화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대차 인도재단(HMIF)이 2006년부터 400명 규모로 운영을 시작한 대학생 교통봉사대 대원들이 9일 타밀나두 첸나이의 혼잡한 도로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9일 오후 6시 인도 타밀나두 주 중심부 첸나이에서 약 6km 떨어진 엘담스 사거리. 자동차와 버스, 오토릭샤(소형 삼륜차를 2인승으로 개조한 택시)가 한데 섞여 도로를 가득 메웠다. 사방에서 울리는 경적소리로 귀가 아팠다. 어슬렁거리며 도로를 가로지르는 소 떼만이 여유롭다.

엘담스 사거리는 혼잡한 첸나이의 도로 중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다. 횡단보도 하나 없는 도로를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 건너는 사람들. 자동차가 아슬아슬하게 비켜간다. 차로는 지워져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위험해요!” 사진을 찍느라 도로 한복판까지 다가간 기자의 어깨를 누군가가 잡아당겼다. 경찰은 아니다. ‘현대(HYUNDAI)’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쓴 앳된 얼굴의 인도 청년. 페루말 아누마단 씨(19·난다남공립대 수학과 2년)는 현대자동차 인도재단(HMIF)이 2006년부터 매년 400명 규모로 운영하는 대학생 교통봉사대 대원이다.

○ ‘죽음의 도로’를 구하라

인도는 교통사고 사망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인도 정부의 공식 통계로 지난해 16만여 명이 도로 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12억 인구와 연간 200만 대씩 급속히 늘어나는 자동차, 이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인 교통 인프라 때문이다.

아누마단 씨는 지난해 “친구, 가족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며 현대차 교통봉사대에 지원해 선발됐다.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거리로 나와 오후 5시부터 3시간 동안 퇴직 경찰관들의 지휘 아래 교통정리를 돕는다. 한 달에 1650루피(약 3만7000원)의 장학금도 받는다. 이 돈이 그가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버팀목이다. 아누마단 씨는 “좋은 일을 하면서 학비까지 벌 수 있다는 건 신의 축복”이라며 “졸업 후 교통경찰이 되겠다”고 했다.

“자동차를 만들어 파는 회사가 이렇게 많은 교통사고를 외면할 순 없잖아요.” 박한우 현대차 인도법인장(54)은 적잖은 돈을 들여가며 교통봉사대를 운영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11월까지 인도에서 ‘이온(EON)’ ‘상트로’ ‘i10’ ‘i20’ 등 34만여 대의 승용차를 팔아 인도와 일본의 합작회사 마루티스즈키(77만여 대)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인도 승용차 시장점유율은 19.2%로 이 회사의 해외 국가별 시장점유율로는 단연 첫째다.

같은 날 첸나이에서 75km 떨어진 타밀나두 북쪽의 칸치푸람. 현대차 공장 한편의 공터에서 젊은이 30여 명이 진땀을 흘리며 운전교습을 받고 있었다. 삼파스 마노즈쿠마르 씨(22)는 학비가 없어 10학년(한국 기준 고교 1학년)까지밖에 못 다녔다.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자칫 범죄의 유혹에 빠질 뻔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운전교육을 받고 있다. 전문 운전기사로 취직하면 한 달에 1만 루피(약 22만4000원)를 벌 수 있다. 중산층 수준이다. 그는 “언젠가 내 차를 장만해 일도 하고 결혼도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현대차는 2009년부터 인근 마을의 무직 청년들을 대상으로 매년 네 차례 ‘드라이빙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2개월 코스로 운전과 정비기술, 응급구조법을 가르친다. 무엇보다 교통법규 준수를 강조한다.

사실 인도에서 운전면허를 따는 건 너무나 쉽다. 사설 운전학원은 한두 시간이면 쉽게 면허를 내준다. 하지만 현대차의 드라이빙스쿨은 제대로 된 운전을 가르치고 일자리도 구해주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 245명이 수료했고 230여 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4명은 이곳 강사로 일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시내에도 ‘현대드라이빙스쿨’이 생긴다. 첸나이는 언젠가 인도 최고의 운전교습소가 될지도 모른다.

○ “우리 학교에 책상이 생겼어요!”

이튿날인 10일 오전, 첸나이에서 약 40km 떨어진 쳄바람바캄 초등학교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현대차인도법인 직원들이 만든 책걸상 200개를 이 학교에 전달하는 날이다.

뛰놀던 아이들은 현대차 직원들이 교문을 밀고 들어서자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조금씩 웅성거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서툰 영어가 들려온다. “책상(desk)?”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수십 명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와’ 하는 탄성과 함께 금세 일행을 둘러쌌다. 덩치 큰 남자아이 한 명은 “현대차에서 왔어요? 고맙습니다”라며 기자까지 덥석 껴안았다. 마을 주민까지 몰려들어 학교는 축제 분위기였다.

1963년 생긴 이 공립학교의 학생은 200명이 채 안 된다. 학비가 월 500루피(약 1만1000원)인 사립학교에 갈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이다.

책걸상은 한국에서 수입한 부품의 포장재인 나무판자를 활용해 만들었다. 현대차 공장 목공소에서 이 나무판자를 다듬어 틀을 짜고 합판을 올린 뒤 페인트를 칠한 것이다. 2007년부터 작년까지 이 책걸상 세트 2만여 개가 첸나이 지역 공립학교에 전달됐다.

