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한국기업 세계를 품다]<5> 음악-교육으로 한중교류 앞장 STX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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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에 흐르는 韓中합주의 선율… 언어 달라도 마음은 하나

다롄 시에 하나뿐인 청소년오케스트라 ‘다롄 청소년 관악단’은 한국과 중국 학생들이 음악을 통해 교류하는 장이다. 이 관악단의 막내인 첸위안쩡 군(오른쪽)이 15일 열린 ‘경남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음악캠프’에서 북을 연주하고 있다. 첸 군은 “북을 익숙하게 치고 나면 다음번엔 드럼을 배워 보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다롄 시에 하나뿐인 청소년오케스트라 ‘다롄 청소년 관악단’은 한국과 중국 학생들이 음악을 통해 교류하는 장이다. 이 관악단의 막내인 첸위안쩡 군(오른쪽)이 15일 열린 ‘경남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음악캠프’에서 북을 연주하고 있다. 첸 군은 “북을 익숙하게 치고 나면 다음번엔 드럼을 배워 보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잠깐 잠깐! 무작정 소리가 크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높이뛰기 하듯 기를 모아서. 알겠죠? 자! 모두들 악보 보시고. 98마디부터 다시 가볼게요.”

15일 오후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다롄(大連) 시 개발구의 한 호텔 회의장. 스무 명의 시선이 단상의 지휘자에게 집중됐다. 이윽고 강만호 경남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손끝에서 시작된 선율이 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개구리 소년, 메칸더 브이 등 만화 주제곡 메들리였다.

강 지휘자 등 경남필하모닉 단원 6명의 가르침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망울을 반짝인 ‘다롄 청소년 관악단’ 멤버들은 14일부터 나흘간 이곳에서 ‘경남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음악캠프’를 선보여 큰 갈채를 받았다.

누구보다 더 큰 박수를 보낸 이는 다롄 시에서 가장 큰 외국 기업, STX다롄을 운영하고 있는 STX그룹 직원들이었다. STX는 다롄 청소년 관악단을 창단해 북이며 드럼, 트럼펫 등 악기를 지원했을 뿐 아니라 2009년부터 이 관악단의 정기연주회를 후원하고 있다. 이번 캠프도 경남필하모닉과 메세나 협약을 맺은 STX조선해양의 제의로 이뤄졌다.

○ 다롄 유일의 청소년 오케스트라


다롄 청소년 관악단은 다롄 시에 하나뿐인 청소년 오케스트라다. 대학 시절 밴드활동을 했던 김준 STX다롄 통관팀장이 주도해 2008년 7월 스스로 단장 겸 지휘자가 됐다. 김 팀장의 딸을 포함해 3명이 초기 단원의 전부였지만 이제는 43명이나 된다. 김 팀장은 “문화생활을 제대로 향유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도록 하자는 취지였다”며 “나중에 정기공연을 하면 한중 두 나라의 문화교류에 이바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청소년 단원들 가운데 유독 어려 보이는 북 치는 소년이 눈에 띄었다. 관악단의 막내 첸위안쩡(阡元增·10) 군이다. 악보와 지휘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자기 몸집만 한 북을 힘차게 두드린 첸 군은 6개월 전 관악단에 가입했다. 초기에는 한국인 학생들만 단원으로 받았지만 지난해부터 중국 현지 학생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한 덕이다. 그는 토요일마다 열리는 합주에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김 팀장은 “현지 학생들을 단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며 “중국인 단원을 전체의 절반까지 늘려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관악단 13명의 선생님 가운데 10명은 중국인이다. 음악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과 중국의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을까. 목관악기 교육을 맡은 주위안펑(朱元鵬·38) 씨는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간단한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그는 “한국 학생들 중에도 중국어를 잘하는 친구들이 있어 큰 어려움이 없다”며 “연주 사이사이에 한국어, 중국어가 쉴 새 없이 오간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중국 학생들을 가르친 6명의 경남필하모닉 단원은 중국어를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중국 학생들은 한국말로 알려주는 단원들의 ‘원포인트 레슨’을 신기하게도 곧잘 이해했다.

“왼손 한 번, 딴! 다음에 오른손이 딴!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치는 거야. 알았지?”

첸 군은 주원배 단원이 자신의 두 어깨에 손을 얹고 박자를 가르쳐주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국말은 못하지만 선생님이 어떻게 치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며 “중국어 잘하는 형들이 통역도 해주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회의실은 음악 대신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찼다. 과일과 음료수를 함께 나눠 먹는 이 자리엔 한국인, 중국인 구별이 없었다. 한국 단원들은 연방 “우리 꼬마”를 외쳤다. 첸 군의 별명이다. 정태원 군(15)은 “첸 군이 처음엔 수줍음을 많이 탔는데 이제는 한국말로 ‘태원이 형’이라고 하면서 곧잘 따른다”고 했다. 한국 단원들 대부분은 국제학교나 한인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중국 친구를 만날 기회는 이곳 관악단이 유일하다. 중국 정부의 ‘1가구 1자녀 정책’ 때문에 중국 단원들은 모두 외동딸, 외동아들이다. 첸 군은 “관악단에 와서 형과 누나가 많이 생긴 것이 가장 좋다”며 활짝 웃었다.


