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안돼~”, “애매합니다잉”, “간디 작살” 독특한 억양의 유행어들이 줄줄이 탄생하고 다양한 개그프로그램들이 등장, 근래에는 볼 수 없던 노장 개그맨들까지 돌아왔다. 2012년 새해는 그야말로 개그 전성시대.
KBS ‘개그콘서트’의 인기는 가히 놀랍다. 꾸준히 전국 시청률 20%를 넘으며 지난 한 달 동안 주말의 쟁쟁한 예능 프로그램들을 제치고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SBS ‘개그투나잇’도 자정 시간 편성임에도 꾸준히 시청률이 상승해 전국 시청률 9%를 기록, tvN ‘코미디빅리그 시즌2’는 케이블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케이블 시청가구 기준 시청률 4.677%를 기록하며 9주 연속 케이블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개그프로그램들이 방송국의 효자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개그프로그램 종류도 더 많고 다양해졌다. 채널A ‘개그시대’, MBN ‘개그 공화국’, TV조선 ‘코미디쇼 코코아’ 등 종합편성채널도 개그프로그램을 각각 선보이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특히 채널A ‘개그시대’는 브라운관에서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왕년의 오빠들’이 대거 등장하며 지금이 바로 ‘개그 전성시대’임을 입증하고 있다.
개그 전성시대를 사는 당신, 더욱 재미있고 더욱 풍성해진 개그를 누릴 준비가 되었나?
●“왕년의 오빠들이 돌아왔다”
개그 전성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바로 ‘왕년의 오빠’들이 돌아온 것. 개그 무대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90년대 활동하던 선배 개그맨들도 다시 무대에 설 기회를 찾고 또 다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어른 시청자들에게는 반가운 그때 그 시절 개그를, 어린 시청자들에게는 트렌디한 개그와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며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선후배가 함께 모인 채널A의 ‘개그시대’는 촬영장 분위기부터 다르다. 10년씩 나이터울이 나는 최양락(50), 남희석(41), 김주철(32)이 ‘락락락쇼’라는 한 코너에 모여 각각의 재치를 발휘한다. 리허설 중 후배 김주철이 애드립을 발휘하자 최양락은 “그 대사 정말 신선하고 웃기다”며 ‘껄껄’ 웃는다.
리허설 무대에서 땀을 빼고 내려온 최양락은 “사실 나이 쉰 살에 다시 개그 무대에 선다는 게 나도 신기하다”며 후배들과 오랜만에 호흡을 맞추는 감회를 털어놓았다. “요새 후배들은 못하는 게 없다. 춤, 노래, 성대모사 등등…. 후배들과 함께 코너를 하다 보면 똑같은 대사도 느낌이 달라 배운다. 후배들도 내 개그가 트렌디한 개그와 또 달라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이다”고 말한다. 이어 “몸은 힘들더라. 남희석과 몸 개그 하다가 갈비뼈에 금이 갔다. 무서워서 못 하겠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남희석은 “정말 겁이 많으시다. 여기 때리기로 맞췄는데 자꾸 몸을 이렇게 움츠려 진행이 안됐다”며 흉내를 내자, 최양락은 또 의자가 넘어가게 웃어 보인다. 두 사람은 “다른 어떤 방송보다도 개그 무대가 가장 재미있다. 오래도록 무대에 서고 싶다”며 “드라마는 젊은 세대와 아버지 세대가 함께 호흡을 맞추지 않느냐. 이제 개그도 신구세대가 함께 만들어 온 가족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코너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풍자 개그’ 풍년일세
개그 전성시대에 특별히 떠오르고 있는 개그가 있다. “내 집 장만, 어렵지 않아요~” 어떻게 내 집을 장만할 수 있을까 가만히 귀 기울이고 들으면 씁쓸한 웃음이 터진다.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 최효종은 “140만 원의 월급을 숨만 쉬고 모으면 89세에 마련할 수 있다”며 집값이 높은 현실 세태를 풍자한다.