고급스럽진 않았다. 하지만 이곳 아이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집에서나 학교에서 책상을 가져본 적이 없다. 크리스티 사랄 교장(47·여)은 어느새 눈가가 젖어 있었다. “차디찬 바닥에 앉아 수업을 듣던 아이들이 49년 만에 책상을 갖게 됐다”며 두 손 모아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아이들은 우리 일행을 태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 첸나이는 현대차의 고향

“내 이름은 이바시티. 여섯 살이에요. 포도와 연두색이 좋아요. 나중에 커서 선생님이 될래요.”

현대차 인도 공장 부근 이룬가투코타이 마을에서 만난 조그만 여자아이는 또박또박 말을 잇다가 부끄러운 듯 엄마의 치마폭에 얼굴을 숨겼다.

3000여 명이 사는 이 마을은 첸나이에서 손꼽히는 빈민가였다.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지었지만 내다 팔기는커녕 자급자족하기에도 벅찼다. 위생상태가 나빠 말라리아로 1년에 대여섯 명씩 목숨을 잃었다. 그러던 마을이 달라졌다. 1998년 현대차 공장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주민 200여 명이 현대차와 주변 협력사 공장에서 일하면서다. 이들이 벌어온 돈으로 마을 사람들은 음식을 사고 학교를 지었다. 현대차는 위생상태 개선을 위해 곳곳에 화장실을 지어줬다.

취재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 도로 위에 세워진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현대차의 고향, 첸나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간호사 육성 프로그램으로 웃게 된 ‘기적의 다섯 소녀’ ▼
빈민촌서 웃음 없던 아이들, 현대차 덕에 병원 수습생 돼
“한국 가보고파” 표정 활짝


현대자동차 인도재단의 크리슈나무르티 스리다 부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기적의 다
섯 소녀’와 기념촬영을 했다. 타밀나두 벨로르 지역의 빈곤한 마을 출신으로 노동 착취
를 당하던 소녀들은 현대차의 도움으로 간호사 육성 프로그램을 마친 뒤 병원에서 일하
며 정식 간호사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현대자동차 인도재단의 크리슈나무르티 스리다 부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기적의 다 섯 소녀’와 기념촬영을 했다. 타밀나두 벨로르 지역의 빈곤한 마을 출신으로 노동 착취 를 당하던 소녀들은 현대차의 도움으로 간호사 육성 프로그램을 마친 뒤 병원에서 일하 며 정식 간호사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한국요?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9일 인도 첸나이 아민지카라이의 세시아 당뇨병 연구센터. 수습 간호조무사인 당팔 사시칼라 씨(19·여)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 평범한 말 한마디에 옆에서 지켜보던 한 남자가 눈시울을 붉혔다. 현대차 인도재단에서 사회공헌 업무를 맡고 있는 크리슈나무르티 스리다 부장(50)이다. 그는 하루 내내 기자와 동행했지만 한 번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무뚝뚝한 성격이었다.

당황해서 이유를 물었다. 스리다 부장은 눈물을 훔친 뒤 겨우 말했다. “여기 오기 전 저 아이가 어땠는지 알아요? 첸나이에서 가장 가난한 어촌에서 자라면서 세상 밖으로 나와 본 적이 없는 아이예요. 웃음 한 번 보이지 않던 아이가 외국에 가보고 싶다니…. 신이여 감사합니다!”

사시칼라 씨는 아동 노동력 착취가 만연한 타밀나두 벨로르 지역의 나타름팔리라는 작은 마을 출신이다. 공립학교에 다녔는데 공부를 아주 잘했다. 하지만 가족을 먹여살리는 게 먼저였다. 수업을 마치면 교복 차림으로 바닷가에 나가 어부들을 거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밖에 마치지 못한 아버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12세 남동생은 철부지일 뿐이었다.

어느 날 희망이 찾아왔다. 현대차 인도재단은 2010년 이 지역 사회봉사단체인 마드라스 라이온스클럽과 함께 학업성적은 뛰어나지만 가난한 여학생 50명을 뽑아 간호사 육성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학생 전원은 지난해 6월 교육을 마치고 병원에 배치돼 수습생으로 일하고 있다. 한 달에 4000루피(약 8만9000원)를 번다. 사시칼라 씨는 이 돈을 모아 몸이 아픈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50명의 간호사 육성 프로그램 동기생 중 세시아 당뇨병 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수습생은 사시칼라 씨를 포함해 5명. 모두 동갑내기로 같은 마을 출신이다. 마을에서는 이들을 ‘기적의 다섯 소녀’라고 부른다. 이들의 꿈은 정식 간호사 자격을 따는 것이다.

타밀나두=글·사진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 현대차 인도재단의 도움을 받은 현지 주민들의 감사 편지

“내이름은 살라니아입니다. 푸두페두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대학생 봉사단 언니, 오빠들이 훌륭한 일을 해주셔서 고맙고 정말 좋아요. 나중에도 또 오면 좋겠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비영리 사회봉사단체인 FSL인디아의 가이트리입니다. 이룬가투코타이 마을 사람들은 많은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새 건물을 지어주고 아이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을을 꼭 다시 방문해 주세요.”

“발라 가나파티입니다. 한국인 형들이 우리 학교를 고쳐줘서 고맙고, 같이 노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어요. 우린 좋은 친구였어요. 사랑해요 한국, 안녕, 또 봐요”

“스리페람 부두면 칸투르 마을 이장입니다. 의료봉사활동은 낙후된 이 지역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구했습니다. 당신들은 신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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