○ 지역경제도, 지역교육도 UP

STX가 다롄에 첫발을 디딘 것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진해 조선소가 포화상태에 다다랐다고 판단한 STX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신규 조선소 터를 찾던 STX는 한국에서 가깝고 항구와 인접한 다롄을 최종 낙점했다. 2006년 9월의 일이다.

다롄은 1985년 국가계획도시로 선정되면서 외국 기업의 진출이 이어졌지만 대규모 투자는 STX가 처음이었다. 특히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조선업인지라 다롄 시와 중국 정부는 STX를 각별히 지원했다. 중국 경제정책을 이끄는 핵심 인물인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와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일화는 유명하다. 공장 건설 초기 리 부총리가 강 회장과의 통화에서 “어려운 점은 없느냐”고 물어 강 회장이 지나가듯 “장비 구하기가 좀 어렵다”고 말했는데 그 다음 날 조선소 터에 각종 중장비가 거짓말처럼 모여 있더라는 에피소드다.

2009년 STX다롄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다롄의 경제도 변모하고 있다. STX다롄이 있는 창싱다오(長興島)는 허허벌판이었지만 이제는 다롄 시를 잇는 왕복 4차로 고속도로가 들어섰고 커다란 상권도 형성됐다.

STX다롄이 지역 사회공헌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린 것도 이때부터다. STX다롄은 “당시만 해도 다롄 시의 학교에서는 컴퓨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며 “지역사회와 동화되고, 학부모인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STX는 지난해까지 창싱다오 지역의 초중고교에 175대의 컴퓨터를 기증했다. 원어민 교사로부터 영어수업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직접 만들어 지원에 나섰다. 교사 섭외부터 체재비 지원까지 모두 STX가 담당한다. 그 덕분에 창싱다오의 학교들은 다롄 시 가운데 교육환경이 가장 뛰어나다. 한국 못지않게 교육열이 높은 중국의 학부모들에게서 이 같은 STX의 다양한 교육 후원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STX는 단순히 교육에 필요한 하드웨어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학교를 찾아 환경개선을 위한 개·보수 활동을 벌인다.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강쌍원 STX다롄 전무는 “교육 지원의 가장 큰 목표는 지역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라며 “앞으로 중국사회를 이끌게 될 어린 학생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일자리 1만8000개 만들고 주택 2만3000채 조성 ▼


2007년 3월 STX다롄은 인구 5만 명의 중국 창싱다오에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창싱다오의 인구는 12만 명으로 늘어났다. 2008년 말 공장이 1차 완공돼 STX다롄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고용인력이 증가하고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된 데 따른 것이다.

550만 m² 규모의 거대한 터에 들어선 STX다롄은 다롄 시에 진출한 많은 외국 기업 중 가장 규모가 크다. 현지 중국인 직원만 1만8000여 명에 이른다. 일자리 창출을 비롯해 STX다롄이 가져다 준 부수효과는 막대하다. 이 때문에 중국 최고위급 관계자들도 STX다롄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강쌍원 STX다롄 전무는 “원자바오 총리, 리커창 상무부총리가 이곳을 직접 방문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STX는 중국 현지에서 장학사업,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현지 주민들에게 ‘베푸는’ 성격이지만 길게 보면 STX에도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STX는 하얼빈공업대 하얼빈공정대 지린대 둥베이대 다롄이공대 등 동북부 5개 학교에 매년 장학금을 지원한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총 300만 위안(약 5억5000만 원) 규모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STX 측은 “앞으로 장학금을 받은 우수한 대학생 중 일부에게 STX다롄 입사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장학사업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우리에게도 플러스(+)”라고 말했다.

STX는 계열사인 STX건설을 통해 창싱다오에 2만3000채 규모의 주택단지인 ‘해경공원’도 개발하고 있다. 신흥 공업도시인 다롄에서 이 같은 대규모 주택단지는 해경공원이 유일하다. 이 주택들은 STX다롄 직원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순차적으로 분양할 예정이다. 지역경제가 살아나면서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상황에서 대규모 주택 분양은 현지인들에겐 가뭄에 단비 같다. STX다롄은 “이 사업의 목표는 이익보다는 지역사회에 양질의 주택을 싼값에 공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STX는 지난해 그룹 창립 10주년 행사를 한국이 아닌 창싱다오에서 개최했다. ‘꿈은 해외에서 이룬다’는 STX의 가치를 이곳 다롄에서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장호욱 STX다롄 대외협력실장은 “창싱다오에서는 ‘STX 로고가 새겨진 작업복만 입고 가도 외상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역사회에서 큰 신뢰를 얻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다롄=글·사진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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