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효진 “겨털도 사랑스러운, 넓은 그릇의 배우”
● 먹는 연기 화제에 “CF 많이 들어와”
● 팬들과의 소통 위해 ‘대변인 제도’ 도입해
배우 하정우(34)는 친근했다.
그는 우연히 나온 야구 이야기에 진지하게, 유쾌하게 야구와 LG트윈스에 대한 애정을 털어놨다.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원정 경기도 응원 다닐 열정이었다. 야구에 푹 빠진 ‘대리님’이나 ‘선배’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런 친근함이 있어 하정우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먹히는’ 배우다. 남자 관객에겐 함께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는 진한 우정이 느껴지고, 여자에겐 허허실실 능청스럽게 재미난 이야기를 해줄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 하정우만의 매력 포인트다.
그런 하정우가 또래의 여배우와 로맨틱 코미디 ‘러브픽션’(2월 29일 개봉)을 찍었다. ‘국가대표’, ‘황해’, ‘의뢰인’ 등 남자배우와 주로 호흡을 맞췄던 하정우에겐 드문 일이다. 전계수 감독의 전작 ‘삼거리 극장’을 봤을 땐, 분명 녹록지 않을 거란 예상도 든다.
웬걸. 하정우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 전계수 감독의 특별한 감수성을 유쾌하게 소화했다.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의 하정우는 어깨에 힘을 잔뜩 준 건달이었다면, ‘러브픽션’의 구주월은 힘을 쭉 뺐다. 여자친구 희진(공효진)의 ‘그것’에 사과하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오고, 희진의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에 짜증도 난다.
- 하정우 이야기를 해보자. ‘러브픽션’을 보고 나면 실제 하정우도 ‘구질구질’ 구주월과 닮았는지 궁금해진다.
“많이 안 닮았다. 물론 나도 그런 시행착오들은 겪었다. 계속 겪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이 앞에선 누구나 무기력해지니까. 뭐라고 할까. 구주월의 모습은 실제 내가 겪어온 과거의 한 단면을 닮았다. 사랑에 늘 미숙하니까. 그리고 그런 구주월을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실제로 많은 군상이 있지 않나. 그중에서도 모두에게 납득이 될 수 있는 캐릭터가 됐으면 했다.”
- 2007년 전계수 감독에게 ‘러브픽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2008년에 시나리오를 받았다고. 무엇이 하정우를 이끌었나.
“코미디다. 대사들이 너무 웃겼다. 겨드랑이털(겨털)도 그렇고. 구주월이란 인물이 미성숙한 인간이라고 하더라고, 그가 구사하는 코미디가 너무 재미있었다. 편지를 통한 위트, 고백 장면, ‘방울방울해’란 대사 등등. 희진이도 매력적이고.”
▶ “구주월이 지질하다고? 사랑 앞에선 누구나 무기력해 진다”
- 주로 남자배우들과 합을 맞춰왔는데, 상대역이 공효진이다.
“그녀는 겨털마저도 사랑스럽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매력이 있다. 공효진이기 때문에 이희진이란 캐릭터, 겨털 설정이 관객들에게 큰 재미로 다가설 수 있는 거다. 자칫하면 거부감이 들 수 있는데, 효진이는 잘 이용해 캐릭터에 밀착시켰다. 그것은 분명히 공효진이란 사람이 넓은 그릇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효진이는 앞으로 무엇을 맡기든 사랑스럽게, 그것도 아주 잘 소화할 수 있는 기대가 되는 여배우가 아닌가 싶다.”
- 다음 작품 ‘베를린’(감독 류승완)에서는 공효진의 연인 류승범과 함께한다.
“재미있는 일이다. 그들과 계속 일한다는 게. 효진이가 칭찬을 많이 하더라. 원래부터 (류)승범이에 대해 좋은 감정을 있었다. 사석에서도 몇 번 봤고. 이번에 일을 같이하게 돼서 더 인간적으로 가깝게 다가왔다. 효진이가 ‘좋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큰 설명 없이도 확 와 닿더라.”
- ‘러브픽션’에서 구주월의 말투나 행동이 굉장히 연극적일 때가 있다. 문어체의 대사들도 그렇고. 중앙대학교 연극과 시절이 생각나지 않았나.
“옛날 생각 많이 났다. 소극장에서 연극을 해보고 싶단 생각도 들고.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모여서 뭐가 그리 심각한지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졌었다. 한탄하고 연기하고 아파하고 그랬다. 밤새 소주 마시면서 연기 이야기했다. 20대 초중반의 학생들에게 지금이 매우 소중한, 보석 같은 순간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 또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연극영화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어린 나이에 매니지먼트를 찾아다니고, 방송과 영화만 쫓는 모습이 조금 안타깝다.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고, 다치고, 상처를 입고, 그런 것들을 토대로 (연기) 일을 할 수 있다. 이 각박하고, 퍽퍽한 회색 세계에는 천천히 발을 들여도 된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선 20대 때 그런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 뭐, 나도 아직 젊은 축에 속하지만.”
▶ “배우 지망생들, 충분한 배움과 성찰이 필요해”
- ‘범죄와의 전쟁’에서 함께 한 최민식이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나와 하정우를 극찬했다.
“민식이 형은 정말 좋다. 진짜 예술가이시고. 좋은 선배들을 만나서, 깨달음과 가르침을 얻었고 그 덕분에 다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이전에 아버지(김용건)가 계시고.”
- 개그맨 남희석이 최근에 ‘황해’에서 김 먹는 장면을 패러디한 사진을 올려 화제가 됐다. ‘범죄와의 전쟁’에 대한 호평을 남기기도 했고. 정확히 말하면 먹는 연기에 대한 예찬이지만. 그도 열렬한 한화 이글스 팬이다.
“그런가. 남희석 선배가 트위터에서 (나를) 좋게 말씀해 주시더라. 매우 좋게 봐주신 것 같아 고마웠다. 언제 한번 만나 뵙고 소주 한잔해야겠다.”
- 실제 요즘 포털사이트에서 ‘하정우’의 연관 검색어가 ‘먹는 연기’다. ‘러브픽션’에선 채식주의자로 등장해 먹는 연기가 별로 없지만. 참 맛깔스럽게 먹는다. 먹는 신만 모아놓은 게시물도 있다.
“나도 봤다. 재미있더라. 광고도 많이 들어온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원래 음식 안 가리고, 잘 먹는다. 꼭꼭 씹어서. 요즘 즉석 떡볶이에 빠졌다. 최근엔 신당동 마복림 할머니네 가서 즐겁게 먹었다.”
-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하정우 갤러리’ 팬들이 남다른 배우 사랑으로 유명하다.
“그 친구들에게 유머를 배우고 있다. 너무 웃겨서 미칠 것 같다. 몇 명 안 되는 친구들이 열심히 해주고 있어 고맙다. 얼마 전에는 팬들에게 ‘댓글북’을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2주 전에는 대변인 제도를 도입했다. 한 친구를 지정해서 내가 소식을 전하면, 그 친구가 커뮤니티에 올리는 방식이다. 내가 많이 커뮤니티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까.”
- 마지막으로 ‘러브픽션’을 홍보하자면.
“‘러브픽션’은 분명히 새로운 재미, 충격적 재미가 있다. 관객분들이 이제는 그런 코미디를 받아들여 주시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지금 시대에 더 잘 맞는 코믹 로맨스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영화를 개봉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고. 즐겁게 봐주시면 좋겠다.”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사진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 ☞ 하정우 인터뷰 ②편 보기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스마트폰 앱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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