SBS ‘개그투나잇’의 ‘투나잇 브리핑’은 아예 한 주간의 시사 이슈를 풍자한다는 기획으로 국무총리실 CNK 주가조작 사건 등 구체적인 시사 이슈를 언급한다. MBC ‘웃고 또 웃고’의 ‘나는 하수다’도 인터넷라디오 ‘나는 꼼수다’를 패러디해 ‘디도스’, ‘박그네’ 등 시사 이슈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채널A ‘개그시대’는 ‘생사토론’, MBN ‘개그공화국’은 ‘셰프를 꿈꾸며’ 등 풍자 코너들이 줄줄이 등장하며 날로 높아지는 풍자개그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이 같은 인기는 사회적 영향력까지 끼친다. 지난해 겨울, 국회의원 강용석은 최효종의 풍자개그가 국회의원을 폄하했다는 이유로 형사 고소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효종은 “사실 누구의 잘못을 지적하고자 풍자 개그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많은 분들에게 속 시원한 웃음을 드리고 싶은 것뿐”이라며 “사회 이슈를 다루는 만큼 반응이 빠르고 다양하다. 의견들을 잘 수렴해서 더 나은 내용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새 ‘풍자개그’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는 정작 “풍자개그가 아닌 좀 더 밝은 개그를 하고 싶다”며 “우리 사회에 풍자할 거리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이기도 했다.
●색다른 판에서 즐겨라! 다양한 형식과 볼거리
“개그프로그램들이 양적으로만 아니라 다양성 차원에서도 한 단계 상승해야죠” ‘개그 순위제’라는 색다른 형식으로 ‘코미디빅리그’를 탄생시킨 김석현PD의 말이다. 최근 개그프로그램의 다양한 형식의 시도들이 엿보인다. ‘코미디빅리그’ 외 tvN ‘SNL 코리아’는 미국 NBC 방송 프로그램의 포맷을 도입해 매주 유명 연예인들을 호스트로 초대해 망가지는 모습을 담는다. KBS 개그스타 GCC어워드는 공개코미디에서 보여줄 수 없는 개그 소재를 개그맨들이 직접 UCC로 제작해 시상식 형식으로 구성한다.
이러한 변신 시도는 긍정적인 결과를 맛보고 있다. 직접 찾아가본 ‘코미디빅리그’ 녹화 현장에는 관객석 수가 모자라 양옆에 서서 보는 관객들까지 생겼다. 관객들은 ‘민식이냐?’, ‘자리주삼’, ‘꺼져, 짜져, 뿌잉뿌잉’ 등 수십 개의 유행어를 휴대폰과 플래카드에 적어 보이고, 심지어 유행어를 등에 새긴 옷을 제작해 맞춰 입기도 했다.
‘코미디빅리그’의 김석현PD는 “프로축구, 프로야구를 누가 이기나 응원하며 재미를 느끼듯 개그라는 소재 위에 순위제 방식을 더해봤다”며 “실제로 이런 방식이 통했다고 느끼는 건, 각 개그팀을 응원하는 팬층이 생긴 거다. ‘무슨 코너 재미있다더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팀 잘해라’라고 응원한다”고 웃어 보인다. 하지만 “새로운 방식이니만큼 어려운 부분도 많다”며 “팀 승부이기 때문에 이 코너에 다른 개그맨이 더 적합하겠다 싶어도 못 바꾼다. 충분히 검증하지 못하고 무대에 올리는 점도 연출자로서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라고 털어놓았다.
순위제 방식이 개그맨들에게 부담되지는 않을까? ‘따지남’ 팀으로 출연 중인 윤진영은 “부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잘하면 그만큼 뿌듯함도 크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그 부담보다도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것 자체로 정말 행복하다. 군대 제대 후 개그무대를 못 찾아 힘들었는데 최근 많고 다양한 개그프로그램들이 생겨 이렇게 무대에 선다는 사실로 좋다”며 행복한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개그맨도, 시청자들도 웃음을 찾는 개그 전성시대.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쏟아져 나오는 유행어들은 개그프로그램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며 “과거 ‘무한도전’이 등장했을 때 리얼버라이어티는 ‘무한도전’ 하나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1박2일’, ‘패밀리가 떴다’ 등도 다 성공하지 않았냐. 개그프로그램도 아직 언제가 한계일지 모르는 것. 더 발전하고 영향력이 더 커질 수도 있다”며 개그전성시대의 미래를 예측했다.
동아닷컴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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