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대에 따라 추억이 다르겠지만 가장 맛있는 우동은 기차가 역에 잠깐 정차했을 때 매점으로 달려가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면서 몇 분 사이에 한 그릇 뚝딱 먹어 치울 때의 맛이 아닌가 싶다.
우동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즐겨 먹지만 원래는 일본에서 발달한 국수다. 임진왜란 이후인 에도시대 때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에도시대 후기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의 1층 상가는 대부분 우동 가게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동의 발상과 기원은 분명치 않다. 일본 내에서도 다양한 설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유래를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일본에 우동을 전한 인물이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 온 승려 구카이(空海)라고 주장한다. 구카이는 일본 불교인 진언종의 창시자로 당나라 유학 중 장안(長安)에 있는 청룡사 승려에게서 국수 만드는 기술을 배워서 806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고향인 사누키에서 국수 만드는 기술을 전파했는데 이것이 사누키 우동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일본 우동 가운데 사누키 우동이 널리 알려진 이유도 우동의 발상지를 사누키 지방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9세기 초반이면 중국에서도 지금과 같은 형태의 국수가 만들어지기 이전으로 보기 때문에 구카이가 전파했다는 것은 현재와 같은 모습의 우동이 아니라 초보 형태의 밀가루 음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설로는 우동의 기원을 12세기 무렵으로 본다. 일본 규슈 지방의 하카다라는 곳에 조텐(承天)사라는 절이 있다. 이곳에는 ‘이 절이 우동과 메밀국수인 소바의 발상지’라는 비석이 있다. 조텐사는 쇼이치(聖一) 국사가 세운 절이다. 쇼이치가 송나라에 유학을 다녀오면서 수력으로 돌리는 제분기계를 들여왔는데 이때부터 일본에서 소바 및 우동 등의 분식 문화가 발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수의 발달 과정에 비춰볼 때 일본에서 12세기에 우동이 만들어졌거나, 혹은 조텐사에서 우동이 발달한 것이 아니라 이 무렵 국수와 같은 분식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에서 국수를 발전시킨 중국에서도 송나라 때부터 국수가 본격적으로 발전했고 우리나라 역시 고려 때 국수가 발달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일본에 밀가루 음식이 전해진 것은 8, 9세기 무렵이라고 한다. 수나라와 당나라에 다녀온 사신들이 귀국하면서 밀가루 음식을 가져왔는데 고문서에는 주로 삭병(索餠) 혹은 맥승(麥繩), 불탁(不托), 혼돈이라고 적혀 있다. 모두 옛날 중국에서 밀가루 음식, 즉 분식을 표현했던 용어다. 국수를 포함해 만두와 수제비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우동은 한자로 온돈(온돈)이라고 쓴다. 우동의 기원을 지금도 중국 사람들이 먹는 만두의 한 종류인 훈툰(X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우동의 본고장인 사누키에서는 지금도 정월이면 밀가루 반죽에 팥소를 넣어서 만든 중국식 만두인 훈툰과 같은 것을 먹고 있기 때문에 사누키 우동과 중국식 만두의 일종인 훈툰이 뿌리가 같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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