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7시 반 112로 긴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천사와 요정이 시켜 엄마를 죽였다”는 최모 씨(39)의 자수 전화였다. 경찰이 서울 성북구 정릉동 집에 출동했을 때는 최 씨와 함께 살던 새어머니 박모 씨(61)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부엌에 있던 칼이 범행도구로 사용됐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 밑에서 남동생과 자라던 최 씨는 30년 전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박 씨를 처음 만났다. 비록 배로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박 씨는 가슴으로 최 씨 형제를 길러냈다. 자신의 친딸은 오히려 친정에 맡겨놓고 최 씨 형제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다. 일용직 노동일을 하는 남편을 돕기 위해 남대문시장에서 일감을 받아와 생계를 책임지던 억척스러운 아내이기도 했다.
새어머니의 사랑 아래서 최 씨는 전기배선 기술자를 꿈꾸며 건강하게 자랐다. 고등학생 때 전기배선 기술 자격증을 따 매달 30만 원씩 벌어 1000여만 원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최 씨는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한 뒤로 갑작스러운 우울증과 정신분열 증세를 겪었다. 제대 이후 증세가 심해지면서 박 씨는 취업도 결혼도 못했다. 10년 넘게 정신병원을 전전하던 최 씨를 내내 보살핀 것도 박 씨였다.
29일 저녁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최 씨의 아버지(65)는 “아내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좋은 사람이었다”며 “나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생긴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그는 “상복을 입을 자격도 없다”며 점퍼 차림으로 홀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최 씨에 대해 정신감정을 의뢰하고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29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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