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으로 탈북했다 8일 선양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된 A 양의 아버지 김영남(가명) 씨가 “내 딸을 부모가 눈물 속에 기다리는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려보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여달라”고 호소했다. 동생 B 군이 중국 공안에 체포돼 있는 김영란(가명) 양도 “북한에 계시던 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동생 외 다른 2명의 혈육은 모두 한국에 있다”면서 “가족도 없는 북한으로 동생을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수일간 집단으로 체포된 탈북자 31명 대부분은 한국에 부모 형제 등 혈육이 있다. 이는 과거 가족들은 모두 북한에 있는데 혼자 넘어오던 때와는 달라진 탈북 흐름을 보여준다.
한국 입국 탈북자가 지난해 말 2만3000명을 넘어서면서 먼저 한국에 와 자리를 잡은 가족들이 중국의 탈북 브로커들에게 돈을 줘 북에 남은 가족을 데려오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2010년 말 양강도 혜산에서 탈북한 최모 씨의 경우 지난해 초 탈북자 정착 지원기관인 하나원을 나와 서울에 자리 잡은 뒤 12월 중순까지 불과 10개월 만에 10여 명의 북한 가족을 모두 데려왔다.
한국에 가족이 살고 있어 이뤄진 계획적 탈북 과정에서 체포된 탈북자는 북한 주민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국민의 가족이라는 특징도 있다. 이미 탈북한 가족이 한국 국민이 됐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정부가 중국 내 탈북자 문제에 과거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높여주고 있다. 과거 중국 당국은 탈북자 문제는 북한과 중국 간의 문제로 한국 정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이에 한국 정부는 탈북자 문제를 국제 난민 협약에 따른 인도적 처리에만 호소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체포된 탈북자의 가족이 한국 국민인 경우 이는 한국 국민 가족의 문제가 된다. 그런 만큼 한국 정부도 ‘조용한 외교’를 펴온 기존 태도에서 벗어날 명분이 생겼다. 유엔 등 국제사회에 혈연을 강조한 인도주의적 호소를 하며 정공법으로 나갈 여지가 생긴 것이다. 통일운동단체인 ‘통일시대사람들’의 김지우 대표는 “최근 탈북자들이 미국, 영국 등에 적극 진출해 현지 시민권을 따고 있는데 머지않아 중국에서 체포된 탈북자가 미국인의 가족, 영국인의 가족이 돼 복잡한 국제적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금까지 북송된 사람들이 박해받은 증거가 없기 때문에 난민으로 볼 근거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탈북자 수가 늘면서 북송된 탈북자가 받는 가혹한 처벌의 증거가 사진 영상 등으로 외부 세계로 속속 노출되며 중국의 논리는 점점 궁색해지고 있다. 더구나 최근 북한의 탈북자 처벌 수위는 그 어느 때보다 가혹해지고 있다.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으로 헤어진 혈육들이 영영 다시 못 만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조용한 외교’만 강조하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대처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앞으로도 이번 사건과 유사한 탈북자 대규모 체포는 또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아무리 처벌을 강화해도 함께 모여 살려는 혈육들의 간절한 욕망이 있는 한 탈북 흐름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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